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적한 동명동 골목, 작은 주택의 통유리 창 너머로 줄지어 들어선 양조 설비가 시선을 사로잡는다. 광주의 유일한 수제 맥주 양조장 ‘무등산 브루어리’다. 컬쳐 네트워크의 윤현석 대표는 회사를 운영하며 전국적 규모의 지역 활성화 프로젝트를 진행하던 중 2017년에 무등산 브루어리를 오픈했다. “광산구 본량동에 황룡강을 낀 분지가 있는데, 거기서 상당히 많은 양의 밀이 생산된다는 걸 알게 됐어요. 이 자원을 어떻게 활용하면 좋을지 고민하다가 맥주가 떠올랐어요. 대중에게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고 요즘 트렌드에도 잘 맞는다고 느꼈죠. 우리 동네에도 유럽 마을에 있는 양조장 같은 공간이 생기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무등산 브루어리가 자리한 공간은 1963년에 건축된 양옥이다. 대표는 20여 년간 방치됐던 이곳을 우연히 발견한 후 깔끔하게 인테리어를 했다. “양조장 하면 보통 공장을 떠올려요. 그런데 이 주변에는 공장을 마련하기 어렵고, ‘마을 양조장’을 지향했기 때문에 빈집을 찾아다녔어요. 지역의 버려진 공간을 되살리는 가치에 대해서도 알리고 싶었죠.”

브루어리 입구부터 내부에 붙어 있는 포스터까지, 곳곳에서 수달 캐릭터가 눈에 띈다. 수달은 무등산국립공원에서 보호해야 할 필요성을 인식하고 깃대종으로 지정해 관리하는 동물. 윤 대표는 수달을 의인화해 캐릭터로 만든 후 브루어리 로고와 맥주 라벨 등에 사용 중이다. “초반에는 캐릭터에 한정돼 있었다면 이제는 파인 아트, 미디어 아트를 비롯해 여러 방식으로 시도해보려고 해요. 맥주와 수달이라는 확고한 개념이 있으니 다양하게 풀어낼 수 있어 재미있어요.”

양조가 진행되는 공간은 탱크 개수가 10개 미만으로 다소 협소한 편이다. “사실 공간 자체가 양조를 하기에 적합하지는 않아요. 설비를 추가할 수 없어 스트레스를 받기도 했어요. 하지만 처음부터 감안하고 시작했죠.” 대표는 오히려 규모가 작 은 덕분에 ‘인간적인 맥주’를 맛볼 수 있다고 덧붙인다. “평소보다 맥아가 더 들어가는 날이 있고, 어떤 날은 홉 향이 강하게 나기도 해요. 레시피를 엄격하게 지키기보다는 손맛을 따르는 편이에요.”

무등산 브루어리는 광주에서 재배한 밀로 블렌딩을 한다. 맥주의 이름에는 ‘광산 바이젠’, ‘무등산 페일에일’ 등 광주를 대표하는 지명을 주로 사용한다. 지역 특산물인 무등산 수박을 넣은 맥주에 붙인 이름은 감탄사로 쓰이는 방언 ‘워메’와 ‘워터멜론(watermelon)’, 두 가지 의미를 지닌 ‘워메 IPA’. 앞으로도 시즌마다 딸기, 복분자, 복숭아 등을 활용해 새로운 제품을 선보일 예정이다. 가장 먼저 만날 수 있는 맥주는 7월 중 출시하는 ‘무등산 호랑이’. “최근 코로나19 사태로 야구장에서 경기를 관람하기가 어려워졌어요. 광주를 연고지로 둔 프로야구 구단이 기아타이거즈인데, ‘집에서 시원하게 맥주 마시면서 기아타이거즈 응원하자’라는 이야기가 나와 ‘무등산 호랑이’를 기획했어요. 호랑이의 이미지처럼 도수 높고 진한 페일에일이에요.”

3년 차를 맞은 무등산 브루어리는 지금 변화를 앞두고 있다. 브루어리 한쪽에서 운영하던 펍 ‘애프터 웍스’를 맥주 중심의 지역 문화 프로그램을 개최하는 ‘무등산 하우스’로 바꿀 계획이다. 맥주와 곁들이기 좋은 육가공품, ‘무등산 스모크’도 론칭을 준비하고 있다. 이곳을 방문해야만 맛볼 수 있었던 무등산 브루어리의 맥주는 개인이 구매 가능하도록 캔 형태로 광주 내에서 유통을 시작할 예정. “오리지널리티를 가지고 있다는 건 로컬 브루어리의 장점이에요. 물론 무분별하게 확산돼서는 안 되겠지만, 지역 특색이 담긴 맥주를 많은 사람들이 만날 수 있도록 끊임없이 고민하는 것이 로컬 브루어리의 역할이라고 생각해요.”

SUMMER PICK
광산 바이젠

“무등산 브루어리의 맥주는 기본적으로
광주 광산구에서 수확한 밀을 사용해 만든다.
시그니처 음료 중 하나인 ‘광산 바이젠’은 화사한 황금빛을 띠는 밀 맥주다.
한 모금 마시면 풍성하고 부드러운 거품이 느껴지는데,
새콤한 과일 향과 밀 맥주 특유의 바나나 향을 함께 즐길 수 있다.”

– 무등산 브루어리 대표 윤현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