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요 봇

인스타그램을 켰는데 메인 페이지에 정신이 아득해질 정도로 예쁜 여자가 엉덩이와 입술을 삐죽 내민 사진이 있다면? 야하니까 ‘좋아요’를 누르고, 크게 보면 더 야하니까 팔로할 것이다. 대체 이런 분은 어떤 직종에 종사하실까? 궁금하니 그녀의 다른 사진도 찾아 볼 것이다. 오래된 사진까지 전부 다 야하다면, 팔로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타임라인에 보기 좋은 사진이 많으면 좋으니까. 새 차를 샀다고 해서 고급 스포츠카 카탈로그를 안 보나? 동물, 자동차, 풍경, 여자 모두 좋아하는 것이라 따르고 지지한다. 우리는 아름다운 것을 보기 위해 인스타그램을 설치했다. 여자의 야한 사진에 ‘좋아요’를 누르는 행위는 목적 없는 동의다. 그녀의 아름다움에 대한 동의 말이다. 거기까지다. 그 이상의 목적은 없다.

물론 이때 무의식은 그런 여자와 만나기를 욕망한다고 얘기할 수 있겠지. 하지만 그건 무의식이고. 대부분의 순수한 남자는 여자 사진에 ‘좋아요’를 누르며 그녀와의 만남을 기대하지는 않는다. 왜냐고? 가능성이 제로니까. 대체로 메인 페이지에 오르는 섹시한 여자에게는 셀 수 없이 많은 댓글이 달린다. 내가 누른 ‘좋아요’는 고환 끝에서 출발한 정자 하나처럼 존재감이 없다. 이 정도면 셀럽이다. 남자친구가 셀럽을 팔로하고, ‘좋아요’를 누르는 것이 여자친구에게 껄끄러운 일은 아닐 것이다. 다만 불편할 수는 있다. 섹시한 여자들로 채워진 SNS 팔로 목록이라면 만천하에 개인 컬렉션을 공개하는 것이니까. 하지만 대부분의 순수남들은 자신의 취향이 공개된다는 생각을 하지 못한다.

 

가치 평가 댓글남

카운터펀치를 날리기 전 끊임없이 잽을 넣는 것이 복싱의 기본. 이것은 인스타그램에도 적용된다. 인스타그램의 남성 댓글러 중에는 주목받는 여자들에게 일정 간격으로 꾸준히 댓글을 남기는 종족이 존재한다. 그들은 여자가 좋아할 법한 칭찬이나 상냥한 말을 내뱉지 않는다. 그렇다고 무뚝뚝한 것도 아니다. 이들의 특징은 가치 평가다. 사진이나 글에서 별것 아닌 단서 하나 가지고 가치 평가를 시전해 듣는 사람을 신경 쓰게 만든다. 자그마한 단서를 가지고 유추한 가치 평가가 제대로 들어맞거나 상대방 여자가 원하는 정보라면 댓글을 주고받으며 대화가 이어지기 때문에 가치 평가 댓글남들은 이 작은 희망에 배팅하는 것이다.

가치 평가 댓글남 중에서 여자친구가 있는 남자는 신중하다. 자신의 행동이 여자친구의 오해를 사는 것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작업 멘트가 아닌 다소 무미건조한 글을 남겨 관심을 끌고자 한다. 이를테면 이런 식이다. 고양이 사진을 올리면, ‘고양이를 좋아하시는군요. 고양이는 캔 음식을 주어서는 안 됩니다.’ 사무적이면서도 나름 부드러운 문체를 구사해 지적이고 젠틀한 이미지를 강조하는 것이다. 이런 유의 남자들은 댓글을 몇 번 주고받다가 서로 조금이라도 신뢰가 생겼다고 느끼면 DM을 보냈다. DM의 내용은 만나서 정보 공유를 하자는 것이다. ‘고양이 사료가 생겼는데, 필요하시다면 드리고자 합니다.’ 가치 평가 댓글남에게 댓글이 잽이라면 DM은 카운터펀치인 셈. 카운터펀치를 날리기 전에 경기를 끝내자.

 

박애주의 댓글러

이들을 포장할 가장 좋은 말을 찾아보니 박애주의가 있었다. 인스타그램의 박애주의자들은 칭찬밖에 모른다. ‘우아, 참 예쁘시네요.’ ‘취향 저격, 딱 제 스탈이에요.’ 솔직히 조금 못생기게 나온 사진인데 싶어도 입에 발린 소릴지언정 칭찬을 들으면 기분은 좋은 법. 박애주의자는 여자들의 그런 심리를 노린다. 그래서 박애주의자의 타깃은 셀럽이 아니다. 팔로어는 적지만 셀피가 괜찮은 여자다. 물론 자기 여자 말고. 여기서 조금 더 발전하면 뚜렷한 취미를 가진 여자로 넘어간다. 러닝 크루 등 활발히 운동하는 여자들에게 칭찬을 남기며 함께 운동할 것을 제안하는 식이다.

박애주의자는 상대방이 반응을 보이면 바로 DM을 보낸다. 박애주의자의 특징은 성미가 급하다는 것. 칭찬을 연발하다가 상대가 반응이 없으면 더 이상 댓글을 달지 않는다. 박애주의자의 여자친구는 자기 남자친구가 그런 줄 모르는 경우가 많다. 왜냐하면 인스타그램에 사진을 안 올리고, 여자친구 계정에 별다른 댓글을 남기지 않아 자신의 계정을 마치 활동을 잘 하지 않는 휴면 계정처럼 보이게 하기 때문이다. 박애주의자는 모든 사람을 평등하게 사랑하지만 자기 여자에게만은 매몰찬 족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