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짝 윤정이와 내게 강릉에 가는 일은 무엇이든 평소에 하던 것보다 좋은 걸 하는 거였다. 극장은 동해에도 있었지만 신영극장은 동해의 극장보다 컸고 팝콘도 팔았다. 당시 극장은 걸핏하면 동시 상영을 했는데 신영극장에는 손예진, 조승우 주연의 <클래식>과 제목이 기억나지 않는 키아누 리브스 주연의 외화가 걸려 있었다. 윤정이는 <클래식>을 보고 싶어 했다. 내가 심드렁한 얼굴로 보기 시작한 <클랙식>에 훅 빠져든 순간은 소녀와 소년이 반딧불이를 잡는 장면이었을까, 초록이 무성한 1990년대 대학교 캠퍼스에서 손예진이 전공 책을 팔에 끼고 걷는 장면이었을까. 중학교 2학년이었던 우리는 극장을 나오면서 끊임없이 영화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고 조금 쑥스러운 기분으로 직원에게 부탁해 포스터를 한 장씩 나눠 가졌다. 길을 걷다가 조깅을 하다가 문득 델리스파이스의 ‘고백’을 들으면 오랜 기억 속 어딘가에서 따듯하게 빛나고 있는 그때가 떠오른다. 윤정이와 함께했던 그해 겨울, 아직은 피로가 익숙지 않았던 기차 안의 우리 둘과 창밖으로 펼쳐지던 겨울 바다. 김소영(<마리끌레르> 피처 에디터)

 

 

좁디좁은 경주 시내에 라이벌인 두 극장이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었다. 대왕시네마와 아카데미극장. 지금처럼 멀티 상영관이 아니라, 한 극장에 한 관밖에 없던 시절이었다. 좌석이 지정된 것도 아니어서 그 시간대에 맞춰 표를 끊어 들어가 대충 마음에 드는 자리에 앉아 영화를 중간부터 보다가 다음 회가 시작하고 보던 곳까지 보다 나오는 아저씨들도 많았다. 영화가 맘에 들면 빈자리에 앉아 한 번 더 보고 나와도 아무도 뭐라고 하지 않았다. 그때부터 영화가 좋았나 보다. 너무 작아 유난히 할 게 없었던 동네에서 영화는 유일하게 꿈꿀 수 있는 나의 판타지였으니까. 그 작은 시골 극장 구석 자리에 앉아 꿈만 꾸던 소녀는 10년 후 영화 엔딩 크레딧에 이름을 올리게 되었다. 류지은(영화 마케터)

 

 

대학 졸업반 시절 우리에게 대세는 9급 공무원이었다. 뭐가 되고 싶은지도 모른 채 한국사를 공부하고 가산점이 붙는 자격증을 취득하려 기를 쓸 때 아이러니하게도 시네마테크를 알게 되었다. 이름도 아카데믹하고 주변 친구들도 잘 모르는 수영강 어디쯤의 시네마테크는 남들과 나를 구분 짓는 취미이자 취준생의 생산적 활동이 가능한 통로였다. 그곳에서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환상의 빛>을 보았고 이창동과 류승완의 사인을 받았다. ‘어쩌면 나도 이 사람들과 같이 일할 수 있지 않을까?’ 사소한 점 같았던 생각은 어느새 열망이 되어 나를 휘감았고 꿈 없던 지방대 문과생은 몇 년 뒤 영화업계 종사자가 되었다. 정은년(영화 마케터)

 

 

시내에 있던 경양식집에서 막 저녁 식사를 마친 참이었다. 아버지와 동생은 피곤하다며 집으로 돌아갔고 영화를 무척 좋아하셨던 엄마 때문에 나는 내 의지와 상관없이 극장에 끌려갔다. 포항극장에는 동시 (연속) 상영이라는 게 있었다. 그날은 <텔 미 썸딩>과 <주유소 습격사건>을 같이 상영한 날이었고, 한 편이 끝나면 잠시 쉬었다가 다음 영화를 상영했다. 미성년자였던 내게는 두 편 다 너무나 강렬한 장면의 연속이었는데, 엄마는 그런 나는 아랑곳하지 않고 영화에 푹 빠져들었다. (정작 아들의 영화를 본 후에는 그런 표정은 온데간데없이 비판을 쏟아냈다.) 그날 나는 악몽까지 꿨지만 엄마는 이후 한석규를 더 깊이 사랑했고 ‘유지태의 초록색 수트’를 입에 달고 살았다. 이상덕(<여자들>감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