식은섹스-이미지

한계를 시험하다

둘 다 뭐든 빨리 빠졌다가 금방 질리는 성격인데 3년이나 만날 수 있었다는 게 정말 미스터리다. 6개월 만에 찾아온 첫 섹스 권태기는 급다이어트로 넘겼다. 허벅지와 뱃살이 줄고 간고등어 같은 탄력이 생기자 위기는 사라졌다. 하지만 곧 1년 차 위기가 닥쳤다. 어떤 체위를 하더라도 그게 그거인 순간이 온 것이다. 그 위기는 서로의 페티시를 충족시켜주는 것으로 지나갔다. 그는 검은 스타킹에 스틸레토까지 신은 다리를, 나는 남친이 다른 사람인 척해주는 역할극을 좋아했다. 2년이 지나자 그 강도가 점점 세졌다. 망사 스타킹만 신어도 황홀경을 느끼던 그가 이젠 주요 부위만 뚫은 전신 망사에나 흥분하고, 나 역시 남친에게 요구하는 상황극이 길거리 헌팅남에서 마초 아저씨, 복면강도까지 계속 진화해간 것이다. 진화에 진화를 거듭해나가는 건 좋지만 그게 무뎌지면 뭘 더 해야 할지 고민이 된다. 노력을 할수록 자극의 역치점이 높아지는 아이러니한 상황인 거다. 다행히 아직 우리에겐 미지의 영역, 섹스 토이가 남아 있었다. 서로 마음에 드는 것을 고르고, 어떻게 해줘야 좋을지 디테일하게 얘기 나누는 그 과정이 오히려 실전보다 짜릿했다. 끊임없이 한계를 시험하는 우리의 섹스가 어디까지 갈지 나도 궁금하다. K, 28ㆍ여, 대학원생

있다 없으니까

오래된 연인 사이는 와인과도 같아서 숙성시킨 만큼 성숙한 맛이 난다. 그러나 섹스만은 메인 요리에 가깝다. 시간이 흐를수록 식어가고 맛이 떨어진다. 어떤 체위와 테크닉을 시도할지, 시작도 하기 전에 훤히 들여다보여 김이 빠지는 것이다. 연애 초 서로의 몸을 탐색하며 즐거워했던 흥분은 사라진 지 오래다. 그래서 궁여지책을 찾기 시작했다. 나에겐 브라질리안 왁싱이 그 돌파구였다. 이왕 하는 거 올 누드를 선택했다. 아픈 만큼 화끈해질 수 있다면, 그쯤이야. 효과는 기대 이상으로 놀라웠다. 일단 섹스에 임하는 마음과 자세가 달라졌다. 늘 보던 같은 곳의 풍경이 달라져서인지, 아니면 시각적인 흥분도가 달라진 건지, 촉감이 달라진 건지. 그 진위는 알 수 없지만 확실히 말할 수 있는 건 남자친구가 달려드는 포즈가 인간에서 동물에 가까워졌다는 거다. 다른 사람인 듯 다른 사람 아닌 다른 사람 같은 너로 보이는 걸까. 좋긴 한데 뭔가 억울한 기분도 들어서 그에게 말했다. 나는 털을 없앴으니 넌 지방을 없애거라. L, 35·여, 에디터

헛둘 헛둘

‘우리 예전 같지 않아. 섹스가 재미없어. 무엇보다 힘도 들고. 왜 그런 걸까.’ ‘요즘 피곤해서 그렇지, 제대로 하면 잘할 수 있단 걸 너도 알잖아.’ 하지만 부정한다고 있던 일이 없던 일 되는 건 아니었다. 여전히 우리의 섹스는 제자리걸음의 무한 반복인 걸. 흥분 이전에 닥쳐오는 체력 고갈이 가장 큰 문제였다. 이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여자친구와 함께 PT를 끊었다. 섹스마저 버거워진 몸을 개선하기 위해, 궁극적으론 건강하고 긴 삶을 함께 살기 위한 목적이었다. 그래서 PT가 효과 있느냐고? 3개월 중간 정산 결과는 그렇다. 아직은 초기 단계라 효과가 미미하지만 적어도 여자친구가 허벅지 아프다고 하는 둥 마는 둥 했던 여성 상위의 자세에서 조금씩 더 오래 버티기 시작하면서 나는 희망을 보았다. 허벅지 대퇴부를 단련하는 스쿼트는 피스톤 운동의 속도를 올려주었다. 복근과 허리 근육을 키워주는 데드리프트는 또 어떻고. 복부에 탄력이 붙고 힙업이 되어가는 과정을 서로의 손으로 확인할 때마다 짜릿하다. 궁극의 정상에 오를 때까지 서로 노력하다 보면 결국 오를 날이 있겠지. 별을 헤는 마음으로 오늘도 스쿼트 개수를 헤아린다. C, 36ㆍ남, 프로그래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