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과대학을 다니던 1학년 겨울, 성폭력 상담소에서 자원봉사를 하다 성폭력 피해자의 입장에서 진료해줄 의사가 한 명이라도 있었으면 좋겠다는 말을 듣고 진로를 변경해 의과대학에 진학했다. 그후 반성폭력 운동 등 여성을 위한 투쟁을 하며 여성주의와 의료인에 삶에 대해 고민하다 의료 협동조합을 만들기로 결심했고 서울시 은평구에 한국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연합회(이하 살림조합)을 열었다. 현재 이곳은 3천2백 세대가 넘는 조합원들과 함께 의원, 치과, 건강 센터를 운영하며 동네 주치의인 추혜인 원장은 매주 수요일 왕진에 나선다. 그가 쓴 책 <왕진 가방 속의 페미니즘>에는 안심하고 나이 들 수 있는 마을, 아는 얼굴들 사이에서 삶을 마무리할 수 있는 마을을 만들기 위해 애쓰는 그의 명랑하고도 뭉클한 이야기가 빼곡히 담겨 있다.

 

그동안의 이야기를 엮어 <왕진 가방 속의 페미니즘>이라는 에세이를 냈다. 보통 진료실 안에서는 내가 말하는 시간보다 환자의 이야기를 듣는 시간이 더 길다. 의사가 환자보다 말이 많아지면 흘려듣게 될지도 모르니까. 그럼에도 꼭 알려야 하는 정보가 있으니 차라리 책으로 읽을 수 있게 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의료 기관에서 진료를 받으면서 의사와 소통이 잘 되지 않아 상처받은 경험을 가진 환자들, 특히 여성 환자들을 보면서 의사와 환자의 대화를 돕고 서로 오해를 풀 수 있게 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 것도 이유 중 하나다. 젊은 의사나 의대생들에게 이런 동네 주치의로 사는 것도 재미있다는 걸 알려주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서울시 은평구에 살림조합을 만드는 과정은 어땠나? 2009년부터 젊은 페미니스트들이 모여 ‘여성들이 안전하고 편안하게 진료받을 수 있는 의료 기관’을 준비했다. 의료 기관이 지속적으로 운영되려면 지역에 기반을 두어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해 위치를 물색하던 과정에서 한국여성재단 초대 이사장 고 박영숙 선생님이 은평구에 있는 사무실을 무료로 임대해주셨고, 그곳에서 은평구의 시민 사회단체와 협동조합의 시민들도 만나게 됐다. 이들이 우리에게 은평구로 들어와 같이 살자고 설득했는데, 사실 그 전에는 페미니스트들에게 ‘우리 동네로 들어오라’고 제안하던 곳이 없던 터라 ‘우리가 동네에서 환영받는 존재라는 사실에 놀라기도 했다. 다만 ‘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이라는 개원 방식을 설득하는 데는 노력이 필요했다.

하지만 환자와 시민이 함께 병원을 만드는 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은 동네 주치의 시스템에 걸맞은 방식인 것 같다. 나는 세상에 좋은 의사가 많다고 믿는다. 다만 그 의사들이 개원하려면 4억~5억원에 가까운 돈을 마련해야 하는데, 결국 그 빚을 갚느라 좀 더 수익이 많은 치료 방법을 권하거나 비보험 시장을 찾아 헤매게 되는 현실이 안타까웠다. 이는 환자의 건강에 반하고 의사나 병원의 수익으로 연결되는 시스템인 셈이다. 공적 역할이 기대되는 1차 의료에 공적 자원이 전혀 투입되지 않은 현재 방식 때문에 고민이 컸다. 그리고 나는 그 고민의 답을 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에서 찾았다. 처음에는 조합원들에게 ‘병원이 왜 이렇게 회의를 많이 하지?’, ‘왜 병원을 만드는 데 출자금을 내라고 하지?’ 하는 의구심을 일으켜 다단계라는 오해를 산 적도 있다.(웃음) 당연히 다단계는 아니고 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은 시민이 건강할수록 의사도 행복해질 수 있는 구조다.

현재 가정의학과 의사로 일한다. 특정 분야 전문의보다 생소한 느낌이 든다. 가정의학과는 ‘환자의 생활, 가족 관계, 지역사회’에 관심이 많은 과 중 하나다. 아플 때나 아프지 않을 때나 1차적으로 와서 진료받을 수 있고, 많이 아플 때는 어느 병원의 무슨 과를 가면 좋을지 상담할 수도 있다. 그야말로 ‘동네 주치의’로 일할 의사를 키우는 과다. “우리 동네엔 주치의가 있어서 든든하다”는 얘기를 들을 때 무척 뿌듯한데, 아직 국민들이 가정의학과에 대해 정확히 알지 못하는 현실이 아쉽기도 하다.

매주 수요일에는 직접 왕진을 나간다. 왕진을 하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나? 진료실 안에서는 파악하기 어려운 정보가 참 많다. 최근 살림조합에 합류한 정신과 전문의 선생님과 장애인 시설에 왕진을 가곤 하는데, 지적장애를 가진 분들과 진료실 안에서 대화하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시설로 직접 나가 진료해보니 환자들이 한결 편안해 보이고 우리도 다른 장애인들과 맺는 관계나 생활하는 모습을 관찰해 환자를 잘 파악할 수 있게 됐다. 누워 지내는 환자의 집을 방문하면 진료실에서 만나는 환자들은 적어도 진료실까지 올 수는 있는 환자라는 사실도 새삼 깨닫는다. 의사들이 진료실 안에만 갇혀 지내다 보면 가끔 진료실이 이 세상 전부인 것처럼 착각한다. 진료실에도 오지 못하는 사람들, 즉 진료실 밖에도 환자의 삶이 연결되어 있다는 걸 항상 잊지 않으려고 한다.

책을 읽으면서 비혼 인구나 독거노인의 증가 등으로 우리 동네에 소속감을 느낀다는 것, 동네의 보살핌을 받는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깨달았다. 왕진도 그러한 돌봄의 한 형태일 것이다. 코로나19 사태를 맞아 더더욱 동네, 커뮤니티의 중요성을 절감했다. 나를 포함해 살림조합의 의사들은 모두 코로나19 선별진료소에서 자원봉사를 했는데, 우리나라의 방역 체계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역학조사에서 중요하게 고려해야 하는 건 어떤 부분인지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었다. 이 경험을 바탕으로 살림조합의 환자들과 동네 주민들이 막연히 불안해할 때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고 불안을 줄이는 방역 활동을 했다. 언택트가 일반화되면서 지역사회에서 소외되는 사람들을 방문해 진료하고 있는데, 이런 게 주치의 의료 기관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막연히 코로나-19로 인해 오히려 왕진이 줄지 않았을까 추측했다. 코로나19 초기에는 왕진 수요가 줄었다. 많은 환자를 접촉하는 의사가 자신의 집에 온다는 사실이 불안할 수밖에. 그런데 지금은 오히려 왕진 수요가 더 늘었다. 비대면이 일상이 되면서 필수적인 돌봄에서 소외되기 시작한 사람들이 더 많아졌다는 뜻이다. 어떤 이는 어머니가 요양 병원에 입원한 상태였는데, 코로나19 탓에 면회가 제한되어 어머니의 건강과 인지 상태가 점점 악화되자 퇴원 후 왕진을 신청하기도 했다. 살림조합의 조합원들이 자원봉사로 운영하는 치매 어르신과 가족들을 위한 무료 카페 ‘서로 돌봄의 집’도 비슷한 경우다. 방역 단계가 격상되었을 때, 카페 오픈 여부를 고민하다 결국 열기로 결정했었다. 방역 단계가 올라가면 모든 공적 시스템이 중단되는 터라, 치매 어르신들이 더 갈 곳이 없는 상황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최소한의 인원으로 방역을 아주 철저히 하면서 운영했다. 이 또한 코로나19에 대응하는 주민들의 힘이라고 생각한다. 작고 믿을 수 있는, 안전한 커뮤니티를 우리 동네에서 조금씩이라도 더 만들어나가는 것 말이다.

왕진을 나가면서 독거노인, 장애인, 학대 피해 아동 등 사회적 약자를 만나는데, 그들을 위해 당장 마련해야 할 헬스 케어 시스템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그들의 상황을 종합적으로 파악하기 위해서는 아주 많은 정보가 필요하다. 그런데 이런 얘기들을 묻다 보면 불편해하는 경우가 많다. 사실 꼬치꼬치 캐묻는 것과 필요한 정보를 자세히 수집하는 것은 종이 한 장 차이다. 그래서 그들이 제공한 정보에서 소외되지 않도록, 이런 정보가 어떻게 활용되고, 또 어떻게 보호되는지 설명한다. 가능하면 이런 정보들이 (안전한 관계에서는) 잘 공유되었으면 좋겠다. 현재 주민센터와 복지관, 병원에서 각각 수집한 정보를 개별적으로 보관하는데, 종합적인 대책을 위해서는 안전하게 통합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책 제목에도 등장하는 ‘왕진 가방 속’에는 무엇이 들어 있는지 궁금하다. 일단 페미니즘이,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분명히 들어 있다. 그 외에는 청진기, 검이경, 혈당계, 혈압계, 주사기, 드레싱 도구 등 잡다한 것들이다. 이걸 궁금해하는 사람들이 상상 외로 많아서 얼마 전 개설한 살림조합 유튜브 채널에 왕진 가방 속을 공개하는 콘텐츠를 찍어 올렸다.(웃음)

왕진 가방뿐 아니라 책 곳곳에 의료인의 삶과 단단한 여성주의가 담겨 있다. 여성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계기가 있었나? 나는 오 남매 중 둘째 딸로 태어났고 막내 남동생이 있다. 부모님이 어떻게든 아들을 낳으려고 하셨던 건 사실이지만, 딸과 아들을 차별하지 않고 키우려고 노력하셨다. 그런데 주변의 차별적인 시선이 많았고, 특히 내가 서울대에 입학했을 때 “너는 아들로 태어났어야 한다”는 말을 아주 많이 들었다. 게다가 30대에 접어들 무렵까지는 버스나 지하철, 심지어 학교에서도 성추행에서 자유로웠던 적이 없다. 길거리에서 나를 때리려는 술 취한 남자를 피해 공중전화 부스 안에서 문을 잡고 대치하며 수십 분을 버틴 적도 있다. 눈앞에 전화가 있는데 문손잡이를 놓칠 수 없어 경찰에 신고도 하지 못했다. 이런 일로 나 자신이 계속 움츠러드는 경험을 하면서 이렇게 살지 않아도 되는 세상이 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진정한 여성주의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내가 지향하는 여성주의는 차별과 혐오에 반대하고 스스로를 변화시키는 것에서 시작해 자신이 서 있는 위치에서 다양한 일들을 실천해나가는 것이다. 이러한 여성주의는 사회의 많은 것을 바꾸었다. 내가 의대에 입학할 때만 해도 성폭력 상담사들이 “성폭력 피해자의 입장에서 진료하고 증거를 모아줄 의사가 한 명이라도 있었으면 좋겠다”고 했는데, 지금은 성폭력과 가정폭력 피해자를 진료하고 상담하는 해바라기센터를 전국적으로 24시간 운영한다. 여성운동가들의 지난한 투쟁 끝에 얻은 성과라고 할 수 있다. 또 다른 시각으로 보면 나는 부권적인 의사와 환자의 관계가 평등하고 협력적인 관계로 변화하는 데 여성주의가 사상적 영향을 많이 끼쳤다고 생각한다. 환자가 자신의 몸과 건강의 주인이라고 이야기하는 게 지금은 너무나 당연한 말로 들리지만, 이건 역사적으로 완성되어온 명제다. 그런 의미에서 모든 의사와 간호사 등 의료인이 페미니스트가 되어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한다.

살림의원 역시 ‘여성주의적 의료 기관’을 표방한다. 여성주의적 의료 기관이란 그곳에서 일하는 사람, 환자로 오는 사람 모두 여성주의를 이해하고 있는 곳이라고 생각한다. 민주적으로 운영되며 진료실 안에서 ‘여자는 어때야 한다, 남자는 어때야 한다’는 식의 선입견을 강요하지 않고 소아 환자를 돌보는 책임을 전적으로 엄마에게 묻는 방식으로 진료하지 않는 병원이어야 한다. 살림조합에서는 신입 직원을 뽑을 때 이곳은 장애인, 트랜스젠더, 성 소수자, 성폭력/가정폭력 피해자들이 진료받는 곳이라는 사실을 밝히고 의료인으로서 차별 없이 대하고 진료하려는 의지가 있는지를 묻는다. 물론 환자 역시 직원의 인권과 노동권을 존중해야 할 것이다. 이런 협동조합이 되기 위해 주민들과 함께하는 여성주의 학교, 직원들을 위한 페미니즘, 장애인권 교육 등을 창립 때부터 지금까지 지속적으로 하고 있다. 이 외에도 여성주의 자기방어 훈련, (꼭 여성만을 위한 프로그램은 아니지만) 여성들이 차별이나 혐오에 대한 걱정 없이 편안한 마음으로 참여할 수 있는 소모임(동아리), 반모임(반상회), 건강 교육 등 다양한 행사를 하고 있다. 혹시 없더라도 만들면 된다. 그게 협동조합의 큰 장점이니까.

책을 읽으며 ‘드라마나 소설 속에서의 여주인공은 아픈 와중에도 여성스럽게 아파야 한다’는 대목에서 ‘웃픈’ 기분이 들었다. 여성이기 때문에 받는 차별적 시선을 곳곳에서 경험한다. 한 친구가 다니는 대학에서 자궁경부암 주사에 대한 이상한 소문이 돌았다고 한다. ‘처녀는 자궁경부암 주사를 맞아야 하고, 처녀가 아니면 별 효과가 없다’고. 그래서 남들이 나를 ‘처녀’로 보지 않을까 봐 두려워 결국 해당 과의 여학생들이 모두 빠짐없이 공개적으로 맞았다는 이야기였다. 이런 일들이 자궁경부암에 걸린 여성을 이상한 시선으로 보게 만든다. 자궁경부암은 바이러스가 원인으로 바이러스에 약한 사람들이 잘 걸릴 수밖에 없는데 말이다. 이런 식의 말도 안 되는 도덕적 비난이 의료인이 가장 경계해야 할 부분이다. 그럼에도 콘텐츠 생산자로서 여성들이 활약하기 시작하면서 이미 많은 부분이 변화했다고 생각한다. 여성들의 솔직한 투병기가 아픈 여성들에게 많은 힘과 영감을 주고 있다. 그런 점에서 앞으로도 여성의 이야기가 점점 더 많이 생산되고 유통되어야 할 것이다.

최근 불안과 공포, 우울증을 호소하는 여성들이 특히 많다. 수많은 젊은 여성을 잃으면서 동네에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주치의가 있다면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 굳어졌다. 각자 주변에서 주치의를 가질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 코로나19 이후 20대 여성의 자살률이 높아졌다는 뉴스를 보며 마음이 착잡했다. 나 역시 가까운 거리에 마음 편히 상담할 수 있는 주치의가 있다면 우울과 불안, 자살이 줄지 않을까 늘 생각한다. 좋은 주치의는 결국 ‘관계’로 만들어진다. 아플 때만 간혹 병원을 찾는 것이 아니라, 집이나 직장에서 편히 접근할 수 있는 거리의 의료 기관을 정해 꾸준한 관계를 쌓아보길 바란다. 건강검진 결과지를 가지고 상담을 받으러 가기도 하고, 가족들에 대한 상담도 같이 하면서 우리 가족에 대해서도 의료인이 파악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좋다. 혹시 믿을 수 있는 의료 기관의 추천을 원한다면, 한국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연합회, 사회적의료 기관연합회 소속의 의료 기관이 주변에 있는지 확인해보기 바란다. 모두 지역사회 주치의 의료 기관을 지향하는 곳이다. 게다가 현재 전국적으로 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을 준비하고 있는 지역도 많다. 각자의 지역에서 조합원이 되어 의료 기관의 운영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믿을 수 있는 주치의 관계를 만들 것을 추천한다. 의료 기관이 빚을 덜 지고 개원할수록 진료 시간이 충분해지고 상담도 살뜰히 할 수 있다. 은행 이자를 갚지 않아도 되는 만큼 진료에 집중할 수 있을 테니까.

마지막 질문이다. 여전히 꿈꾸는 이상적인 병원의 모습이 있나? 직원과 환자가 서로 존중하는 병원이라고 말하면 식상할 테지만 그럼에도 식상한 답을 할 수밖에 없다.(웃음) 서로가 서로에게 책임감을 느끼는 병원을 만들어가고 싶다. 직원들은 환자와 지역사회의 건강에 책임감을 느끼고, 환자들은 직원의 노동 환경에, 그러니까 그곳이 더 좋은 일터가 되도록 하기 위해 책임감을 느끼는 것이다. 단순히 예의 바르고 친절한 곳이 아니라, 서로가 그 관계성을 끈적하게 느낄 수 있는 곳이면 좋겠다. 늘 그런 병원을 꿈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