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곡 ‘뭔가 잘못됐어’ 활동이 제목과 달리 잘 끝났다. 제목에서 풍기는 뉘앙스와 달리 내용은 막 사랑을 시작하는 사람들 얘기다. 사실 이전에 이별 노래만 해서 약간 걱정스러운 부분이 있었다. 보이스 컬러도 어두운 톤이다 보니 내가 부르는 설레는 사랑 노래를 사람들이 어떻게 받아들일지 확신이 들지 않았다. 다행히 좋다는 반응이 많았고, 지금까지 낸 곡 중 가장 좋다는 평가도 있어 기분이 좋다.

완성 과정이 유독 길었던 곡이라고 들었다. ‘뭔가 잘못됐어 최종’, ‘최종 2’, ‘최종 3’, ‘진짜 잘못됐다’, ‘괜찮은 것 같은데’ 등 2백 개가 넘는 버전을 만들었다고. 원래 곡을 쉽게 잘 쓰는 편인데 이번에는 후렴에서 걸리는 지점이 계속 생겼다. 이렇게 하면 너무 어렵고, 저렇게 하면 너무 쉬워서 재미없는 것 같고. 그러다 보니 최종 아닌 최종이 하루에 수십 개씩 나오더라. 그래도 오래 고민한 만큼 좋은 결과물이 나온 것 같다.

사랑에 빠진 감정을 노래하는 곡이기 때문일까? 뮤직비디오나 라이브 영상에서도, <유희열의 스케치북>에서 노래를 부를 때도 늘 꽃과 함께했다. 곡을 쓰면서 어떤 그림이나 상황을 상상하는 편인데, 이 곡은 밝은 햇살이나 싱그러운 느낌을 떠올리며 만들었다. 그러다 보니 꽃이 많이 등장한 것 같다. 뮤직비디오를 위해 회의할 때 생각나는 사진을 몇 장 보냈는데, 그중에 꽃밭이 있기도 했고.

음악을 만들 때 가사와 멜로디 중 어떤 것이 먼저 나오나? 항상 가사를 먼저 쓰고 그에 어울리는 멜로디를 붙인다. 멜로디 먼저 쓰고 거기에 가사를 붙이면 뭔가 어색한 느낌이 든다.

가사를 쓰면서 하지 않으려고 하는 것 혹은 하려고 하는 것이 있다면? 멋 부린 문장이라고 해야 하나? 본질은 없고 예쁘기만 한 말은 혹시 쓰더라도 바로 지운다. 그런 말들은 가식적으로 느껴진다. 내 음악에서 가장 중요한 건 진심이다. 내가 느끼지 않은 것에 대해 써본 적이 없다. 그리고 같은 것을 표현하더라도 더 솔직하고 쉬운 단어로 채우려고 하는 편이다.

권진아 음악의 대주제는 ‘사랑’인 것 같다. 남녀 간의 연애 관계를 넘어선 더 넓은 의미의 ‘사랑’. 모든 가사에 사랑이 빠지지 않는 이유가 있나? 아마 내가 사랑을 많이 받고 자라서 그런 것 같다. 돌이켜보면 그래서 나의 이야기에 끊임없이 사랑이 나올 수 있었고, 음악으로 사랑을 나눌 수 있었다. 아직은 ‘사랑이 모든 것을 이긴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그렇지만 적극적인 사랑 표현은 없다. 떠난 사람을 바라보거나 상대가 어떤 마음일지 모르겠다는 식의 이야기가 주를 이룬다. 전에는 내 감정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겁쟁이가 되어가는 것 같다. 상대에게 다 보여주지 못하고 때로는 관계에 냉소적이다. 이런 내 성향이 이야기를 풀어내는 방향에도 영향을 미친다. 그래서 가끔은 서글플 때도 있다. 아무것도 모르고 마냥 낭만적이고 사랑스러웠던 때가 있었던 것 같은데 말이다. 물론 그런 모습이 아예 없어진 건 아니지만 확실히 전보다 표현을 절제하는 것 같다. 이렇게 조금씩 어른이 되어가는 건가 싶기도 하다.

음악을 만들면서 자신을 들여다보는 시간이 많을 것 같다. 그래서 음악을 만들 때 혼자 있는 시간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내 음악의 8할은 혼자 있는 시간이 만들어낸 결과물이다.

나머지 2할은 무엇으로 채워지나? 아이스 아메리카노. 그리고 생각을 공유할 수 있는 사람들. 건강한 삶의 패턴. 생활이 불규칙할 수밖에 없는 직업을 가졌지만 그 안에서 나름대로 규칙적인 패턴을 만들려고 한다.

그럼 출퇴근도 있나? 물론이다. 매일 낮에 출근해서 밤까지 일하고, 작업이 많을 때는 자정 넘어서 퇴근하기도 한다.

주말엔 쉬는 건가? 그게 직장인이랑 다르다. 나는 주말에도 나간다. 집에 있으면 너무 심심하다. 별일 없으면 잠깐이라도 나가서 뭐라도 끄적이려고 한다. 아직은 내적인 고민을 음악으로 풀어낼 때 가장 카타르시스를 느끼고, 음악 하는 게 세상에서 제일 재미있다.

노래를 만들고 부르는 과정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들이는 작업은 무엇인가? 가사는 틈틈이 시간 날 때마다 계속 쓴다. 소소한 소재라도 계속 메모해놓고. 요즘은 기타를 들 때보다 피아노 앞에 앉아 있는 시간이 많은 것 같다. 굳이 연주를 하거나 작곡을 하지 않더라도 피아노 앞에서 시간을 보내며 생각을 정리하고 새 곡의 아이디어를 얻는다.

2015년에 첫 음반을 낸 이후 5년 동안 많은 것이 유행하고 사라졌지만, 권진아의 음악은 어디에도 휩쓸린 적이 없다. 일단 트렌드가 뭔지 잘 모른다. 그게 함정이다. 다만 트렌드와 상관없이 내 안에는 생각보다 여러 장르가 있고, 그래서 음악적 스펙트럼에 한계를 두고 싶진 않다. 너무 정적인 것만 하고 싶지도 않고, 신나서 까불거리는 내 모습도 음악에 담아낼 생각이다. 언젠간 다 터뜨릴 거다.(웃음)

‘뭔가 잘못됐어’ 다음에 나올 음악에는 어떤 것이 담겨 있을까? 요즘 가장 고민하는 부분이다. 다음에는 어떤 이야기를 할지. 그간 만든 음악들에 전반적으로 우울의 기운이 깔려 있었는데, 요즘은 단순하고 가볍게 사는 게 좋은 것 같다는 생각의 전환이 일어나는 중이다. 본질적인 나는 바뀌지 않았지만 밝아지긴 했다. 전에는 어떤 생각에 꽂히면 끝까지 가는 데다, 그게 해결되지 않으면 무척 힘들어했는데 요즘에는 ‘에라 모르겠다, 어떻게든 되겠지’ 하는 마음이 생겨서 조금 편해졌다. 그래서 앞으로는 진심을 담되 조금은 톤이 가볍고 편하게 들을 수 있는 음악을 만들까 생각 중이다. ‘뭔가 잘못됐어’가 변화의 시작점이다.

지금의 생각을 대변하는 곡이 있다면? 엑소의 디오가 부른 ‘괜찮아도 괜찮아’. 흘러가는 대로 살아도 괜찮다고 얘기하는 내용인데, 그 노래만 들으면 눈물이 날 것 같다. 가사가 그다지 슬픈 것도 아닌데 너무 담백하고 담담하게 불러서 그런지 오히려 더 울컥한다.

사람들이 왜 권진아의 음악을 듣는 것 같나? 내 곡에 대해 ‘나도 그랬는데’라는 반응이 많은 편이다. 그런 거 있지 않나. 힘들 때 ‘힘내’라고 하는 것보다 ‘나도 이랬고, 저랬어’라는 말을 들으면 나만 그런 건 아니라는 생각에 안도감이 드는 기분 말이다. 내 음악을 듣고 그렇게 느끼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목소리가 좋아서’라는 이유를 드는 사람도 많다. 톤이 좋다는 말을 많이 듣긴 했다. 내 노래가 실용음악과 학생들이 자주 카피하는 곡 중 하나라는 말도 들었고. 내 입으로 말하기 되게 민망하다.(웃음)

얼마 전 지식인에 ‘권진아님처럼 노래 잘하고 싶은데, 팁을 알려주세요’라는 질문이 올라왔는데 답 중 하나가 ‘토할 때까지 연습하면 된다’였다. 직접 답을 해준다면? 글쎄, 나는 나처럼 노래하려고 애쓴다. 누구처럼 부르려고 하지 말고 자신의 감정을 담아서 자신의 톤으로 노래하는 연습을 하면 되지 않을까?

얼마나 연습해야 할까? 토할 때까지? 하하. 그러면 안 된다. 건강해야 좋은 노래를 오래 부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