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 인도네시아

인도네시아 카발루탄 마을 근처, 암석과 산호초 사이에서 가재를 잡는 바자우라우트족. 토기안섬 부근에서 작살총으로 참바리를 포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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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중 가옥을 세우고 연결해 바다 위 마을을 만든 바자우라우트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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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아이들은 학교를 다니며 정규교육을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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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 수중 장비 없이 바다에 들어가 문어를 잡는 이.

인도네시아 카발루탄(Kabalutan)의 한 마을에 있는 조노 레싱(Jono Lessing)의 집. 거친 나무 바닥 사이, 그 아래 맑은 크리스털 초록빛 술라 웨시(Sulawesi) 바다가 넘실거리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이 마을의 집이 대부분 그러하듯 레싱의 집 역시 밀물과 썰물의 영향을 받지 않는 높이의 바다 위에 지었다. 레싱이 아내와 어린 아들과 함께 사는 이 집은 그가 가장 편안함을 느끼는 공간이다. 이보다 바다 가까이에 사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레싱은 어린 시절 육지에 발을 디딜 일이 거의 없었다. 그의 부모는 수세기 동안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필리핀 사이 산호 삼각지대인 무지갯빛 바다에서 보트를 타고 살았던 해상 유랑 문화를 이은 마지막 세대이기 때문이다.

바다 유목민 혹은 바다 집시라고 불리는 바자우라우트(BajauLaut)는 세상에서 가장 독특하고 전문화된 부족 중 하나다. 생존을 위해 바다에 의존하는 그들은 놀라운 프리다이빙 능력으로 유명한데, 수분간 숨을 참고 놀라울 만큼 깊은 곳까지 들어가 직접 만든 작살총으로 저녁 거리를 잡는다. 그들은 깊은 물속까지 다이빙하는 데 용이하도록 일반 사람보다 비장이 크게 진화했으며, 일부 사람들은 물속에서 초점을 더 잘 맞출 수 있게 시력이 발달했다. “저희 삶의 무대는 오직 바다입니다, 바다가 없는 삶은 끔찍할 거예요.”라고 레싱은 말한다. 웃는 아이들을 가득 실은 목선들이 집 뒤쪽으로 물을 튀기며 지나간다.

최근 수십 년 동안 바자우라우트족의 삶은 격변을 맞았다. 어족 자원 감소, 정부의 압력, 현대의 안락한 생활에 직면하며 소수를 제외한 거의 모든 사람들이 서서히 방랑 생활을 포기하고 술라웨시 앞바다 토기안섬(Togean Island)의 마을에 정착했다.

부어부터 해삼까지 바다에 사는 모든 생물을 잡으며 하루를 보내는 레싱은 자신을 ‘문어 전문가’로 묘사하지만, 그는 부모 세대의 놀라운 기술과 지식을 보유한 몇 안 되는 사람들 중 하나다. 어느 날 오후, 그는 나중에 문어잡이를 나갈 때 나를 데려가겠다고 했다. 우리는 문어잡이 당일 아침 일찍 그의 작은 목선을 타고 출발했다. 약 한 시간 후, 레싱은 얕은 산호초 위에 배를 멈추고 수중 마스크에 김이 서리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물속에서 해면 같은 것을 뽑아내어 문지른 후 바로 바다로 뛰어들었다. 그는 한 손으로는 배를 끌고, 다른 한 손에는 문어 미끼를 든 채 바다를 헤치고 나아간다. 나는 지느러미 같은 기구를 착용하고(바자우라우트족은 착용하지 않는다) 배나 미끼 같은 짐이 없는데도 그를 따라갈 수 없을 지경이었다. 이번 문어잡이에서는 딱 한 마리만 잡았는데 문어는 레싱의 단단한 손아귀 안에서 꿈틀거리며 짙은 먹물을 구름처럼 뿜었다.

그날 오후, 그의 다이빙 솜씨를 보니 더욱 놀라웠다. 다부지고 약간통통한 체격, 숙련된 편안한 자세로 몇 번의 시도만으로 무려 수심 20m 아래로 잠수해 바다 밑 구석구석의 문어를 찾는 그에게 물속은 물 밖보다 편안한 세상 같았다. 그의 장비는 직접 깎은 나무 작살총으로 금속 볼트가 달려 있고, 타이어 고무로 만든 끈으로 묶여 있다. 그의 작살총은 표적을 빗나가는 법이 거의 없다. 세 살짜리 아들에게 이미 기술을 가르치고 있는 레싱은 “다이빙은 우리 문화의 중요한 부분입니다”라고 말한다. 하지만 그는 이 전통이 급격히 사라지고 있다는 사실 또한 알고 있다. 바자우라우트족의 전통적인 바다에 기댄 생활 방식을 낭만적으로 묘사하기는 쉽다. 하지만 바다를 무대로 한 삶의 현실은 극도로 가혹했다. 저녁거리를 얻기 위해 40m 깊이의 바닷속으로 잠수하는 일이 매력적으로 들릴지 모르지만, 매일 그래야 하는 것은 엄청난 부담이었다. 배 위에서의 삶은 힘들고 고립되고 자주 위험했다. 그럼에도 그는 “이제 생활이 나아졌습니다. 저는 본토인 암파나(Ampana)의 상인에게 물고기를 파는데, 그게 더 이익이죠”라고 레싱은 말한다. “우리 자식 대에는 사정이 나아질 겁니다. 교육을 받으니까요.”

레싱의 아들 푸트라(Putra)는 아버지와 완전히 다른 환경에서 자라고 있다. 집에는 영어 알파벳 철자가 적힌 교육용 포스터가 벽에 걸려 있고, 심지어 방 한구석에 TV도 있어 애니메이션을 보기도 한다. 마을의 아이들은 이제 학교에 가서 더 넓은 세계에 대해 배우고 탁구, 배구, 가라오케 같은 육지의 오락을 즐긴다. 비록 이 마을에서 그나마 길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은 물살 위에 매달린, 곧 무너질 듯한 나무 산책로가 전부지만 레싱은 오토바이도 소유하고 있다.

현대 기술을 받아들이면서 바자우라우트족은 위험할 정도로 효율적인 해양 사냥꾼이 되었다. 디젤엔진 덕분에 훨씬 더 많은 구역에서 고기를 잡을 수 있게 되었고, 값싸고 촘촘한 수입 그물망을 사용해 다양한 크기의 물고기를 더 손쉽게 건져 올릴 수 있게 됐다. 다수의 바자우라우트족 사람들은 다이너마이트나 금속염인 시안화물로 고기를 잡기도 했는데, 이것은 해양 생태계를 파괴하는 엄청나게 위험한 관행이다. 겉보기엔 낙원이지만, 현대 바자우라우트족이 손쉽게 어획하게 되면서 마을 주변 바다에는 생명체가 없거나 경제적 가치를 지닌 어종은 자취를 감췄다. 이처럼 새로운 생활양식은 남획을 불러왔고, 그들 스스로 수중 수렵 채집가로서 장기적 미래와 고유한 문화유산을 위협하기 시작했다.

이런 현실은 급속하게 축소되고 글로벌화한 21세기 세계에서 많은 토착 집단이 공통적으로 겪는 고충이다. 바자우라우트족 사람들 중에 자신들의 현재 삶이 이전보다 더 편안하다는 사실을 부인할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의 미래가 이토록 불확실해 보인 적은 이전에 결코 없었다. 옛 방식과 새 방식, 세계와 지역 그리고 부를 획득하는 능력과 그들의 문화와 환경을 보호해야 할 책임의 균형을 맞추는 일은 이들이 풀어야 할 거대한 과제다. “50년 후에는 바자우라우트족 중 극소수만이 잠수하는 방법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제도 반대편의 한 마을에서 온 서른 일곱 살의 바자우라우트족 어부 다프린 암보탕(Dafrin Ambotang)이 한탄한다. 그의 아들은 현재 본토의 쇼핑몰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 “이전에는 (잠수해서) 물고기를 잡기가 쉬웠는데 지금은 훨씬 더 어려워졌습니다. 하지만 다이너마이트로 물고기를 잡는 것은 쉽습니다. 돈을 많이 벌 수 있죠.”

“이전처럼 물고기가 많지 않습니다”라고 레싱도 동의한다. 현재 그는 물고기가 아직 남아 있는 산호초를 찾기 위해 몇 시간을 이동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그는 결국 육지에서 농사를 짓기 시작했는데, 이곳의 많은 사람들이 피우는 담배에 들어가는 정향을 재배하고 있다. 바로 한 세대 전만 해도, 다수의 바자우라우트족 사람들은 보트의 흔들림을 느낄 수 없는 육지에 발을 디디면 육‘ 지 멀미’를 해서 애를 먹곤 했다. 레싱은 자기 부족 사람들의 삶이 좋은 쪽이든 나쁜 쪽이든 얼마나 빨리 변하고 있는지 알고 있다. “제 부모님은 배를 타고 살아왔습니다. 하지만 이제 우리 중 일부는 바다에 관한 지식을 잃어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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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의 바자우라우트족 사람들은 수중 마을에서 벗어나 토기안섬에 정착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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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발루탄의 마을이 내려다보이는 바위에 어린 바자우라우트족 소녀가 앉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