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서남쪽에 자리한 작은 마을 생로랑쉬르세브르(Saint-Laurent-sur-Sèvre). 파리에서 약 400km 떨어진 이 한적한 동네에 공장으로 쓰이던 낡은 건축물을 개조해 만든 아틀리에 빙고의 스튜디오가 있다. 3년 전 도시를 떠나 이곳에 자리 잡으며 함께 활동해온 아티스트 막심 프루(Maxime Prou)와 아델 파브로(Adèle Favreau)는 실크스크린 프린트와 콜라주 일러스트, 세라믹 아트워크, 패브릭 디자인 등 다양한 형태의 작업을 하는 작가들이다. 산뜻한 색상과 독특한 구조의 도형을 이리저리 배치해 완성하는 아틀리에 빙고의 그림에는 둘이 함께 보내는 일상에서 받은 영감이 한데 어우러진다. 숲과 맞닿은 곳에 살며 느낀 자연에 대한 감정들을 규칙적인 패턴으로 차분히 나열하는가 하면, 얌전히 놓인 화분의 모습에 갖가지 상상을 더해 또 다른 화려한 오브제로 재해석하기도 한다. 수백 장의 캔버스를 제각각 다른 색채와 패턴으로 채운 아틀리에 빙고의 기발한 작품 세계는 젊은 파리지앵의 감각과 20세기 프랑스 미술에서 받은 영감이 더해진 결과물이다.

 

아틀리에 빙고는 어떻게 시작하게 된 팀인가? Maxime 아트 스쿨에 다니던 때 아델을 처음 만났다. 우연히 같은 벤치에 앉게 되어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는데 처음 만난 사이라는 게 믿기지 않을 만큼 신기할 정도 로 통하는 점이 많았다. 대화는 가벼운 관심사에서 시작해 각자의 예술관에 대한 이야기로 이어졌다. 그리고 이날 우리는 서로 첫눈에 반했다.(웃음) 며칠 후 다시 만난 아델과 곧바로 콜라보레이션 작업을 시작했고 지금까지 함께 활동하고 있다.

독특한 모양의 도형으로 채운 아트워크가 흥미롭다. 많은 색상과 문양이 고루 쓰였는데도 아틀리에 빙고만의 감성은 뚜렷하게 유지되어 있다. Adèle 작업을 시작할 때 가장 먼저 꺼내 드는 건 여러 가지 빛깔의 색지와 가위다. 종이를 이리저리 돌려 잘라내며 여러 형태를 만드는 과정에서 아트워크의 진행 방향을 정하기도 한다. 머릿속에 떠오르는 추상적인 오브제 그대로 오려내는데, 이 단계에서 이미지가 구체화된다. 때론 막심과 따로따로 작업한 그림을 이어 붙여 하나의 아트워크로 결합하는 경우도 있다. Maxime 가위로모양을 내는 과정이 끝나면 디지털 일러스트, 드로잉, 채색, 실크스크린 등 구체적인 작업을 더한다. 완성된 이미지를 세라믹이나 디자인 소품처럼 다양한 소재에 입히기도 한다.

 

작품의 컬러 조합이 신선하다. 갖가지 컬러가 한 평면에 모여 있는데도 부담스럽지 않은 점이 마음에 든다. Maxime 항상 새로운 톤의 컬러나 예상치 못한 의외의 배합을 만들기 위해 애쓰는 편이다. 서로 어울리는 두 가지 색을 정해두고 반복해 사용하다 보면 결국 지루한 결과물만 남기 때문이다. 모든 컬러에서 리듬감이 느껴지는 작품을 만들고 싶다. Adèle 여름에 파란색을 보면 시원하고, 겨울에 파란색을 보면 춥다. 아틀리에 빙고의 아트워크가 시간과 계절에 따라 매번 다른 감상을 안기는 작품이었으면 좋겠다.

둘이서 하나의 작업을 하다 보면 의견 차이가 생길 때도 있을 것 같다. Maxime 추구하는 작업의 방향은 일치하지만 서로 다른 감성을 가졌다는 걸 느낄 때도 가끔 있다. 그래서 더 좋다. 생각을 나누고 조율해가는 과정을 즐기기 때문이다. Adèle 둘이 의견 차이를 겪는 건 그만큼 작업에 쏟는 열정이 강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결과물의 완성도도 중요하지만 작업을 진행하면서 보내는 둘만의 시간 또한 소중하다. 우리가 가장 좋아하는 작품은 파리의 뢰유(L’Oeil) 갤러리에 전시했던 ‘맘보(MAMBO)’ 프로젝트다. 진행 과정에서 다양한 사람을 만나며 많은 추억을 쌓은 작업이다.

 

아틀리에 빙고의 작품은 어디서 접할 수 있나? Maxime LA나 코펜하겐, 브뤼셀 등 유럽과 미국의 여러 도시에서 전시와 협업 프로젝트를 진행해왔다. 올해 6월에는 파리의 슬로 갤러리(Slow Galerie)에서, 여름에는 시카고의 한 미술관에서 전시를 연다.

도시에서 꽤 멀리 떨어진 생로랑쉬르세브르에서 지내고 있다. 그곳에 정착한 이유가 궁금하다. Adèle 막심과 함께 학교를 졸업하고 파리에서 각자 직장에 다니던 때가 있었다. 매일 똑같은 아침을 맞이하며 바쁘게 일만 하던 시기다. 늘 반복되는 일상에 조금씩 지쳐갔고, 아틀리에 빙고의 작업이 그리웠다. 그때 마침 지인에게서 연락이 왔다. 파리에서 멀리 떨어진 지방에 버려진 옛 공장을 작가의 공간으로 개조하는 프로젝트를 시작한다는 소식이었다. 우린 망설이지 않고 떠났고, 그렇게 둥지를 튼 곳이 여기다.

온통 두 사람의 취향으로 채운 공간이 근사해 보인다. 버려진 공장을 개조한 건축물이라는 사실도 재미있다. Maxime 생활 공간과 작업실이 연결된 구조다. 침대에 멍하니 누워 있다가 문득 영감이 떠오르면 바로 작업을 시작할 수 있어서 좋다. 앞쪽으로 난 커다란 창문으로 햇빛이 스며드는데, 반대편에는 오래된 스테인드글라스를 그대로 남겨두어 알록달록한 햇빛도 즐길 수 있다.

 

학교는 낭트, 직장은 파리. 두 사람은 늘 대도시에서만 살아왔다. 한적한 시골에서 생활하면서 아쉬운 것은 없나? Maxime 밤늦게까지 여기 저기 함께 몰려다니던 친구들이나 좋아하는 뮤지션의 콘서트가 생각날 때도 있지만 이곳에 온 걸 후회한 적은 없다. 이곳에서 보내는 시간은 늘 평화롭고 여유롭다. 조급할 필요 없이 느끼는 대로 자유롭게 표현하고 사는 삶이 좋다. Adèle 가끔 그리운 건 파리의 길거리 카페 테라스에 앉아 마시는 시원한 맥주, 그리고 다양한 전시들이다. 미팅이나 새 프로젝트 때문에 파리에 자주 가는 편이라 그때마다 즐긴다.

두 사람이 사는 일상의 풍경이 궁금하다. Adèle 파리에서는 아침이면 출근 시간에 맞추느라 허겁지겁 빵 한 조각을 손에 들고 집을 나서곤 했다. 이곳에서 맞는 아침은 완전히 다르다. 맛있는 커피를 마시며 여유롭게 하루를 시작한다. 오전에는 각자 하고 싶은 개인 작업을 따로 진행하다가 점심때 쯤 만나 같이 점심을 먹고, 반려견 ‘도넛’과 함께 숲 속을 산책한다. 이 시간은 내가 하루 중 가장 좋아하는 때다. Maxime 오후에는 공동 작업에 집중한다. 프로젝트에 따라 매번 다르지만 주로 실크스크린 작업처럼 기술적인부분을 내가 맡고, 아틀리에 빙고의 전체적인 프로젝트 구상과 진행은 아델이 담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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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업할 때는 주로 어디서 영감을 받나? 두 사람에게 특별한 영향을 주는 예술가는 누구인가? Maxime 1950년대 재즈 음반의 커버 디자인, 1960~70년대 프랑스에서 독특한 예술관을 가진 작가들의 작품을 싣던 잡지 <팬진(Fanzine)>, 어린아이들이 그린 그림은 내게 큰 영감이 된다. 요즘 가장 좋아하는 작가는 덴마크 출신의 작가 탈 R(Tal R)과 스위스에서 활동하는 리누스 빌(Linus Bill). Adèle 일상의 모든 것과 계절의 흐름에 영향을 받는 편이다. 내게 가장 큰 영향을 준 작가는 소니아 들로네, 앙리 마티스, 세르주 폴리아코프다.

아틀리에 빙고가 꿈꾸는 미래는 어떤 모습인가? Maxime 지금보다 더 조용하고 깊숙한 산골에 들어가 집을 짓고 사는 우리의 모습을 상상한다. Adèle 아틀리에 빙고의 감성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더욱 다양한 소재를 다루는 아티스트로 성장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