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쏘 쿨’한 섹스

7, 8월이 언제부터 이렇게 고통스러웠을까. 공기를 쥐어짜면 물이 나올 수도 있을 것 같은 극한의 습도 속에서 이웃집 뒤뜰에 파인애플과 바나나가 자라기 시작했다는 인터넷 뉴스를 접하고, 35℃ 정도는 따뜻한 거라고 정신 승리를 외치게 되는, 이 세상 더위가 아닌 듯한 한국의 여름. 그래도 나는 이런 혹독한 여름의 섹스를 사계절 중 가장 좋아한다. 땀 범벅의 엉망진창 섹스를 말하는 건 아니다. 그런 가학적 취미는 없다. 연중 가장 더운 때 제일 쿨한 섹스를 즐길 수 있는 아이러니의 일등 공신은 에어컨이다. 선풍기 바람처럼 요란스럽지 않고 천장에서 솔솔 불어오는 에어컨의 순풍은 혼을 빼놓는 섹스도 땀나는 수고 없이 깔끔하게 마무리할 수 있게 한다. 비록 실내 온도가 같아도 한여름 에어컨을 튼 공간의 서늘함은 가을이나 겨울과는 다르다. 포근하지만 격한 피스톤 운동에는 도움이 되지 않는 두툼한 차렵이불이나 영 분위기를 깨는 수면 양말도, 세탁하기 골치 아파 뭐가 묻을까 봐 자꾸 신경 쓰이는 오리털 토퍼도 없다. 인견 이불의 적당히 빳빳한 감촉과 사각거리는 소리, 내 몸에 포개진 그의 따끈한 체온, 그에 대비되어 나를 애무하던 그가 핥은 곳에 에어컨 바람이 슬쩍 지나갈 때 오소소 돋는 닭살의 느낌까지 여름밤의 홈 섹스는 생각지 못한 오감을 일깨운다. 다만 침대까지 갈 새 없이 거실의 라탄 러그 위에서 일을 치르려고 한 건 실수였다. 아무리 급해도 등나무 껍질에 엉덩이를 비비는 일은 없어야 한다. I_ 프리랜서, 31세

바닷가 랩소디

여름이 다가오고 기온이 올라갈수록 성욕은 그에 반비례한다고 하는데, 나는 조금 다르다. 햇볕 아래서 몸속에 비타민 D와 세로토닌을 흠뻑 충전하며 활기를 되찾는 여름의 나는, 살을 에는 추위에 존재 자체가 쪼그라드는 것 같은 겨울과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된다. 남자친구도 비슷한 성향이라 마찬가지다. 그런 우리가 꼽는 여름 섹스의 하이라이트는 역시 휴가지 섹스. 발갛게 익기 시작한 나의 맨살은 창백했던 지난겨울의 흔적을 없애주는 선탠 로션의 도움을 받아 반질한 윤기를 띠고, 선베드에 누운 나를 바라보는 남자친구의 노골적인 눈길은 불볕더위만큼이나 활활 타오른다. 나 또한 평소라면 절대 입지 않을 짧은 수영복 아래 드러나는 그의 허벅지, 모래가 점점이 달라붙은 그을린 어깨, 흠뻑 젖어 한껏 달라붙은 수영복 위로 슬며시 드러나는 페니스의 윤곽 등, 여름 필터를 씌운 남자친구의 비주얼을 찬양해 마지않는다. 그렇게 마음속에 불길을 머금은 채 바닷가에서 한나절을 보내고 숙소로 돌아올 무렵이면 그도 나도 만반의 준비가돼 있다. 그의 허리에 팔을 두르고 그를 살짝 핥아본다. 가끔 잠자리에서 우연찮게(내 의지와 상관없이) 맛보는 땀의 텁텁한 짠맛과 달리, 그의 가슴팍에서 증발하고 남은 바닷물의 소금기에는 혀끝으로 느껴지는 낭만이 있다. 창을 통해 흘러 들어오는 잔잔한 파도 소리에 맞추어 절정에 이르는 동안 생각한다. 섹스가 매일 이랬으면 좋겠다고. O_ 직장인, 29세

여름 원피스계의 다크호스

지난 연애사를 돌아볼 때 여름에 만나던 남자들이 한결같이 격하게 반응하는 내 옷차림이 하나 있다. 선 드레스다. 하늘거리는 얇은 소재라 상체는 적당히 붙고, 허리부터 넓게 퍼지는 간편한 휴양지용 플리츠 원피스. 사실 내가 입는 선 드레스는 핫팬츠처럼 짧지도, 캐미솔처럼 민소매 끈이 가늘거나 노출이 적나라하지도 않다. 그런데도 기억에 남을 짜릿한 여름밤을 꼽으라면 열에 아홉은 이 선 드레스를 입었을 때라고 말할 수 있다. 남자들이 말하는 섹스어필 포인트는 이렇다. 가슴과 쇄골을 따라 흐르는 드레스의 실루엣과 바람이라도 불면 치맛단이 찰랑이며 은근하게 드러나는 엉덩이와 허벅지의 곡선. 그게 짧고 타이트한 옷보다도 훨씬 관능적이란다. 선 드레스를 입은 날엔 데이트를 할 때 그의 손길이 평소보다 바쁘다. 셔츠처럼 단추가 주르르 달려 있기라도 하면 굳이 마지막 단추까지 다 열어보고 싶어 한다. 한편 서로 엄청 달아오른 때는 무얼 벗고 자시고 할 새 없이 팬티만 단숨에 벗어던지고 본론에 들어갈 수도 있다. 드레스 자체가 분위기 메이커인 셈이다. 물론 다른 계절에도 뜨거운 밤을 위한 회심의 옷차림은 있지만, 이만큼 편하게 나를 열정의 섹스로 이끄는 건 없다. L_ 자영업, 33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