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웅 이태웅pd 88/18 스포츠PD

자기소개 이태웅. KBS 스포츠국에서 PD로 일하며 부정기적으로 스포츠 다큐멘터리를 만든다.

스포츠라는 당의정 스포츠는 당의정 같은 거라 생각한다. 사람 사는 이야기의 여러 측면이 스포츠라는 형식을 입고 있는 것. 지난해 방송한 다큐멘터리 <88/18>의 경우 1988년 서울 올림픽을 다루지만, 올림픽 자체에 대한 얘기는 거의 없다. 다큐멘터리를 만들수록 스포츠를 핑계로 하고 싶은 얘기를 하게 된다. 스포츠를 통해 여러 층위의 이야기를 다루는 것을 즐긴다. 어떤 경기나 대회가 열렸을 때, 그 배경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에 대해. 2011년 씨름을 다룬 <천하장사 만만세>를 시작으로 본격적으로 다큐멘터리 제작에 뛰어들었는데, 어쩌다 보니 지금 스포츠국에서 사실상 다큐멘터리 경험이 가장 많은 사람이 됐다. 그 덕분에 기존 문법에서 어느 정도 벗어난 다큐멘터리를 만들 수 있게 됐다.

88/18 서울 올림픽에 대한 조사를 5~6년 전부터 시작했다. 올림픽이라는 사건 안에 굉장히 다양한 주제가 담겨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처음엔 ‘평화의 문’을 설계한 건축가 김중업과 종합운동장 주경기장을 설계한 김수근의 대립 구도에 관심이 생겼다. 그러다 당시 서울 도시계획 관련 자료를 찾아보니, 서울이란 도시 자체가 올림픽 때문에 굉장히 달라졌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국내 정치적으로도 큰 영향을 끼쳤다. 세계사적으로 변곡점이 된 이벤트이기도 하다. 마침 평창 동계올림픽이 서울 올림픽 30주년이 되는 해에 열리기도 했고. 1979년부터 1990년까지의 KBS 방송 아카이브에서 8백 편 정도의 프로그램을 추렸다. 거기서 정수를 뽑아 정리하고 다시 정리하는 작업을 거쳐 57분 분량의 다큐멘터리로 완성했다. 방대한 자료에서 출발해 다큐멘터리를 편집하면서 이 작업이 고고학자의 일과 비슷하다는 생각을 했다. 조각조각을 찾아내 튼튼하게 쌓는 것. 다큐멘터리에 삽입되는 내레이션은 접착제 같은 것이라 여겨 피치 못할 상황이 아니면 선호하지 않는다. 신(scene)과 신의 연결만으로 접착제 없이 예쁘게 끼워 맞출 수 있을 때 큰 성취감을 느낀다. 내용을 도자기에 빗대자면, 입체적 모양으로 방향에 따라 다르게 보이는 도자기를 쌓을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겠지.

믿음직한 동료들 <천하장사 만만세>의 시대와 소재 자체가 디제이 소울스케이프, 디자이너 김기조와 무척 잘 어울렸다. 이후 몇 편의 다큐멘터리를 연이어 함께 진행하며 믿음이 공고해졌다. 예컨대 과거엔 음악이 들어갈 지점을 정해서 작업을 의뢰했다면, 이제는 편집본을 보내고 거의 전적으로 맡긴다. <88/18>의 알록달록한 자막도 다 김기조의 아이디어다. 그 덕분에 더 세련되다면 세련된 결과물이 나올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민혜경 작가의 이름도 빼놓을 수 없다.

룰 브레이킹이란 남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망설일 시간에 과감하게 지르는 것. 스포츠국은 보통 스포츠 중계를 하는데 다큐멘터리를 주로 만들었으니, 그 자체가 일종의 룰 브레이킹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다만 스포츠국은 아무래도 다큐멘터리의 변방이라 룰 자체가 다른 다큐멘터리 전문 부서에 비해 엄격하진 않았던 것 같다.

다큐멘터리 PD가 보는 스포츠 축구를 좋아한다. 골보다 대지를 가르는 스루패스가 착 들어갈 때 쾌감을 느낀다. 순간적으로 안 보이던 공간이 확 열리는 듯한 느낌이다. 요즘은 그런 스타일의 경기를 하는 선수가 좀체 없지만.

마음가짐 항상 지금 만드는 게 마지막일 수 있다는 생각을 한다. 스포츠 다큐멘터리는 정기적으로 편성되는 것이 아니라, 특별한 계기가 있어야 제작에 들어가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그러니 하고 싶은 거 다 해본다. ‘그만하라고 하면 그만하지 뭐’ 하는 마음. 과감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