꼼데가르송의 파리 패션위크 데뷔 컬렉션(1981년)은 실로 대단했다. 블랙 컬러와 마감이 덜 된 원단들이 주를 이뤘던, 꼼데가르송의 뿌리이자 정수라 할 수 있는 쇼였다. 블랙이 또 한 번 지배적이었던 이번 컬렉션을 보며 레이 카와쿠보의 파리 데뷔 쇼가 떠오른건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그녀는 이번 컬렉션을 ‘그림자의 모임’이라 정의했다. 마리 앙투아네트가 입을 법한 실루엣의 스커트, 사랑스러운 러플 드레스, 마녀에게 어울릴 뾰족한 후드, 콘브라, 블랙 일색이던 런웨이에서 특히 튀었던 보라색 벨벳 드레스와 타탄 체크 모두 어딘지 모르게 음침했다. 그리고 거의 모든 룩에 더해진 고무 또는 가죽 소재 갑옷이 분위기를 극대화했다. 마녀일까? 천사일까? 전사일까?
피날레에 모델들이 무대 중앙으로 나와 동그란 원을 그리고 섰다. 흡사 이단 종교의 숭배 의식 같았지만 천장의 조명을 바라보며 서 있는 꼼데가르송 소녀들은 이 시대의 전사 같았다. “작은 그림자들이 모여 영향력 있는 무언가를 만든다”던 디자이너의 노트가 왠지 긍정적으로 이해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