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피 메킷레인 loopy

점프수트와 티셔츠 모두 버버리(Burberry), 스니커즈 컨버스 (Converse), 모자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첫 정규 앨범 발매를 앞두고 있다. 기다리는 사람이 많은 것 같은데, 이번 앨범을 어떻게 소개하고 싶은가?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걸 한 앨범이다. 타이트한 랩, 감성적인 표현, 춤추고 싶은 분위기 등을 다양하게 담았다. 스무 곡 이상 수록할 예정이고, 지금은 곡을 다 써놓고 세공하는 단계다. 첫 정규 앨범인 만큼 명작을 만들어야 한다는 부담도 있었지만, 이런 마음을 조금 내려놓았고 잘 마무리하는 중이다.

활동 기간이 짧은 편은 아니다. 이 시점에 정규 앨범을 내야겠다고 결심한 이유는 무엇인가? 내가 가진 것들을 활용하는 방법을 거의 다 찾았다고 느꼈다. 빠르게 랩을 할 수 있고, 노래하는 능력도 있고, 음의 높낮이는 어느 범위 안에 있어야 하는지 알게 된 거다. ‘나’라는 악기를 연주하는 방법을 깨달았으니 이를 바탕으로 작업해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다수의 수록곡을 미리 공개했다. 의도한 것이 있었나? 보통 앨범이 나오면 타이틀곡이나 뮤직비디오가 있는 곡이 주로 사랑받는다. 발매에 앞서 수록곡 일부를 차례로 선보였을 때 여러 트랙이 골고루 관심을 받고 앨범에 대한 기대치도 최고로 높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제일 처음 공개한 ‘NO FEAR’는 일종의 선전포고로, ‘나는 지금 여러 이유로 두려움이 많지만 두려워하고 싶지 않다’는 의지를 제목에 표현했다. 한편 2월 중순에 발표한 ‘DANCE 4 U’는 주스 월드와 코비 브라이언트, 그리고 안타깝게 세상을 떠난 국내 스타들을 떠올리며 만든 곡이다. 슬픈 감정은 남아 있지만, 눈물의 배웅이 아닌 그들을 기리는 축제 같은 분위기를 담았다.

‘DO NOT UNDERSTAND’, ‘IN N OUT’은 랩과 비트가 강렬하다. 수년 전 발표한 ‘Gear 2’가 떠오르기도 한다. ‘Gear 2’는 내 랩 스킬을 보여주려고 만든 곡이고 플로에도 변화를 많이 줬다. 음악의 평가 기준은 명확하지 않지만 트렌드는 분명히 있는데, ‘Gear 2’로 발표 당시에 잘한다는 말을 들었다고 해도 지금 그렇게 한다면 올드한 것이 된다. 요즘에는 좋은 플로를 계속 반복하는 게 유행이고 그래야 긍정적인 평가를 받으니까. 이러한 트렌드를 따르는 동시에 화려한 랩을 선호하는 일부 대중의 의견도 수렴할 수 있도록 플로를 일부러 바꾸는 것 등에 대해 고민하며 앨범 작업을 했다.

‘SAD BOY’는 루피 특유의 외로우면서도 차분한 감성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즐겨 들을 것 같다. 유년기부터 초등학교 때까지 있었던 슬픈 기억 몇 가지에 집중하며 만들었다. 행복했던 날이 더 많았으니 ‘SAD BOY’가 내 어린 시절을 대변한다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자전적인 이야기인 건 맞다. 힘든 상황에서 말보다는 생각을 하며 굉장히 많은 걸 이해했고, 이 과정을 겪으며 내가 조금 더 성숙한 것 같다.

얼마 전 인스타그램 라이브 방송에서 비트를 틀어놓고 자유롭게 놀 듯이 작업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평소 어떤 방식으로 작업하나? 먼저 비트를 들어보고 곡을 구성한다. 그리고 곡에 어울리는 멜로디를 만들기 위해 외계어를 입혀 수없이 시도한다. 누구나 한 번쯤 해봤을 텐데, 그냥 아무렇게나 흥얼거리는 것과 비슷하다. 그렇게 몇 가지를 녹음해 테트리스 게임을 하듯 맞춰보고, 그다음에 가사를 쓴다. 메시지보다는 소리들이 만들어내는 분위기에 집착하는 편이다.

선공개한 곡들의 프로듀서가 다양하다. 여러 프로듀서와 작업하는 걸 좋아하나? 그렇다. 한 명의 프로듀서와 작업하면 표현의 한계가 있는 듯하다. 아무리 다양한 표현을 하는 유능한 프로듀서라도 유독 잘하는 게 있을 테고, 나는 그가 두 번째로 잘하는 걸 쓰고 싶지 않다. 종종 프로듀서들이 내게 1백여 곡을 보내는데, 하나씩 다 들어보면 뭘 잘하는 사람인지 보인다. 그게 마음에 들 때 같이 작업하는 거다. 그리고 유명하지 않은 어린 프로듀서와 협업하는 게 더 재미있다. 이번 앨범에서는 ‘SAD BOY’를 포함해 가장 많은 트랙을 만든 배드트리(Bad Tree), ‘NO FEAR’와 ‘DANCE 4 U’ 그리고 타이틀곡을 작업한 데이릭(Dayrick) 등과 함께했다. 한편 내게 자신의 곡을 들려주려고 먼저 다가온다는 점도 무명 프로듀서의 곡을 선택하게 되는 이유 중 하나다. 나는 다른 사람에게 먼저 다가가는 스타일이 아니다. 누가 놀러 온다고 하면 반갑게 맞으면서도 내가 먼저 나가진 않는다. 하지만 마음에는 사랑이 넘친다.

혼자만 사랑이 넘치면 힘들지 않나? ‘이해’는 상대의 전부를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 때문에 상처를 많이 받았는데, 누가 어떤 행동을 하든 ‘그럴 수 있다’는 마음을 가질 필요가 있다는 걸 깨달았다. 나를 포함한 모두의 생각과 감정은 매번 변하기 마련이니까. 타인은 말 그대로 완벽하게 다른 존재다. 그래서 나는 타인을 함부로 판단하지 않고 더 나아가 인간관계가 내 존재 가치를 만들지 않도록 해야겠다고 느낀다.

<쇼미더머니 777> 이후 나플라와 듀오 활동을 이어왔고 현재 각자 정규 앨범을 준비 중이다. 따로 하는 작업의 장점과 단점이 있다면? 같이 공연할 때 내가 조금 실수하더라도 나플라가 잘하면 보완이 되는 경우가 있는데, 이런 도움이 없는 건 아쉽다. 반면 둘 다 아티스트로서 음악적 욕심이 있으니 타협하는 과정이 가끔은 괴롭다. 그리고 방송을 통해 ‘루플라’ 조합에 연예인 같은 프레임이 씌워져 자유롭지 못하다고 느끼기도 한다. 내가 지향하는 음악 세계에서는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있어 편하고, 나플라와도 이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당분간은 각자 솔로로 치열하게 활동할 예정이다.

음악뿐 아니라 비주얼 작업에도 각별히 신경 쓴다고 들었다. 비주얼은 음악을 살려줄 수 있어야 가장 좋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개인적인 미감으로는 내 음악의 비주얼을 보는 사람들이 ‘리얼하다’고 느꼈으면 한다. 뮤직비디오를 찍을 땐 누군가를 연기하지 않고 나를 그대로 드러내기 위해 노력하며 모든 앨범의 커버에 내 얼굴을 담으려고 한다.

올해 초부터 메킷레인 레코즈 소속 아티스트들과 함께 일일 장사를 하는 유튜브 콘텐츠 <메킷원>에 출연하고 있다. 매주 꾸준히 업로드하기 위해 바쁘게 지내는 중이다. 전문 방송인이 아니다 보니 내가 아닌 듯 행동하는 습관이 생기려고 하는 것 같다. 시청자에게 웃음을 주려는 행위가 내 타이틀에 영향을 미치는 걸 경계한다. 그래서 잘하려는 욕심 없이 촬영한다. 하지만 기존에 해보지 않은 콘텐츠고 팬들도 좋아하니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촬영을 계기로 메킷레인 아티스트들이 함께 모이는 것도 좋은 점이다.

메킷레인에서 루피는 어떤 형이자 리더라고 생각하나? 사랑이 넘치는 게으른 형인 것 같다. 미국에서 이들을 처음 만났을 때, 내 인생의 마지막 친구들이 될 거라는 묘한 느낌이 들었다. 한국으로 넘어온 초반에는 그야말로 우리끼리만 있었다. 그러다 보니 이 친구들이 행복하지 않으면 나도 행복할 수 없다는 마음이 생겼다. 반면 팀을 이끌어가려고 힘쓰느라 정작 ‘루피’라는 캐릭터는 녹슬어 있는 게 보이더라. 지난해쯤 내가 세상에 온 이유와 사명에 대해 깊이 생각해봤다. 결론은 메킷레인 아티스트들이 더 올라가도록 만드는 것이었고, 이를 위해선 나 스스로 루피로서 본분에 충실한 게 중요하다고 인식했다. 우리가 함께 잡고 있는 끈을 내 허리에 묶고 위로 향하는 거다. 이번 앨범도 나 자신에게 시간과 노력을 들여 만든 결과다.

메킷레인 아티스트들의 공통점은 무엇인가? 오픈 마인드. 사람이든 사물이든 뭔가를 볼 때 각각 고유의 매력이 있다는 걸 인지하고, 그렇다면 반대로 자신은 어떤 점이 달라야 하는지 고민하며 차이를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 음악에서도 마찬가지다. 물론 직업이다 보니 타협점을 찾을 필요는 있지만, 누구보다 잘하는 것이 아니라 ‘나의 것’을 하면 항상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한다.

앞으로 계획과 목표가 궁금하다. 정규 앨범이 나오기 전에 몇 곡을 추가로 공개하고 발매 이후에는 콘서트를 열 예정이다. 장기적인 목표는 거창하지 않다. 그냥 메킷레인 식구들이 성공하고 행복할 수 있으면 좋겠다. 최근 경영에 관심이 생겨 공부를 시작했는데, 이제는 동기부여를 하는 리더를 넘어 실무에도 관여하고 책임감까지 가지는 보스가 되어야 한다고 느낀다. 메킷레인이 5년 차에 접어든 만큼 향후 5년의 방향성에 대해 깊이 고민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니다’라고 말하고 싶다. 이건 어디에나 적용되는 진리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모두에게 음악을 들을 여유가 생기길 진심으로 바란다. 그럴 수 있다는 건 삶이 괜찮다는 증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