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장을 넘길 때마다 동그란 구멍과 좌우가 뒤바뀌어 있는 글씨가 눈에 띄는 큰 판형의 그림책. 조수진 작가의 새 책은 보통의 그림책과 다르다. “보통 그림책에는 기승전결이 뚜렷한 서사가 있지만 <거울책>은 달라요. 책을 가만히 펼쳐두고 이야기를 따라가기보다는 아이가 얼굴에 대보고 거울에 비춰 보며 자신의 감정을 찾아보는 놀이 책이에요.” 사랑, 기쁨, 부끄러움, 외로움 등 16가지 감정에 대한 글과 그림이 담긴 <거울책>은 부끄러움을 많이 타던 첫아이가 엄마에게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고 말문을 툭 터줬으면 하는 바람으로 만든 책이다. “빨강과 노랑 사이에 굉장히 많은 색깔이 있듯이 마음도 그렇잖아요. 기쁨과 슬픔 사이에 여러 감정이 있고 아이들도 어른만큼 그런 복잡한 감정을 똑같이 느껴요. 이 책을 통해 아직은 표현에 서툰 아이들이 마음에 대해 생각해보고 편하게 얘기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거울책>을 들고 거울 앞에 선 아이는 글을 읽고 그림을 보며 자신의 마음이 어떤지 생각할 시간을 가질 수 있다. 자신의 감정을 스스로 오롯이 들여다보는 일은 책 속에 심어둔 장치를 통해서 자연스레 이루어진다. 빈 공간에 새로운 감정을 그려 넣어 보고, 구멍에 눈을 맞추고 책장 넘어 거울을 보고, 종이를 실선에 따라 마음껏 뜯을 수도 있다. 이렇게 다양한 꼴을 지닌 책을 제작할 때 어려움이 따르는 것이 사실이다. 큰 판형에 표지와 속지에 구멍이 난 책을 만들기 위해서 꽤 오랜 시간과 품이 들기 때문이다. “실험적인 그림책을 계속 내는 출판사는 박수 받아 마땅해요. 우리나라 그림책 시장의 소비자층은 굉장히 얇거든요. 이런 책에 제법 큰돈을 지불하는 분도 드물고요. 어려운 길을 가는 거죠.”

어릴 때 외계인이 꿈이었다는 조수진은 외계 생물체의 존재에 대해 딸 아이와 이야기를 나눌 만큼 순수한 동심과 상상력을 여전히 지니고 있다. “이렇게 넓디넓은 우주에 우리만 존재한다고 생각하면 너무 비효율적이지 않아요? 우주 어딘가에 사는 그들이 보기엔 분명 우리가 외계인일 거예요.” 외계인을 꿈꾸던 그녀는 이제 우주를 주제로 한 그림책을 준비하며 새로운 실험을 준비하고 있다. “지금 제 머릿속에 있는 건 새로운 거예요. 누군가 했던 것 말고 새롭고 낯선 것이요. 낯선 그림, 낯선 이야기, 책으로 나왔을 땐 낯선 책. 그렇게 계속해서 신선한 그림책을 만들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