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 위도우

<어벤져스> 시리즈에서 ‘블랙 위도우’ (스칼렛 요한슨)는 러시아 출신 스파이 정도로만 비춰져왔다. 이 영화는 그의 본명인 ‘나타샤 로마노프’로서의 삶에 밀착해 그간 블랙 위도우의 행동과 결단에 단단한 서사를 부여하고 입체적인 캐릭터로 숨을 불어 넣었다. 그 중심에는 여동생 ‘옐레나’(플로렌스 퓨)와의 관계가 있다. 오래 떨어져 지낸 자매의 만남은 걷잡을 수 없는 오해로 치닫지만, 같은 배경을 가진 자매이기에 이해할 수 있는 지점들을 교차하며 함께 성장해나간다. 자매의 관계는 자연스레 여성의 연대로 이어진다.

 

남성 조력자들이 등장하나 그들은 얼빠지거나 멍청한 인물이 아니다. 현실 속 다양한 위치의 남성들에게서 보이는 캐릭터로, 순전히 나타샤만을 위해서가 아닌 자신의 의지로 그를 돕는다. 무엇보다 나타샤는 ‘슈퍼 히어로’이기에 가장 위험한 일은 직접 해결한다. 그 과정에서 <본> 시리즈에서나 보아왔던 둔탁하고 리얼한 액션이 펼쳐진다. 성별로 구분한 편견 속의 몸짓이나 ‘아무튼 우주를 들어 올릴 정도의’ 얼렁뚱땅 슈퍼 파워 같은 건 없다. 킬러들의 숨 막히는 결투와 잘 만든 블록버스터에서 느낄 수 있는 짜릿함이 있을 뿐이다. 나타샤의 적수 또한 대부분 여자들인데, 굼뜨거나 우스꽝스럽게 연출되지 않은 여자들 간의 액션 신은 낯설고 반가운 카타르시스를 선사한다.

 

블랙 위도우

문제 해결 방식과 매력적이지 않은 빌런이 아쉽긴 하나, 누군가는 ‘아이언맨’이나 ‘캡틴 아메리카’가 아닌 블랙 위도우를 슈퍼 히어로로 기억하게 될 것이다. ‘스파이더맨’이 아닌 블랙 위도우가 되고 싶을 것이다. 나타샤는 고달픈 과거를 용감하게 조우하며 자신의 인생이 자신의 선택이었음을 강조한다. ‘재밌을 것 같은’ 일 앞에서 망설임 없이 발을 디디고 너의 빛은 스스로 낼 수 있다고, 지켜보는 모든 여성들에게 당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