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적인 컬렉터의 취향, 182다크브라운

“10년 전 시카고와 뉴욕에서 유학하다 가구를 알게 됐어요. 첫 수집 가구가 임스 체어인데 지금도 집에서 사용하고 있죠.” 쇼룸이자 수장고, 만남의 장소로 사용하기 위해 ‘182다크브라운’을 연 김희수 대표. 오픈한 지 4개월 된 따끈따끈한 이 공간은 세운상가와 나란히 서 있다. 고가의 빈티지 가구 숍이 주로 성북동이나 청담동에 자리한 것을 고려하면 을지로는 과감한 선택이지만, 미술 작가인 그에게 을지로는 낯선 동네가 아니다.

내부를 천천히 둘러보니 사방이 ‘보물’이다. 조지 나카시마가 생존 당시 제작한 캡틴 체어와 에잇드로우캐비닛, 1950년대 한스 웨그너의 ch29, ch20 의자, 흠집 하나 찾기 어려운 한스 올센의 식탁 세트, 디터 람스가 제작한 진공관 TV까지 빈틈이 없다. “한스 올센 식탁 세트는 의자 다리가 3개인 것과 4개인 버전이 있고요. 같은 테이블이라 해도 6인용으로 확장되는 모델도 있어요.” 세심한 설명은 덤이다. 순수 미술을 기반으로 건축사와 디자인 역사를 공부하며 덩치를 키운 그의 수집품들은 작년 봄, 서울시립 남서울 생활미술관에서 열린 전시 <수집이 창조가 될 때>에도 초대됐다. 총 몇 점의 가구가 있는지 묻자 한참을 침묵하던 그는 “잘 모르겠어요. 빈티지 오디오 수는 파악했는데 2백여 점 있더라고요.”

주소 서울시 종로구 청계천로 155 대창빌딩 4층
영업시간 사전 문의
문의 02-2285-0182

 

 

 

‘혼술’과 ‘독서술’ 대환영, 광장

일본 가정식을 파는 ‘광장’의 컨셉트는 밥 먹는 술집. 더불어 쓰인 말은 ‘혼술’ ‘낮술’ ‘독서술’ ‘밥술’ 전문. 기승전, 술이랄까. 그런데 아이러니한 건 조용한 공간이 되길 원한다는 것. 그래서 이제 막 가게를 개업한 사장님이 가장 무서워하는 상황이 ‘대박’ 나는 것이란다. ‘혼술’ ‘독서술’… 혼자만의 시간을 즐기기에 좋은 공간이 되고 싶다는 얘기다. 밥집이라고 생각해도, 술집이라고 생각해도 신기할 만큼 테이블 여기저기에 콘센트를 설치한 이유다. 누구든 노트북을 들고 와서 작업할 수 있는 공간이 되기를 바라는 것.

일본어 번역 일을 병행하고 있는 김광연 대표가 광장을 차리게 된 계기도 재미있다. “처음엔 개인적인 용도로 쓸 작은 작업실을 찾았는데, 보면 볼수록 더 넓은 공간에 욕심이 나더라고요. 그러다 보니 아예 장사를 겸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순전히 개인적인 공간을 찾아 헤매다 일이 커진 케이스다. 다만 조리 경력이 있기에 주객이 전도되는 상황이 가능했달까.

점심 메뉴로 가장 인기 있는 치킨난방은 튀김옷을 입힌 치킨에 간장과 식초 소스를 바르고 마요네즈를 뿌리는 일본 미야자키 지방의 음식으로 새콤달콤하면서도 개운한 맛이 조화를 이룬다. 김광연 대표는 치킨난방이 누구나 쉽게 맛을 낼 수 있는 요리라고 수줍게 말하면서도 양배추를 통째로 구워 내는 양배추 스테이크를 설명할 땐 자신감이 넘친다. “일본에서 먹어보고 너무 맛있어서 레시피를 전수받아 메뉴에 넣었어요. 버터 풍미가 가득 스민 아삭한 양배추 스테이크는 아마 광장에서만 맛볼 수 있는 메뉴일 거예요.”

주소 서울시 중구 수표로 63-1 2층
영업시간 평일 13:00~23:00, 주말 및 공휴일 13:00~20:00

 

 

 

예술을 팝니다, 300/20

‘예술품이 아닌 예술을 팔자’는 목표로 출발한 공간. 기획을 담당하는 이미소와 창작 활동을 하는 왕자은 작가가 공동으로 운영하고 있다. 왕자은 작가는 ‘300/20’을 예술 작품의 판매와 유통을 담당하는 공간이라고 설명한다. “한승무라는 춤을 추는 작가가 있었어요. 800/40에서 그가 입은 코스튬을 전시했고, 이곳에서는 관객이 가진 물건 중 하나와 춤을 교환하는 형태로 판매가 이루어졌죠. 일종의 경험을 교환했달까요. 쉽게 설명하면 관객이 한승무 작가와 함께 코스튬을 입고 춤추는 경험을 한 거예요. 그 경험을 위해 자신의 물건을 돈 대신 지불한 것이고요.”

이처럼 300/20은 판매가 어려운 비물질 작품마저도 작가와 충분한 대화를 나누며 방법을 찾아 판매로 이끈다. 작가들에게 작품 판매는 곧 생계로 이어진다. 결국 작품이 판매되지 않으면 창작을 지속할 수가 없다는 얘기다. “300/20은 자기 목소리 내려고하는 작가들이 자기 길을 열심히 가길 바라요. 창작자가 창작을 지속할 수 있도록 돕고 싶은 거죠. 그래서 판매와 유통에 목표를 두는 거고요. 우리의 바람을 지속적으로 이루어나가려면 300/20 역시 영리 공간의 역할을 잘 수행해야 해요.”

그녀도 공간을 운영하는 기획자이자 창작자로서 모두의 생존을 위해서는 300/20이 영리 공간으로 유지돼야 한다고 설명한다. “결과적으로 이곳이 생계와 바람직한 창작 환경을 도모할 수 있는 장치가 되면 좋겠어요. 창작자들의 작품 입고 제안을 받아요. 입고 의사를 밝혀주시면 판매 방식을 논의한 이후, 300/20에서 판매가 이루어집니다. 우리의 문은 언제나 활짝 열려 있어요. 대중에게도 창작자에게도 말이죠.” 현재 300/20에서는 고산홍 작가가 대구에 자리한 실제 나이트클럽의 오브제들을 수집해서 전시, 판매하는 <금성나이트 컬렉션>이 진행 중이다.

주소 서울시 중구 을지로 157 대림상가 3층 라열 359호
영업시간 사전 문의
문의 010-5123-4489

 

 

 

따로 또 같이, 슬로우 슬로우 퀵 퀵

창작 스튜디오 ‘슬로우 슬로우 퀵 퀵’ 앞에 도착했을 때 생경한 풍경을 만났다. 간이 의자와 테이블을 가져다 놓은 3명의 아저씨가 화투를 치고 10여 명의 아저씨들이 빙 둘러 노름판을 구경하고 있었다. 스튜디오에 들어서자마자 평균연령 32세의 작가들에게 을지로가 낯설지 않느냐고 묻자 “옛 정취를 발견하는 즐거움이 있죠. 게다가 변두리가 아닌 도심에 있다는 것 자체가 재미있어요”라는 웃음이 돌아왔다.

중구청이 진행하는 ‘을지로 디자인 예술 프로젝트’의 일환인 을지1호 건물에 자리한 슬로우 슬로우 퀵 퀵은 아티스트(고상훈, 김갑환, 김양우, 김정화, 양아치, 윤여준) 6명이 작업 공간을 공유하고, 전시를 연다. 현재는 사운드 아티스트 오대리의 전시를 진행하고 있다. “작가 오대리 전시는 1층 쇼케이스 날 공연장이 꽉 찼을 정도로 반응이 좋았어요. 2013년 안마 기기나 의료 기기 등을 악기로 사용해 음악을 만들어서 알려진 작가로 이번에 2집이 나와 함께 전시하게 됐죠.”

6명의 운영진이자 작가는 설치미술, 퍼포먼스, 미술 이론 등 저마다 장르도 세계도 다르다. “우리의 교집합은 ‘생활 밀착형 예술’을 추구한다는 거예요. 이 공간 역시 삶과 연결돼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요.” 이런 이유로 한데 모일 수 있는 식당 프로젝트를 마련했는가 하면, 예술가들을 초빙해 식물을 소개하고 가꿔보는 ‘금강식물원’ 이라는 프로그램도 진행한다.

주소 서울시 중구 창경궁로5가길 11
영업시간 14:00~20:00(일요일 휴무)
문의 010-5553-28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