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희 엥겔스토프 감독 영화 포겟 미 낫 엄마에게 쓰는 편지
개봉 2021.06.03.
등급 12세 관람가
장르 다큐멘터리
국가 덴마크, 한국
러닝타임 86분

‘엄마, 어쩌다 그런 선택을 했어요?’ 태어난 지 4개월 만에 덴마크 가족에게 입양된 선희 엥겔스토프가 늘 마음에 품고 있던 질문이다. 그는 자신이 태어난 날 입양 동의서에 서명한 엄마의 마음을 알고 싶었다. 오랜 시간 풀지 못한 숙제 같던 질문들의 답을 듣기 위해 그는 카메라를 들고 한국을 찾았다. 사적인 질문에서 시작한 그의 영화는 미혼모 시설에 입소한 여성의 삶을 따라간 한 편의 다큐멘터리다. 아이를 기를지, 입양 보낼지 선택해야만 하는 현실에서 흔들리고 괴로워하는 여성들을 가까이에서 지켜보며 그는 자신을 떠나보낸 친엄마의 마음에 조금씩 다가가게 되었다. 그리고 끝내 만나지 못한 엄마에게 전하고 싶은 마음을 담아 영화 <포겟 미낫: 엄마에게 쓰는 편지>를 완성했다.

선희 엥겔스토프 감독 영화 포겟 미 낫 엄마에게 쓰는 편지

코트 코스(COS), 티셔츠 아르켓(Arket), 데님 팬츠 리바이스(Levi’s), 네크리스와 슈즈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영화 <포겟 미 낫: 엄마에게 쓰는 편지>는 사적인 경험에서 시작된 작품입니다. 앞서 촬영 일 역시 사적인 이유로 시작하게 됐어요. 저는 늘 상실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죠. 이미 한국 부모님과 그곳의 모든 것을 잃은 채 살아왔고, 수년 전 양아버지가 암으로 세상을 떠나면서 또 한 번 상실을 경험했어요. 이런 경험들을 극복하기 위해 카메라를 들고 무엇이든 남겨둬야겠다고 결심했죠. 그래야 이별 속에서도 추억과 기억을 남길 수 있으니까요. 그래서 첫 장편영화를 만든다고 했을 때, 저로부터 시작된 이야기를 하기로 한 건 너무나 자연스러운 결정이었어요.

친엄마에 관한 이야기를 푸는 방식은 다양합니다. 그중 미혼모 시설을 찾아가 그 안의 사람들을 담아내는 방식을 택한 이유가 궁금합니다. 엄마를 찾지 못했기 때문이죠. 이미 수년 전에 한국에 와서 엄마를 찾으려고 시도했지만 실패했어요. 입양 단체, 부산에 있는 남광보육원, 경찰서 등 여러 곳을 통해 알아보았지만 돌아오는 답은 매번 같았어요. 그래서 지금 그때의 엄마와 비슷한 상황에 처해 있는 누군가에 대해 알고 싶어졌어요. 아이를 입양 보내기까지 어떤 상황에서, 어떤 결정을 내리는지 알고 싶었죠. 물론 계속 엄마를 찾거나, 자기 고백 방식의 이야기를 풀어내는 게 더 쉬웠을지도 몰라요. 주변에서 다들 말렸거든요. 한국은 너무 멀고, 무척 어려운 작업이라고요. 그렇지만 제게 이건 해내야만 하는 것이었어요.

준비하는 단계에서 원칙과 계획을 세우는 게 중요했을 것 같습니다. 맞아요. 제가 한국어를 할 줄 모르는 데다 한국의 시스템이나 환경이 어떤지 몰랐기 때문에 일단 여기저기 움직이면서 찍기보다 특정한 장소에서 진행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다행히 제주도의 미혼모 시설인 애서원에서 제 기획을 흔쾌히 받아들여주었고, 그곳에서 오랜 시간 머물며 여러 인물들의 상황을 마주하고 생각을 들어볼 수 있었어요. 애서원은 마치 작은 우주 같았어요. 한정된 장소에 얼마간 머물면 그곳이 세상의 전부처럼 느껴지잖아요. 아마 입소한 여성들도 같은 마음이었을 거예요. 장소를 섭외한 이후의 계획은 단순했어요. 온종일 그들과 함께 보내는 것. 촬영도 중요했지만, 우선 애서원의 일원이 되어 사람들과 가까워지는 과정이 필요했거든요.

영화에서 가장 중점적으로 비추는 아이와 엄마의 모습을 모자이크 처리했습니다. 그들의 삶을 생각하면 당연한 방식이지만, 영화적으로는 아쉬운 마음도 있었을 것 같습니다. 당연히 감독으로서는 아쉬웠죠. 그렇지만 감독이기에 당연히, 마땅히 해야 하는 일이기도 했어요.

그럼에도 영화를 보면서 신기했던 점은 표정도 얼굴도 보이지 않고, 변조된 목소리임에도 그들의 마음이 온전히 느껴진다는 거였습니다. 우리는 언어를 직접 이해하지 못할 때, 사람들의 목소리 톤에 집중하게 돼요. 몸짓을 보기도 하고요. 가끔은 이렇게 바라보는 게 말보다 더 진실을 알게 할 때도 있어요. 촬영할 때 통역해주는 분이 있었지만, 통역하지 않아도 애서원 사람들의 마음이 느껴질 때가 있었어요. 그런 것처럼 이 영화를 보는 사람들도 얼굴이 보이지 않아도 충분히 인물의 감정에 빠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입양을 가서 행복한가요?’ 애서원에 입소한 사람들이 감독님께 가장 먼저 한 질문이라고 했습니다. 실제로 그들에게 어떤 대답을 해주었나요?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이었어요. 우선 친엄마를 만났으면 더 좋았을 거라고 말했어요. 그리고 가족들의 사랑 속에서 자랐지만 늘 마음 한편에는 친부모라는 존재가 있었고, 성인이 된 이후 많은 시간을 친엄마를 찾는 데 썼다는 얘기도 해줬어요.

 

선희 엥겔스토프 감독 영화 포겟 미 낫 엄마에게 쓰는 편지

선희 엥겔스토프 감독 영화 포겟 미 낫 엄마에게 쓰는 편지

선희 엥겔스토프 감독 영화 포겟 미 낫 엄마에게 쓰는 편지

 

촬영 못지않게 편집 과정이 굉장히 오래 걸린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촬영 분량이 약 3백50시간이었는데, 일단 모두 번역을 요청했어요. 제가 찍은 모든 장면을 완전하게 이해해야 했거든요. 오래 걸리더라도 완벽히 해내야 했어요. 영화는 계속 만들 수 있지만, 제 인생에서 이 얘기를 하는 영화를 만들 기회는 이번 한 번뿐이니까요.

영화 중간중간 오래된 카메라로 찍은 듯한 영상이 삽입되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사랑에 빠진 남녀의 모습을 담은 장면이요. 자신에 관한 이야기를 모를 때 우리는 자신만의 판타지를 그려요. 잃어버린 무언가를 대체하기 위한 거죠. 저는 아주 멋지고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가 있었다고 상상했어요. 제 부모님은 아주 단단한 관계였고, 그들은 저를 지키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는 상황이라고 상상했죠. 그 이미지들은 시설의 모습과 대조되지만 아이가 생기는 아름다운 시작을 상기시키고 싶은 마음이 있었어요.

후반부에 아이를 떠나보내고 우는 엄마를 바라보다 결국 카메라를 내려놓고 그분을 안아주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때는 어떤 마음이었나요? 우선 의도한 행동은 절대 아니었어요. 초반에 맥락상 제가 잠시 등장하긴 하지만, 그 외에는 영화 안으로 들어가는 걸 원치 않았어요. 어쨌든 카메라를 내려놓고 그분을 안게 된 건 그저 이 절망적인 상황에서 왜 아무도 그분에게 관심을 가져주지 않는지, 위로해주지 않는지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이에요. 저는 그저 가장 인간적인 행동을 했을 뿐이에요. 그분에게 어떤 일이 일어났고, 그분이 무엇을 느끼는지 알고 나니 가슴이 무너지는 느낌이 들었어요. 뭐라도 하고 싶은 마음에 저도 모르게 다가간 것 같아요.

영화를 찍기 전과 후, 가장 크게 일어난 생각의 변화는 무엇인가요? 영화를 찍기 전에는 한국 여성들이 아이를 쉽게 버린다고 생각했어요. 서양에서는 그런 인식이 강해요. 한국에서 온 입양인들이 워낙 많거든요. 하지만 제 안의 무언가가 그 말을 쉽게 믿으려 하지 않았어요. 그리고 실제로는 정반대라는 사실을 알아냈죠. 제가 만난 모든 여성은 아이를 지키고 싶어 했어요. 이를 목격하게 된 게 가장 큰 변화입니다. 또 다른 발견은, 아이를 입양 보내는 것이 단지 여성 혼자만의 선택이 아니라는 거예요. 부모님, 조부모님, 삼촌, 이모, 그리고 병원이나 학교까지 너무나 많은 사람이 관련되어 있어요. 이로 인해 아이를 지키고자 하는 의지가 강했던 여성조차도 결국 아이와 떨어지는 경우가 많았어요.

 

선희 엥겔스토프 감독 영화 포겟 미 낫 엄마에게 쓰는 편지

선희 엥겔스토프 감독 영화 포겟 미 낫 엄마에게 쓰는 편지

 

영화의 부제가 ‘엄마에게 쓰는 편지’입니다. 이 영화를 통해 엄마에게 하고 싶은 말은 무엇인가요? 이 영화는 만나지 못한 친엄마를 위한 것이에요. 이게 제가 그분에게 말을 걸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일지도 모르니까요. 그래서 제 소원은 친엄마가 이 영화를 보는 거예요. 그리고 이 영화를 통해 제가 당신을 많이 그리워하고 사랑하며 미워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좋겠어요. 이제는 당신의 상황을 너무나도 잘 이해하고 있다는 사실도요.

영화를 통해 오랜 시간 마음에 품었던 질문의 답은 찾았나요? 엄마와 아이가 떨어질 때, 트라우마가 생긴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트라우마를 다루는 데는 여러 다른 방식이 존재하고요. 이 영화를 만들면서 제 안에 있는 트라우마에 대해 더 잘 알게 되었어요. 없어지지 않을 거란 사실도요. 다만 이제는 제가 다루는 방법을 깨달은 것 같아요. 그러니 이제는 제 인생이 더 좋은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지 않을까요?

영화는 개인적인 경험에서 시작되었지만, 결국 사회적인 담론으로 나아갑니다. 제가 한국 문화에 대해 충분히 알진 못하기 때문에 모든 것을 사회적 맥락에서 볼 수는 없을 것 같아요. 무언가를 드러내야겠다는 의도도 전혀 없었고요. 저는 ‘여성이 어떻게 아이를 포기하게 되는가’ 라는 하나의 질문으로 시작했을 뿐이고, 이를 통해 당사자들의 상황을 목격하게 된 거죠. 사회적 담론을 이끌어낼 의도는 없었지만, 최소한 제가 목격한 사실을 진실되게 말하는 게 제 의무라 생각하긴 했어요.

미혼모와 입양인 문제를 위해 개인 혹은 사회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이라 생각하나요? 다른 사람을 함부로 판단하지 않는 것만으로도 큰 변화를 만들 수 있어요. 미혼모나 입양인이라는 프레임을 씌우지 않고 그 사람 자체를 바라볼 줄 아는 태도를 가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물론 엄마들이 자신의 선택으로 아이를 키울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진다면 더없이 좋겠죠.

시사회에서 다음 작품에서는 아빠, 남성을 바라보고 싶다는 말을 남겼습니다. 어떤 형태가 될까요? 저는 친아빠와 정신적으로 연결돼 있다고 느낀 적이 없어요. 그런데 친엄마에 대해 다루고 나니, 그곳에 아버지도 존재한다는 걸 깨달았죠. 그리고 아무도 남성, 아버지의 존재와 그들의 책임감에 대해 언급하지 않는 게 이상하게 느껴졌어요. 임신과 출산에서 대부분의 남자들이 비가 시화되다시피 했기 때문에 다큐멘터리의 형태는 어려울 것 같고, 제가 친아빠에게 갖는 환상에 대한 픽션이 되지 않을까 싶어요. 이 역시 아마 꽤 오랜 기간이 걸릴 것 같아요. 그렇지만 제작 의지는 확고합니다. 이 생각도 제 안에 오래 머물러 있던 거거든요.

다시 한국에 올 이유가 하나 더 생긴 셈이네요. 맞아요.(웃음) 처음 한국에 온 게 스무 살 때였는데, 지금 서른여덟이 됐어요. 두 해만 지나면 제가 인생의 반을 한국에 돌아오기 위해, 제 시작을 찾기 위해 쓴 셈이 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