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자의 고통에 아픔을 느끼며 보다 많은 존재가 덜 고통받길 바라는 마음으로 비건의 삶을 선택한 작가 보선의 이야기 <나의 비거니즘 만화>를 열어본 이상, 우리는 외면할 수 없는 진실과 맞닥뜨릴 수밖에 없다. 귀여운 그림체와 쉽고 간결한 글에 빠져 책장을 넘겼겠지만 평화로운 동물과 사람 이야기는 없다. 대신 태어나자마자 칼이나 인두로 마취 없이 부리가 잘리는 암평아리와 바로 죽임을 당해 비료로 쓰이는 수평아리, 송아지가 아닌 인간을 위해 305일간 매일 40kg의 우유를 짜내야 하는 젖소, 철봉이나 전기충격기로 맞으며 도축장으로 향하는 트럭에 실리는 돼지의 삶이 그려져 있다. 그렇지만 작가는 이 책을 읽은 모든 사람이 반드시 채식주의자가 되어야 한다고 말하진 않는다. 다만 진실을 마주하는 걸 두려워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지금 우리에겐 비거니즘에 한발 더 다가갈 작은 용기가 필요하다.

포털 사이트에서 연재하던 동명의 웹툰 시리즈를 엮은 책입니다. 웹툰에서 책으로 이어지기까지, 지금의 이야기를 시작하게 된 계기가 있을까요? 예전부터 제 생각이나 가치관을 글과 그림으로 만드는 걸 좋아했는데, 최근 몇 년간 제게 있어 가장 큰 화두가 비건이었어요. 채식주의자가 된 다음부터 마치 각성된 것처럼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이 달라졌거든요. 그래서 이 경험을 다른 사람들과 나누고 싶은데, 가능하면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주길 바라는 마음에서 만화라는 형식을 선택했어요.

제목만 보면 개인적인 이야기를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막상 책장을 열면 비건과 동물권에 관한 강력한 메시지가 촘촘히 담겨 있습니다. 일종의 캠페인 같달까요. 비건에 대한 편견을 없애고 장벽을 낮추고 싶었어요. 그래서 더 많은 사람들이 불완전해도 좋으니 평소에 조금이라도 비거니즘을 실천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에요.

책에 관한 리뷰를 살펴본 적이 있나요? 분명히 공격적으로 받아들이거나 거부감을 느끼는 사람들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포털 사이트나 SNS에 연재했을 때 그런 반응이 꽤 있었거든요. ‘식물은 안 불쌍하냐’부터 시작해서 ‘공장식 축산을 하면 오히려 동물의 생존율을 높일 수 있는데 그게 왜 문제가 되느냐’까지요. 그런데 다행히 아직까지 책에 관해 그런 리뷰는 없었어요.

이런 이야기를 할 때 항상 나오는 반대 의견 중 하나가 비건이 아닌 사람들을 나쁜 사람으로 매도한다는 말입니다. 머리말에서 ‘비거니즘은 누군가를 나쁜 사람으로 낙인찍기 위한 가치관이 아닙니다’라고 말했지만, 분명 누군가는 불편하고 찔리는 느낌이 나를 비난하는 거라 해석할 수도 있으니까요. 그렇지만 그건 피할 수 없는 반응 같다고 생각했어요. 육식이 동물을 죽음으로 몰아가고 고통받게 하는 건 사실인데, 이 사실을 말하는 것 자체가 사람들의 일상을 긁는 것이기 때문에 불편함 없이 이야기하는 건 불가능한 것 같아요. 그리고 불편함을 느껴야 바뀐다고 생각했고요.

아마 대부분의 독자가 그런 불편함을 느끼는 부분이 도축에 관한 이야기를 사실적으로 그린 ‘음식 이전의 삶’ 에피소드일 것 같습니다. 그 에피소드만큼은 제 생각을 말하기보다 직접 발견한 사실만 가지고 구성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도축 관련 에피소드는 한 편당 2주 정도의 시간을 두고 책이나 논문을 찾아보면서 정확한 사실만 담아내려고 했어요. A4 크기보다 작은 면적의 케이지에서 서로의 발톱에 짓눌리며 매일 알을 낳는 닭, 비좁은 스톨에서 격리되어 출산하다 보니 욕창이 생기거나 자신도 모르게 새끼를 깔아 죽게 만들기도 하는 돼지의 이야기에 굳이 제 감정을 강요할 필요는 없을 것 같았거든요. 이런 고통스럽고 불편한 진실을 건넬 때 중요한 건 스스로 읽고 느끼는 것이니까요.

실제로 채식뿐 아니라 동물성 성분이 들어가거나 동물실험이나 서비스도 지양하는 비거니즘을 실천하고 있다고요. 어떤 자각을 통해 비건의 삶을 시작하게 되었나요? 몇 년 전 동네 서점에서 동물권에 관한 책을 발견한 적이 있어요. 그 책을 읽고 동물도 사람과 같이 살아가는 존재라는 걸 깨달았고, 그때부터 세상이 너무 인간만의 세상 같고 왠지 잘못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결정적으로 동물권 운동가 게리 유로프스키(Gary Yourofsky)의 강연을 보고 더 이상 선택을 미룰 수 없겠다고 생각하게 됐어요. 그 강연에 ‘당장 채식을 해라’, ‘동물권 운동가가 되어라’라는 말은 없어요. 그저 현실을 보여주고 개인의 행동과 동물의 고통이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알려주죠. 그다음에 어떻게 선택할지 물어요. 그 뒤론 어떤 선택을 해도 제 책임이 되는 거죠. 그걸 보고 이제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길을 가야겠다고 생각했고, 채식을 하게 됐어요.

때에 따라 육류와 생선을 먹는 플렉시테리언부터 고기, 생선, 유제품, 그리고 동물 착취로 얻은 모든 것을 소비하지 않는 비건까지 여러 채식주의자의 단계를 넘어서는 게 쉽지는 않았을 것 같아요. 처음에는 ‘육식을 끊자’가 아니라 줄이는 것부터 시작했어요. 그런데 한번 마음을 먹고 나니까 여러 단계가 필요하지 않더라고요. 처음 1백 일 동안은 허기지고 먹어도 배부르지도 않고 불만족스러웠거든요. 그런데 이후로는 조금만 먹어도 포만감이 오래가고 오히려 건강해졌어요.

스스로를 어떤 비건이라 칭할 수 있을까요? 만만하지만, 단단한 비건. 저의 단점이자 장점이 누구나 경계없이 쉽게 다가올 정도로 편안한 인상을 지녔다는 거예요. 덕분에 비건이 아닌 사람들과 대화할 수 있는 기회가 많이 생기고, 비거니즘에 대해 말할 때 자연스럽게 다가갈 수 있어요. 사람들이 만만한 저를 보고 채식주의자의 대열에 들어설 수 있게 하는 거죠. 그렇지만 한편으론 남들한테 휘둘리거나 주눅 들면서 채식을 하지는 않으니까 물렁하진 않아요.

사람들이 더 만만하게 접근할 수 있도록, 그동안 잘 몰랐거나 오해하고 있는 비건에 관한 사실을 알려준다면요? 땅콩버터는 버터가 들어 있지 않고 땅콩으로만 만들어졌다는 것. 그리고 <더 게임 체인저스>라는 다큐멘터리를 봤는데 뛰어난 운동선수 중에도 채식주의자가 있다는 거요. 세계에서 가장 무거운 것을 드는 남자가 비건이고, 플랭크를 4시간 넘게 해서 세계신기록을 세운 여자분도 비건이라는 거예요. 그런 걸 보면서 채식이 보통 체격을 유지하는 것을 넘어서 강한 체력을 유지하는 데에도 문제가 없다는 걸 알게 됐어요.

보통 에너지가 부족할 때 고기를 먹자고 하잖아요. 채식 중에도 그런 메뉴가 있을 것 같아요. 제 취향으로는 봄동전. 이름도 산뜻하고, 색도 푸르러서 보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지만, 기름에 부쳐 먹으면 아삭하고 고소한 맛 때문에 기운도 나고 기분도 더 좋아져요.

당장 비건을 실천하기 어렵거나 어떤 것부터 행동해야 할지 모르는 이들을 위한 방식도 있을까요? 일상을 무너뜨리지 않는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해요. SNS에 고기 사진을 올리지 않는 것도 하나의 시작이 될 수 있어요. 다음으로 일주일에 한 번 고기 안 먹는 날을 정하거나 먹더라도 동물 복지 인증 표시가 된 제품을 소비하는 거죠. 텀블러를 챙기는 것, 휴지 대신 손수건을 쓰는 것, 비닐봉지를 최대한 안 쓰는 것도 모두 비거니즘을 실천하는 방법이에요.

이 책을 관통하는 주제가 있다면, ‘비건은 단순한 채식이 아니라 삶을 대하는 태도’라는 말인 것 같습니다. 삶에 대해 어떤 태도를 견지하고 있나요? 지속 가능한 삶을 추구하고 있어요. 그게 안정적인 직장을 다니는 게 아니라 내가 나다울 수 있는 삶을 만들고, 내가 존재하는 삶터를 잘 가꿔나가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환경을 보호하려는 거고요. 환경이나 동물권에 대해서도 지속 가능성을 생각하지만 동시에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건강하게 살아갈 수 있는지 고민하면서 실천하고 있어요.

비건으로서 바라는 가장 높은 이상은 무엇인가요? 동물 해방. 엄청나게 까마득하죠. 그렇지만 이를 지향하면서 한 걸음씩 걸어가보려는 사람들이 조금씩 는다면 영원히 극단적인 꿈은 아닐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