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 패션위크에서 열리는 쇼가 대부분 30분 이상 지체되지만 생 로랑의 쇼만큼은 프레스들로 하여금 걸음을 재촉하게 만든다. 에펠탑의 점등에 맞춰 ‘정시 시작’ 원칙을 고수하는 유일한 브랜드이기 때문. 물론 생 로랑이 고집하는 건 시간만이 아니다. 복고적인 글램 무드와 블랙 컬러, 과장되거나 극도로 절제된 실루엣까지 이브 생 로랑이 정립한 모든 요소가 안토니 바카렐로의 지휘 아래 철저하게 지켜진다. 이번 시즌 역시 마찬가지. 하이라이즈 팬츠와 마이크로 미니 사이즈의 보디 콘셔스 드레스, 간혹 등장하는 시퀸 디테일은 누가 보아도 생 로랑의 룩임을 예상할 수 있을 정도니까! 수백 년 역사를 간직한 패션 하우스마저 트렌드의 빠른 조류에 중심을 잃은 요즘, 아카이브를 끊임없이 재해석하고 수호하려는 그의 의지는 패션계에 경각심을 일깨우기 충분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