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쪽으로는 스웨덴, 북쪽으로는 핀란드를 둔 에스토니아는 국토의 50퍼센트가 숲으로 이뤄져 있다. 에스토니아 사람들에게 숲은 중요한 장소다. 낙엽 수림이 우거진 에스토니아 남부 시골 마을에는 으레 통나무로 만든 작은 오두막들이 이끼로 덮여 있는데 이 오두막이 바로 스모크 사우나(savusauna)다. 사우나에 관한 가장 오래된 참고 문헌에 따르면 사우나의 역사는 최소 13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이들에게 스모크 사우나는 목욕 풍습은 물론 마사지용 나뭇가지를 준비하는 기술, 사우나 건축과 수리, 사우나 내에서 만드는 고기 훈연 요리 등 삶의 다양한 요소가 복합적으로 어우러진 전통문화다. 유네스코는 2014년 에스토니아의 스모크 사우나를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지정하며 그 가치를 새롭게 조명했다.

굴뚝이 없는 특수한 형태의 사우나인 스모크 사우나. 커다란 돌 스토브에 나무를 태우면 오리나무와 껍질이 벗겨진 자작나무의 향과 연기가 사우나 안에 가득 찬다. 굴뚝이 없어 연기가 밖으로 빠지지 않고 실내에서 순환하는데 일정 시간이 지나면 그 향이 밖으로 서서히 퍼져나간다. 에스토니아의 스모크 사우나는 주로 가족과 친구 등 여러 사람이 함께 즐기는 것이 풍습. 이들은 함께 사우나의 열기로 몸이 땀에 흠뻑 젖을 때까지 기다린다. 이내 달궈진 돌에 물을 끼얹어 공기가 뜨거운 증기를 머금으면 사람들은 숲에서 가져온 나뭇가지 다발로 피부를 부드럽게 두드려 묵은 때를 벗겨내기 시작한다. 땀을 흠뻑 쏟아내고 혈액순환이 빨라지는 걸 느끼며 몸을 두드리고 안정을 취하다 호수로 뛰어든다. 그렇게 3~5시간 동안 뜨거운 오두막과 차가운 연못을 오가며 사우나를 즐긴다. 사우나를 마치면 마음이 편안해지고 몸은 가벼워지며 통증이 가라앉고 원기가 회복된다. 에스토니아인은 그렇게 수 세대에 걸쳐 이 작은 오두막 안에서 삶과 죽음, 치유와 회복의 순간을 경험해왔다.

오늘날 에스토니아의 스모크 사우나 전통은 마을의 옛 구조물이 잘 보존돼 있고, 전통적인 농장의 형태가 훼손되지 않은 남부 지역의 버로마 (Võromaa)와 세투마(Setumaa)를 중심으로 이어지고 있다. 이 두 지역 외에 에스토니아 동부와 서부 섬 지역에도 어느 정도 유지되고 있다. 이와 유사한 풍습은 핀란드나 라트비아, 러시아 등 이웃 나라와 조금 더 멀리 떨어져 있는 스웨덴, 노르웨이 등지에서도 발견된다. 기본적으로 사우나는 핀우그리아어파(Finno-Ugric, 헝가리·핀란드·에스토니아인)에 속하는 사람들의 전통이다.

 

스모크사우나 사우나 에스토니아

 

에스토니아 남부 지역인 버로마는 높은 산과 깊은 숲 사이사이에 마을이 들어서 있는데, 전체 주민의 3분의 2에 해당하는 사람들이 수 세대를 거쳐 살아오며 그 풍습을 이어가고 있다. 스모크 사우나 전통은 주로 가족 공동체 안에서 한 세대에서 다음 세대로 전승되는데 가족 중 한 사람이 사우나 가열과 청소, 물 길어 오기, 나뭇가지 준비하기 등 사우나 준비 과정을 책임진다. 이런 일은 대체로 가족 중 최고 연장자가 도맡는데 보통 손자, 손녀를 대동해 아이들이 사우나에 필요한 준비와 기술을 자연스럽게 익히게 한다. 신성한 영역으로 간주되는 사우나는 반드시 지켜야 하는 행동 규칙이 있고, 여름이 지나면 가족 구성원 모두가 한 해 사용할 나뭇가지와 장작을 준비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아이들은 적합한 목재를 고르는 방법을 익히고, 사우나 수리나 화덕의 돌을 교체하는 등의 작업을 주의 깊게 관찰하면서 사우나 운용 원리를 이해하게 된다. 그렇게 전통은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대부분의 전통이 그러하듯 스모크 사우나 역시 시간이 지남에 따라 변화를 겪고 있다. 사우나는 더 이상 과거처럼 에스토니아 사람들의 탄생과 죽음이 이뤄지는 신성한 공간이 아니며, 현대 의술이 도입되면서 그간 사우나 안에서 행해지던 치유의 개념도 사라지고 있다. 과거에 사우나 안에서 하던 집안일들, 예를 들어 옥수수 싹을 틔우거나 양모 섬유를 방축하는 모습은 이제 볼 수 없지만 고기를 훈연하는 풍습은 오늘날까지도 남아 있다. 그럼에도 에스토니아 사람들은 스모크 사우나 전통에 경외심을 지니고 있다. 나무가 품은 향이 행운을 부르고 불행을 막아준다고 믿는다. 이들은 여전히 주말이면 이웃과 친구를 초대해 함께 사우나를 즐긴다. 도시에서 사는 젊은이들은 50킬로미터 거리를 운전하는 걸 마다않고 사우나를 찾는다. 이들은 온전히 전통 방식에 따라 하루를 보내고 난 뒤 한목소리로 말한다. 스모크 사우나는 자신을 더욱 잘 볼 수 있게 하고 그 결과 바라는 것과 떨쳐버리고 싶은 것을 명확히 구분할 수 있게 한다고 말이다. 이들의 기도는 단순하다. ‘가족의 행운을 빌고, 미래의 걱정을 떨쳐버리고 싶다’고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