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가 화보

셔츠, 재킷, 팬츠 모두 프라다(Prada), 레이스 초커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슈가 화보

셔츠, 재킷, 팬츠 모두 프라다(Prada), 레이스 초커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빌보드 월드 앨범 차트 1위, 오리콘 차트 석권부터 유럽에서 남미로 이어진 월드 투어, 15만 장에 달하는 아시아 투어 티켓 매진까지. 아이돌 그룹으로 수많은 기록을 경신하며 믿을 수 없을 만큼 황홀한 시간을 맞은 방탄소년단은 여전히 자신들의 음악을 직접 만들고, 스스로의 무대를 연출하는 아티스트들이다. 가장 방탄소년단다운 트랙과 퍼포먼스로 뻔하지 않은 아이돌의 음악 세계를 구축해온 7명의 남자들 가운데, 언더그라운드에서 메인스트림까지 차분히 질주해온 뮤지션 슈가가 있다.

한창 내달리다 벽에 부딪히고, 또다시 일어나 헤매고 전진하기를 반복하는 20대를 지나고 있는 슈가는 이토록 빠르게 스치는 순간들을 조금도 놓치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그는 금세 날아가버릴 일상의 기억을 사운드에 눌러담기 시작했다. 방탄소년단의 슈가라는 이름 대신 ‘어거스트 디(Agust D)’라는 새로운 뮤지션의 이름으로 세상에 내놓은 그의 어엿한 믹스테이프에는 한 청춘의 아름다운 시간이 자유롭게 녹아들었다.

 

방탄소년단 슈가 화보

셔츠, 재킷, 팬츠 모두 프라다(Prada), 레이스 초커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월드 투어에 이어 아시아 투어까지 잘 마쳤다는 소식 들었어요. 거의 2년 내내 해외 곳곳을 다녔으니 정신없었겠어요. 진짜 좋아요. 어릴 때부터 꿈꾸던 삶을 사는 거니까요. 브라질은 시차가 12시간이나 나요. 딱 지구 반대편에서 무대에 오르다니 신기할 따름이죠. 잠쯤은 덜 자도 괜찮아요.

그렇게 바쁜 와중에 믹스테이프까지 냈네요. 왔다 갔다 하면서 비행기에서도 곡을 쓰고, 해외 공연 끝나면 호텔 방에서 작업했어요. 이제 후반 작업은 거의 마쳤고, 오늘 인터뷰 끝나면 또 작업하러 갈 거예요.

어떤 곡들인가요? 방탄소년단 음악에서는 들을 수 없던 스타일의 트랙이 실려 있어요. 특히 가사의 느낌이 많이 다르죠. 제가 생각하는 청춘에 대해 더 직설적으로 표현했거든요. 저 자신에 대한 내용도 솔직하게 녹여냈고요. 10대 후반에서 20대를 지나면서 겪는 현실, 이상, 갈등, 꿈 같은 것들을 소재로 삼는 걸 좋아하는 편이에요.

평소 그런 것들에 대해 깊이 생각하나봐요. 제가 지금 살고 있는 시간이니까요. 또래 친구들이나 친형이 털어놓는 이야기를 들어보면 분명한 꿈이 없는 게 가장 큰 고민이라고 하더라고요. 사회적인 틀에 맞춰 살아왔는데, 어른이 되고 막상 현실을 마주하면 생각한 거랑 많이 다르니까. 끊임없이 나오는 취업이나 입시 문제만 접해도 생각이 많아져요.

그렇다면 민윤기라는 청춘은 어떤 20대를 보내고 있나요? 잘 살고 있는지는 조금 더 지나봐야 알 것 같은데, 아주 열심히 꽉 채워 살고 있다는 건 장담할 수 있어요.

 

슈가 화보

셔츠, 팬츠, 풀오버 모두 오디너리 피플(Ordinary People), 슈즈 올세인츠(All Sai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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믹스테이프는 작곡, 작사부터 프로듀싱까지 오롯이 홀로 작업한 결과물이에요. 욕심도 좀 부리고 싶고, 담고 싶은 것도 많았겠죠? 혼자 하나부터 열까지 다 하다 보니까 욕심이 점점 커지더라고요. 뭐든 대충 하는 건 용납 못하는 성격이기도 하고요. 완성도를 높이는 데 최대한 집중했어요. 특히 트랙 리스트를 짤 때 고민을 많이 했죠. 흐름을 어떻게 짜야 전달하고 싶은 이야기를 더 분명히 담을 수 있을까에 대해서요. 온전한 앨범만큼 꼼꼼하게 만든 믹스테이프예요.

그런데 정식 앨범이 아니라 믹스테이프라는 독특한 형태를 택했어요. 이유는 단순해요. 하고 싶은 거 다 해보자는 취지에서 시작한 거예요. 그냥 나 자신을 투명하게 표현해보자 하면서요. 생각나는 대로, 마음이 가는 대로 만든 음악을 내보고 싶었거든요. 장르도, 가사도 다 자유롭게 작업했어요.

그렇게 자유롭게 만든 혼자만의 음악이 방탄소년단으로서 작업한 음악과 많이 다른가요? 그렇죠. 믹스테이프에 제 이름이 ‘슈가’가 아니라 ‘어거스트 디(Agust D)’로 나오는 것처럼요.

 

민윤기 화보

셔츠, 팬츠, 풀오버 모두 오디너리 피플(Ordinary People), 슈즈 올세인츠(All Saints).

방탄소년단으로 활동하기 전에도 오랫동안 음악을 해왔어요. 데뷔 전에도 믹스테이프를 낸 경험이 있죠? 그때 낸 건 그야말로 들어주지 못할 퀄리티예요.(웃음) 3년 동안 방탄소년단으로 활동하면서 생각이 많이 바뀌었죠. 사실 아이돌로 데뷔하고 많이 위축되어 있었거든요. ‘어릴 때부터 꾸준히 음악만 해온 사람인데 아이돌이 됐으니 이제 사람들이 날 다르게 보겠지?’ 하면서요. 근데 다 부질없는 생각이더라고요.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뭐든 달라질 수 있는 건데, 괜히 너무 진지하게 고뇌하고 무거운 의미를 부여했던 것 같아요. 늘 엄격, 근엄, 진지 모드였죠.(웃음) 당시엔 나를 가두는 틀이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이제는 울타리처럼 느껴져요. 마음이 좀 편해졌죠. 음악에 대한 고집도 좀 덜어냈고. 뭐랄까, 예전보다 시야가 훨씬 넓어진 느낌이에요.

일종의 성장 과정을 거친 셈이네요. 네. 그런 것 같아요. 자신감이 많이 단단해졌어요. 방탄소년단 멤버 모두 그렇죠. 7명이 각자 생각한 것을 한데 모으는 법을 알게 됐고, 무대에 대한 확신도 강해졌어요. 음악성, 안무, 퍼포먼스, 무대 세트 같은 각각의 요소도 중요하지만 그 모든 것이 한데 제대로 어우러져야 그럴듯한 결과물을 낼 수 있다고 생각해요. 무대에서만큼은 무조건 잘해야 해요. 우리를 보러 공연장에 오는 팬들이 기대하는 것 이상을 보여주고 싶거든요.

 

슈가 화보

안에 입은 톱과 레더 재킷 모두 보테가 베네타(Bottega Veneta), 팬츠 곽현주(Kwak Hyun Joo), 스카프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방탄소년단 화보

무대에 대한 욕심이 많은 만큼 멤버들끼리 음악 이야기를 많이 나눌 것 같아요. 작업은 각각 따로 하고, 서로 만든 것을 정리해서 뭉치는 과정에서만 의논해요. 또 늘 일 얘기만 하면 스트레스 받으니까.

곡 작업을 할 때 영감은 어디서 받는 편인가요? 뭐든 끊임없이 메모해둬요. 매 순간 생각나는 것들, 문득 드는 감정들, 머리에 떠오르는 뜬금없는 단어들…, 몽땅 다 적어요. 멍하니 앉아 있다가 기록해둔 것을 한 2~3년 후에 뒤적거려보면 꽤 좋은 아이디어들이 떠오르거든요. 다른 뮤지션 음악도 많이 듣는 편이고요.

요즘은 어떤 뮤지션의 음악을 주로 들어요? 루페 피아스코(Lupe Fiasco)가 쓴 가사를 좋아하고, 최근에는 미국 래퍼 디자이너(Desiigner) 신보랑 래퍼 와이지(YG) 곡들도 많이 들어요. 국내 아티스트 중에 XXX라는 팀이 있는데 노래가 아주 좋아요. 아, 보컬 수란씨는 데모 앨범으로 처음 접했다가 빠져서 이번 믹스테이프 피처링 작업도 같이 했고요.

음악도 많이 듣고, 생각이나 감정에 집중하는 걸 좋아하는 만큼 혼자 있는 시간이 중요하겠어요. 네, 맞아요. 제게 반드시 필요한 시간이에요. 작업실에 혼자 10시간씩 앉아 있을 때도 있어요. 사실 한 여덟 시간은 농땡이 치다가 작업은 한 시간 정도 하지만요.(웃음) 아무도 없는 방에서 차분하게 생각을 정리하는 시간이 중요해요. 그런 시간 없이 막 내달리면 과부하가 걸리는 것 같거든요.

그렇게 혼자 앉아 있다가 쓴 가사 중에 제일 좋아하는 구절은요? 트랙 ‘투모로우’에 들어간 ‘해가 뜨기 전 새벽이 가장 어두우니까, 먼 훗날의 넌 지금의 널 잊지 마’. 이런 느낌의 가사가 좋아요. 위로나 성장에 관한 내용이요. 그냥 편하게 공감할 수 있는 음악을 만들고 싶어요.

 

민윤기 화보

안에 입은 톱과 레더 재킷 모두 보테가 베네타(Bottega Veneta), 팬츠 곽현주(Kwak Hyun Joo), 스카프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온통 음악 얘기네요. 다른 관심사 얘기 해보자면요. 음, 음악 장비 모으기? 반지나 목걸이, 팔찌 사는 거? 별거 없네요.(웃음)

방탄소년단의 SNS를 보니 평소 분위기가 대단히 유쾌하던데요. 슈가는 좀 조용한 편인 듯했어요. 저도 밝은 편이긴 한데, 시끄러운 걸 별로 좋아하지 않아요. 근데 또 멤버들 단체 카톡방에서는 난리가 나요. 저희 진짜 웃겨요. 자기 엽기 사진 찍어서 올리고, 끼리끼리 못생긴 모습을 도촬해서 공유하고요. 어제는 양세형씨 나오는 동영상이 올라왔는데 빵 터졌다니까요. ‘ㅋㅋㅋ’가 엄청 많아요. 각자 작업하고 활동하느라 힘들긴 하지만 이렇게 웃고 떠들면서 서로 응원도 하고 잘 지내요.

방탄소년단이라는 동고동락하는 팀도 생겼고, 하고 싶은 음악만 담은 믹스테이프도 냈어요. 고민해온 만큼 알찬 20대를 보내고 있는 것 같아요. 이루고 싶은 게 아직 한참 남았죠. 더 잘하고 싶어요. 음악은 앞으로도 아주 오래할 거예요. 이 바닥에 착 달라붙어 있을 거거든요. 20대에는 젊은 청춘답게, 30대, 40대 나이가 들면 또 그 나이에 맞는 시간을 열심히 살아야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