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법 개정으로 선거 연령이 만 18세 이상으로 낮아졌다. OECD 가입 국가 중 가장 마지막으로 투표권을 쟁취한 이들은 4월 16일, 생애 첫 번째 투표를 앞두고 있다. 우리는 지난한 시간 속에서 치열한 논쟁 끝에 투표권을 갖게 된 14명의 만 18세 유권자를 만나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기로 했다. 직업도, 선택한 삶의 방향도, 취향도 각기 다른 이들은 자신과 친구들에 대해서, 사회에 대해서, 선거에 대해서 아주 솔직한 생각을 들려줬다. 여기에는 나이와 성별, 금전적 환경에 따른 편견이 없는 세상, 멈추지 않고 나아가는 사회를 바라는 열망이 담겨 있다. 이 글을 읽으며 잠시라도 이들의 바람대로 우리 사회가 꿈을 꾸길 바란다.

아노락과 셔츠 모두 프라다(Prada).

한현민(모델)
야구 선수를 꿈꾼 적도 있다. 중학교에 갓 입학한 무렵, 옷에 관심을 가졌고 결국 패션모델로 데뷔했다. 미국 타임지에서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10대 30인’으로 뽑히기도 했다. 모델뿐 아니라 예능인, MC, 연기자로도 활약 중이다.

만 18세가 살기에 한국은 경쟁의 연속. 나는 운 좋게도 어린 나이에 꿈을 찾았고 차차 이뤄가는 중이지만, 주변 친구들은 초등학교 때부터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이라는 피니시 라인에 다다를 때까지 기나긴 마라톤을 해야 한다. 입시가 끝나면 또다시 취업 경쟁이 시작된다. 나 역시 좋은 무대에 서기 위해 수많은 오디션을 경험했다. 경쟁이 나쁜 것은 아니지만, 과열된 분위기는 많은 폐해를 낳는다고 생각한다.
또래 사이에서 가장 핫한 것은 군입대. 막 성인이 된 내 또래의 남자라면 누구나 하는 고민일 것이다. 군대에 언제 가야 할지를 놓고 친구들과 많은 이야기를 나눈다.
내가 꿈을 이루는 데 필요한 것은 안전망. 어린 나이에 사회생활을 경험하면서 많은 시행착오를 거쳤다. 어른들 사이에서 소통하는 게 어려울 때도 있었지만, 지금은 또래 친구들에 비해 일찍 사회에 나온 것이 장점이 됐다. 시행착오를 줄이기 위해 일을 하는 청소년들에게 최소한의 사회적 안전망이 있으면 좋겠다. 청소년들의 꿈이 다른 용도로 이용되지 않았으면 한다.
내가 생각하는 좋은 세상은 주저하지 않고 꿈에 도전하는 사람이 많은 사회. 전폭적인 지원을 받지 못하더라도, 누구나 최소한의 기회를 가질 수 있는 세상.
만 18세부터 유권자에 포함하는 선거법 개정안에 대해 들끓었던 찬반 여론은 당연하다. 청소년에게 정치는 마냥 어렵게 느껴질 때가 많다. 하지만 이번 투표권 행사를 통해 정치에 무관심했던 젊은 세대를 아우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바람직한 유권자란 투표의 소중함을 아는 사람. 무엇보다 ‘나 하나쯤이야’ 하는 생각으로 투표권을 포기하지 않는 게 중요하다. 투표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리는 것도 아니다. 쉬는 날이라고 생각해 투표하는 것을 귀찮아 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만약 내가 총선에 나간다면 꿈에 대해 진지하게 접근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고 싶다. 주변 친구들에게 ‘제대하면 뭐 할 거야?’라고 물으면 70% 이상이 계획이 없다고 답한다. 일찍부터 자신이 뭘 좋아하고 뭘 잘할 수 있는지 파악할 수 있도록, 진로 교육 프로그램을 마련하겠다. 이것은 실질적으로 일자리, 취업과 연결될 것이다.

블레이저,니트 톱과 스커트 모두 레하(Leha)

노정의(배우)
2011년 채널A 드라마 <총각네 야채가게>로 데뷔했다. 그후 영화와 드라마를 오가며 연기 경험을 쌓는 중이다. 한양대학교 연극영화과 입학을 앞두고 있다.

내가 자라온 사회적 환경은 비교적 안전하고 평탄했다. 다만 너무나 빠르게 변화하기 때문에, 이에 발맞춰 대처하는 능력을 키워야 한다.
또래 사이에서 가장 핫한 것은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영화 <기생충>이 4관왕을 한 것. 한류가 점점 더 넓은 세계로 나아가는 모습을 보며, 배우로서 내가 가진 목표를 다시금 상기했다. 3월 예정된 대학 입학을 앞두고 캠퍼스 생활의 로망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나눈다.
내가 생각하는 좋은 세상은 차별 없는 사회. 그리고 차별에 노출된 사람들을 보호하기 위한 법과 제도가 든든한 세상.
만 18세부터 유권자에 포함하는 선거법 개정안에 대해 들끓었던 찬반 여론은 아직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얼마 전 이를 주제로 친구들과 대화를 나눈 적이 있다. 우리가 겪는 고충은 우리 세대가 가장 잘 알기 때문에 적어도 목소리를 낼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는 의견과 투표권 하나가 가지는 의미가 중요하기 때문에, 올바른 선택을 하고 그 결과에 책임지기에는 아직 어리다는 의견으로 나뉘었다.
바람직한 유권자란 한 표가 가지는 무게를 알고 신중하게 투표하는 사람. 이왕이면 개인의 욕심이 아니라, 모두를 위한 공약에 힘을 실어줬으면 좋겠다.
만약 내가 총선에 나간다면 대학 입시 과정을 좀 더 수월하게 만들 것이다. 과열된 경쟁을 줄이고, 원하는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기회가 평등하게 주어지길 바란다. 결과에만 집중하지 않고 과정에 박수를 쳐줄 수 있는 사회적 분위기가 형성된다면 모두가 즐겁게 맡은 일에 임할 수 있지 않을까.
투표권 외에 만 18세에게 주어졌으면 하는 것은 교육. 만 18세는 학생과 어른의 경계에 놓인 나이다. 법적으로는 성인이 되지만, 그렇다고 내면까지 어른이 되는 것은 아니다. 성인의 권리에 천천히 접근할 수 있도록 사전 교육을 받는다면, 굳이 부딪혀보지 않아도 문제를 예방할 수 있을 것이다.

레이블리스(Labeless), 허리에 묶은 데님 재킷 사카이(Sacai),팬츠 로클(locle), 부츠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이시은(댄서)
어릴 적 꿈은 가수였다. 좋아하는 뮤직비디오를 틀어놓고 무작정 따라 췄다. 중학생이 되어서 처음 안무 수업을 들었고, 3년 만에 원밀리언댄스스튜디오에서 강사로 일을 할 수 있게 됐다. 지금은 안무를 창작해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는 일을 한다.

내가 자라온 사회적 환경은 걱정과 불안이 늘 함께 했다. 의견 차이로 매일 갈등을 빚는 사회이기도 하다. 특히 2014년 세월호 참사는 충격적인 기억으로 남아있다. 영원히 잊을 수 없을 것 같다.
또래 사이에서 가장 핫한 것은 유튜브와 영상 콘텐츠. 특히 틱톡 같은 영상 애플리케이션이 인기가 많다.
내가 꿈을 이루는 데 필요한 것은 금전적 지원. 주변에 집안 환경이 어려워 배움에서 멀어진 친구가 많다. 이들을 모두 포용하는 사회 안전망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내가 생각하는 좋은 세상은 의견을 자유롭게 낼 수 있고, 갈등을 좁히기 위한 대화가 이루어지는 사회.
만 18세부터 유권자에 포함하는 선거법 개정안에 대해 들끓었던 찬반 여론은 찬성. 그동안은 정치에 대해 잘 몰랐더라도, 투표를 하며 정치를 알아가는 기회를 갖게 될 것이다. 특히 청소년을 위한 실질적인 정책을 펼치려면 당사자인 청소년의 의견이 반영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바람직한 유권자란 내가 살아갈 사회를 위한 일임을 잊지 않고 신중하게 한 표를 행사하는 유권자. 나 또한 공약을 세세하게 따져볼 생각이다.
만약 내가 총선에 나간다면 청년들의 불안한 미래를 보장해줄 정책을 마련하고 싶다. 장학금 확대와 교육 투자 및 지원을 통해, 청년들이 더 이상 포기하지 않고 하고 싶은 일에 도전할 수 있도록 돕고 싶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고 있는 것처럼.

베스트형 재킷 미우미우(Miu Miu), 데님 팬츠 일립시스(Ellipsis), 슈즈 반스(Vans), 시계 예거 르쿨트르 바이 빈티크(Jaeger-LeCoultre by Be-Antique).

이진솔(가수)
에이프릴의 메인 보컬. 어릴 때부터 가수를 꿈꿨다. 청소년 노래 경연 대회에서 수상한 뒤 기획사 연습생 생활을 거쳐 2015년 데뷔했다.

가장 신경 쓰는 사회적 이슈는 뉴스를 점령한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 빠른 대처로 안전하고 건강한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또래 사이에서 가장 핫한 것은 유튜브와 드라마. 나와 비슷한 일을 하는 친구들이 가장 쉽게 영감을 받을 수 있는 매체라고 생각한다. 영상을 보며 춤이나 노래 연습을 하기도 한다.
내가 꿈을 이루는 데 필요한 것은 연습 공간. 가수의 꿈을 이룬 지금은 연습실이 생겼지만, 소속사에 들어오기 전에는 연습할 공간이 별로 없었다. 노래와 춤을 연습하며 목표를 향해 나아갈 수 있는 커뮤니티와 악기나 작곡, 작사를 경험하고 배울 수 있는 시설이 많아진다면 K-Pop 꿈나무들이 성장할 기회가 더욱 더 많아질 것이다.
내가 생각하는 좋은 세상은 평등한 기회를 누릴 수 있는 사회. 사회적 목소리의 크기가 가진 것에 따라 달라져서는 안 된다.
바람직한 유권자란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고 기본 원칙에 따라 한 표를 행사하는 사람.
투표권 외에 만 18세에게 주어졌으면 하는 것은 인권 교육의 의무화. 형식적인 것이 아니라, 실질적인 교육이 필요하다. 인권 침해에 해당하는 일을 아무 거리낌 없이 행하거나, 반대로 피해를 입은 경우에 어떻게 도움을 요청해야 할지 모를 때가 많다. 적어도 인권에 무지하지 않은 사회가 되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