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채은
소프트웨어 개발자 1996

페미니즘? 하나의 인격체를 온전한 개인으로 바라보지 못하게 방해하는 모든 정보값을 버리는 일. 그 정보값이 아무 근거 없는 편견이든, 현재 사회를 반영하는 통계의 결과이든 상관없이.

대한민국에서 20대, 젊은 여성으로 사는 일 엄마 세대로부터 ‘너는 결혼하지 말고 성공해서 잘 살아라’라는 말을 들으며 자란 이들이 꽤 있는 세대. 성평등 관련 문제를 인지한 이후로는 여성에 대한 차별과 편견을 깨는 방향으로 살아가고 싶은 마음이 크고, 그렇게 하려고 노력한다. 현재 몸담고 있는 소프트웨어 분야에서 동일한 능력을 갖추고 있어도 여성이라는 사실이 드러나면 능력을 낮게 평가한다는 연구나 실험 결과를 보면서 젊은 여성이자 직업인으로서 어떤 순간에는 내 동료나 상사도 그럴까 걱정한다.

듣고 싶지 않은 말 성차별과 편견을 담은 농담. 1년 전부터 영어권에서 ‘중국에서는 사회성 부족한 개발자들을 위해 여성 치어리더를 고용한다더라’라는 코멘트와 함께 컴퓨터 앞에 앉아 있는 남자들과 그 뒤에서 안마를 하는 여성이 함께 찍힌 사진이 웃긴 짤이라며 돌아다닌다. 어이없고 모욕감을 느꼈다. 편견을 재생산하는 농담은 그만 듣고 보고 싶다.

일상 속 실천 모교에서 재학생들과 ‘Girls Who Code’라는 이름의 무료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중·고교 여학생을 대상으로 코딩과 엔지니어링을 접하고, 다른 여성 과학자, 공학자, 엔지니어들을 만날 기회를 주는 일이다. 재학생 때부터 시작해 졸업 후에도 운영을 돕고 있다. 이 프로그램은 올해까지만 돕고 그다음 하고 싶은 일을 계획 중이다.

주목하는 젠더 이슈 많은 학생이 성별에 따른 편견 없이 자유롭게 전공과 직업을 선택할 수 있도록 돕고 싶다. 이 밖에도 한국에서 있었던 ‘불편한 용기 시위’ ‘검은 시위’ 등은 무척 멋있었고, 최근 성차별적 호칭을 바꾼다는데 이 또한 기다려진다. 혼인신고 시 자녀의 성을 결정하는 부분에서 불합리한 점이 많은데 이 또한 고쳤으면 한다.

가장 아름다운 나 내가 강하다고 느낄 때. 연약하거나 누군가에게 의지하기보다 더 강한 사람이 되고 싶을 때. 과거에 연인 관계에서는 약한 척, 부족한 척해야 한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이제는 스스로 강하고, 강하고 싶다는 마음이 들게 하는 사람들과 있고 싶다.

나의 위대한 여성 마리아 기니(Maria Gini). 학부생일 때 정신적으로 의지한 교수님이다. 이탈리아 출신의 이민자로 AI와 로봇공학(AI/Robotics) 학계에서 명성이 있고, 여학생들이 컴퓨터 사이언스 전공을 더 많이 할 수 있도록 다양한 활동을 하는 분이다. 내 삶에도 큰 영향을 줬다.

#맨스플레인 본인이 대화하고 있는 상대가 그 분야에서 본인보다 전문가이거나 실력이 뛰어날 수도 있다는 건 당연한 사실인데, 그걸 잊어버리면 아주 부끄러워지는 일이 많지 않은가요?

작가 간호사 배우지망생 최예다운

최예다운 작가·간호사·배우 지망생 1995

페미니즘? 성차별과 성 대결적 싸움 없이 여성의 인권 증진과 존중을 위한 모든 성별이 함께하는 운동. 여자이기 때문에 더 우대받을 필요도, 여성 인권 향상을 위한 남성 차별도 없어야 한다.

대한민국에서 20대, 젊은 여성으로 사는 일 젊음과 여성을 돈 주고 살 수 있다고 생각하는 소수의 사람에게 차별 받지 않기 위해 이 악물고 아등바등 살고 있다.

듣고 싶지 않은 말 간호학과를 다니면서 가장 많이 들었고, 듣고 싶지 않았던 말은 ‘의사한테 시집가서 인생 쉽게 살면 되겠네’. 도대체 화이트 가운 맨이 얼마나 대단하다고 생각하고, 여성 간호사를 얼마나 우습게 보면 이런 말도 안되는 말을 하는 것일까.

일상 속 실천 여초 사이트에서 사용하는 남성 비하 단어나 은어를 사용하지 않기 위해 더 공부하고 있다. 특정 인권만이 향상되어야 평등이 이루어진다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상호 존중이 중요하다.

나는 남성 혐오 발언을 하지 않습니다.

성평등 의식이 진보하고 있다고 느낀 사건이나 순간 명절이나 제사 때 여자는 일을 하고, 남자는 앉아서 주는 밥이나 술을 먹지 않는 모습을 볼 때.

가장 아름다운 나 날마다 생각한다. 매일의 내 모습은 늘 아름답다.

나의 위대한 여성 나이팅게일. 여성이 인격체로 취급하지 않던 시대에 귀족 신분을 버리고 생명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쳤다. 크림전쟁 때 부상자들을 돌보고, 병원의 환경과 간호사로서 입지를 다졌던 내 인생 최고의 여성.

#탈코르셋 #노브라 나는 코르셋 조임을 당해본 적이 없다고 생각했지만 (평소에 브래지어를 착용하지 않고, 화장도 잘 하지 않는다. 이유는 탈코르셋 실천이라기보다 그냥 내가 편해서) 은연중에 공식적인 장소에 갈 때 브래지어를 착용하고 화장하는 내 모습을 보면서 ‘나는 왜 이러고 있나. 언제쯤이면 눈치 보지 않고 평소처럼 그런 자리에 설 수 있나’ 생각해본 적 있다.

 

백가희 작가 1994

주눅 들어 살지 않으려고 한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나도 여성이고, 나는 누군가의 평가 대상이 아니니까. 나를 있는 그대로 사랑하는 연습을 하고 있다.

페미니즘? 여성인권운동. 성별이 여성이라는 이유로 제약받았던 모든 행동에 자유를 부여하고 싶다. 자유로워지려면 여성 권익이 상승해야 하고, 권익 상승을 위한 기본 바탕에는 ‘인권’이 있다. 가볍게 휩쓸릴 일이 아니라는 말이다. 여성 인권을 걸고 하는 운동. 이 무게감으로 정의하고 싶다.

성 역할에서 해방됐던 계기 처음으로 머리를 짧게 잘랐을 때. 내게 쇼트커트란 ‘얼굴형이 예쁜 사람만 어울리는 헤어스타일’이었다. 흔히 말하는 여성스러운 원피스를 좋아했고, 하이힐도 많았다. 탈코르셋 운동에 동참하면서 머리를 짧게 잘랐는데 그 순간 느꼈다. 그동안 화장을 하고 아침에 2시간씩 들여 꾸민 건 내가 진정으로 ‘좋아서 하는 것이’아니라 ‘사회적 강요’가 내게 배어 있었기 때문임을.

일상 속 실천 여성들을 평가하지 않는다. 나 자신도 그 평가가 지겨워 탈코르셋 운동에 동참했으니까. 여성을 평가하지도 않고, 여성에게 아무런 제약을 두지도 않는다.

성평등 의식이 진보하고 있다고 느낀 사건이나 순간 아직 만족할 사건은 없었다. 여성이 인생을 걸고 목소리를 낸 사건인 ‘미투 운동’을 기자들이 ‘빚투’라며 빚 폭로 사건에 쓰거나 시도 때도 없이 여성 혐오 범죄가 일어나는 현실을 보니까. 다만 TV 예능 프로나 드라마에서 문화의 주소비층인 여성의 눈치를 본다는 생각을 한다. 눈치를 좀 더 많이 보면 좋겠다.

가장 아름다운 나 아름답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는 모습.

나의 위대한 여성 나혜석 시인. 대한민국 최초의 서양화가이자 작가라는 것 자체가 선망의 대상이다. 유교 관념을 중시하던 한국 사회에서 ‘여성도 인간임’을 주장하고, 여성의 목소리를 높이는 글을 쓰고 운동을 했다는 사실에 깊은 존경을 표한다. 내가 그 시대에 살았다면, 절대 하지 못했을 일이다.

#탈코르셋 타인에게 탈코르셋을 강요하진 않습니다. 다만 코르셋 전시만이라도 하지 않는 게 타인의 인권 운동에 도움을 주는 일 아닐까요. 내가 좀 더 예쁘고 싶을 때, 한쪽에서는 외모 탄압이 일어납니다. 그 대상이 청소년기 학생일 수도, 중·장년층일 수도 있습니다. 또 페미니스트 여성이 탈코르셋을 한다는 건 수많은 의의를 담은 일입니다. ‘편하게 살려고’라는 건 이유 중 하나일 순 있겠지만 그게 전부는 아닙니다. 사회적 행동에 개인의 편리성을 끼워 넣는 순간 개개인의 모든 행동이 합리화되고 사회는 전진할 힘을 잃습니다. 사회·문화적 맥락으로 의의를 담아 하는 행동에 개인의 편리를 운운할 시기는 지났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