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전역에 봉쇄령이 내려진 동안, 저는 사람들이 이 상황에 어떻게 대처하고 있는지 포착하는 몇 가지 프로젝트 작업을 하고 있었어요. 이 중 하나가 이탈리아의 극장들에 관한 내용이었고요. 봉쇄령이 내려진 지 넉 달가량 지난 615일부터 이탈리아의 극장들은 다시 문을 열기 시작 했습니다. 배우들 간의 물리적 거리 유지, 체온 측정, 환경 소독, 손 소독, 적절한 환기와 마스크 착용 강제 등의 조치를 이행한다는 전제하에서요. 이처럼 공연을 위해 충족해야 하는 조건이 많다 보니, 예술계는 창조적이고 생산적인 활동뿐 아니라 대중을 맞이하는 방법에서도 완전히 판을 새로 짜게 되었습니다.”

코로나19 사태 속에서 나름의 삶을 찾아가는 사람들을 좇던 사진가 필리포 벤투리의 시선이 한동안 이탈리아 예술계에 머물렀다. 특히 마르케 극단(Marche Teatro)에서 기획하고 제작한 공연 <유리 집 안의 배우(The Actor in the Crystal House)>는 지금의 상황과 사회에서 극장의 역할을 화두로 던진 작품으로 주목받고 있다. 공연은 이탈리아 극장들이 문을 열기 시작한 615일, 안코나 극장(Teatro delle Muse in Ancona) 안이 아닌 바로 앞 광장에서 서막을 열었다. 13일간 매일 저녁 펼쳐진 공연은 두 명의 배우가 거대한 투명 디스플레이 케이스 안에 갇혀 대중 앞에서 연기를 펼치는 독특한 형식으로 진행되었다. 이는 아티스트와 관객이 엄격히 분리되어 있어야 하는 연극계의 현재 상태를 완벽하게 표현한 장치이자 상징물이었다. 관객은 저녁에 두 번 상연하는 공연에 제한된 인원만 입장했고, 입장한 사람들에게는 배우들의 대사를 들을 수 있는 개인용 헤드셋과 전파 수신기가 지급되었다. 필리포 벤투리는 이 공연을 ‘이탈리아의 새로운 극장(New Italian Theater)’이라 명명했고, 공연의 준비 과정과 결과물을 따라가며 이탈리아 예술계가 어떻게 새로운 움직임을 보이는지 살폈다.

투명한 유리 집 안에서 배우들은 어떤 것을 표현하고 연기하나? 이 공연은 극장이 폐쇄된 디스토피아적 미래를 다룬다. 배우들은 투명한 집 안에 갇혀 살면서 늘 대중의 시선을 받지만 소통할 수 없는 고립의 상태를 연기한다. 완전한 고독 속에서 배우들은 다시 극장이 사람들로 가득 차고 박수로 환영받는 세상으로 돌아갈 때까지 자신들의 기억을 잃지 않도록 단편적인 대사 몇 줄이나 댄스 스텝, 노래 몇 소절 등의 기술만을 반복한다.

공연을 보면서 어떤 감상이 들었나? 공연을 봤지만 배우들이 들을 수 있는 박수를 보낼 수도, 공연에 감사를 표시할 수도 없었다. 그리고 내가 아는 현실이 이렇게 짧은 시간 안에 바뀔 수 있다는 사실에 놀랐다. 요즘은 사회적 관계뿐 아니라 부모나 친구 사이에서도 우리는 모두 위험성을 내포한 존재가 되어버렸다. 신체 접촉으로 애정을 표현하는 일이 잦은 이탈리아에선 더 심각한 변화일 수밖에 없다.

공연의 준비 과정부터 공연하는 모습까지 찍으면서 꼭 담아내야겠다고 생각한 순간이 있었나? 사진으로 포착하고자 한 공연의 순간 중 하나는 투명한 집 안에서 배우들이 표현하는 감정이었다. 특히, 외부와 소통하길 갈망하는 표정과 몸짓을 담아내고 싶었다. 촬영하면서 발견한 흥미로운 지점도 있다. 극장 앞자리에서 공연을 찍던 중, 이 투명한 집에 광장 주변 상점의 쇼윈도가 비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때부터 유리 집에 비친 모습을 활용해 더 많은 시점을 부여하고 실제를 혼돈시키고자 했다. 또 관객과 배우가 시각적으로 소통할 수 있게 해주는 사진을 통해 그 둘을 보다 깊이 연관 지으려는 의도도 있었다.

연출가, 배우, 조명 기술자, 의상 담당 등 공연과 관련된 다양한 사람을 찍으면서 그들과 어떤 대화를 나누었나? 배우와 감독, 무대 기술자와 그 밖의 모든 사람들에게서 일하고자 하는 강렬한 열망을 엿봤다. 사실 이건 당연한 일이다. 그들은 몇 개월 동안 전혀 일을 하지 못했으니까. 모두 공연이 성공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했다. 이 공연은 사람들이 단 며칠이라도 코로나19를 잊고 모든 것을 쏟아부을 수 있는 목표가 되어주었다.

이 공연을 비롯한 예술계의 새로운 행보에 대해 ‘이탈리아의 새로운 극장’이라 이름 붙였다. 이 공연은 예술계의 어려움을 전달하기 위해 기획한 것이지만, 동시에 사람들을 사귀고 감정을 나누는 행위가 인간에게 얼마나 중요한지를 사람들에게 전달하고 싶은 마음이 담겨 있다. 코로나19는 우리가 당연하게 받아들이던 것들의 중요성을 다시금 깨닫게 해주었다. 그런 점에서 이탈리아에 새로운 극장이 등장했다는 제목을 지었다.

이런 형태의 공연이 계속 등장하게 될까? 내 바람은 이러한 형태의 공연이 코로나19가 유행하는 시기에만 한정되는 것이다. 언젠가는 다시 관객이 객석을 가득 메우고 배우들이 평소와 다름없는 환경에서 연기하게 되기를 바랄 뿐이다.

앞으로 우리의 삶과 문화, 예술은 어떤 방식으로 변화하게 될까? 지금 이탈리아 예술계는 상당히 어려운 상황에 놓여 있다. 조금씩 행사를 기획 할 수 있게 되었지만(주로 야외 행사), 사회적 거리 두기로 인해 공연 자체 뿐 아니라 경제적인 측면도 더욱 꼬여가고 있다. 특히 관객을 직접 마주하는 이벤트로 생계를 꾸리는, 즉 입장료가 중요한 수입원인 아티스트들이 큰 고난에 빠져 있다. 올해 가을에서 겨울쯤에 코로나 바이러스가 다시 유행할지 지켜보는 것이 무척 중요한 시점이다. 치료 약이나 백신이 개발 될 때까지 우리의 삶과 문화, 그리고 예술은 우리가 함께 살아가야만 하는 이 바이러스 때문에 고난을 겪을 수밖에 없다. 그렇지만 역사 속에서 인류는 이미 비슷한 상황을 맞닥뜨린 바 있고, 더 적은 자원과 지식으로도 그 상황을 이겨내왔기에 우리 역시 빠른 시간 안에 바이러스를 정복할 수 있을 거라고 믿는다. 한편으로는 지금 이 바이러스나 미래에 발견될지도 모르는 새로운 바이러스가 계속 유행할 경우, 우리는 아마도 삶의 방식 자체를 완전히 되돌아봐야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코로나19가 장기화되는 가운데 각자의 삶을 사는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다면? 코로나19로 얻은 것이 있다면, 우리가 집단의 건강에 대해 생각하게 됐다는 점이다. 전염병의 극복 여부는 우리의 의지와 타인에 대한 존중, 그리고 목표를 이루고자 하는 힘에 달려 있다. 이는 앞으로 어떤 식으로 다가올지 모를 미래를 단단한 정신과 몸으로 마주하기위한 유일한 방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