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표지

<나는 소망한다 내게 금지된 것을> 표지

<나는 소망한다 내게 금지된 것을>은 소설가 양귀자가 1992년에 발표한 장편소설로, 20대 여성 ‘강민주’가 대한민국 톱배우 ‘백승하’를 납치하며 벌어지는 일이다. 익숙하게 봐왔던 납치극에서 남녀의 역할을 바꿔 미러링 방식으로 쓰인 이 책은 파격적인 내용으로 화제가 되며 동명의 영화로 만들어지기도 했다.

주인공 ‘강민주’는 낡은 사고방식과 운명론을 증오하며 ‘나는 저들과 다르다’는 생각에 빠진 병적인 자기도취적 인물이다. 여성 문제 상담소에서 자원봉사를 하던 그는 결혼 생활로 위기에 처한 주부들의 이야기를 듣다 극심한 남성 혐오에 사로잡히게 되면서 납치를 계획한다.

얼핏 황당해 보이는 이 계획이 성공한 데에는 강민주가 어린 시절부터 심리적으로 조종하며 하인처럼 다룬 ‘남기’의 역할이 크다. 대상을 톱배우로 상정한 이유는 간단하다. 남자란 다 똑같은 족속들인데 왜 여성으로 하여금 다른 남성상이 있다고 착각하게 만드는가.

이는 급진적 페미니스트이 실재하고 있는 이 시대의 소설에서는 오히려 찾아볼 수 없는 과감함이다. 그들이 존재하기 때문에 남성에게 실제적 위해를 가하는 서사가 더는 ‘소설적’으로 느껴지지 않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반대로 말하면 1992년에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기에 당시의 독자들, 양귀자에게 편지를 보내 자신의 삶을 써달라고, 한을 풀어달라고 요청했던 무명의 여성들 (작가의 말 중에서)은 말로 할 수 없는 대리만족을 느꼈을 것이다. 다음은 극 중 강민주가 언론에 보내는 편지의 일부다.

‘오히려 너무 뛰어난 머리의 남자는 더불어 즐기기에 성가신 게 한둘이 아닙니다. 남자가 많이 알면 얼마나 많이 알겠습니까. 바깥일은 저 혼자만으로도 충분합니다. 저는 그저 잘생기거나 부드러운 남자면 족합니다…’

흔한 한국 남성들과는 다른 태도를 지닌 백승하와의 대화를 통해 강민주가 통찰한 것은 백승하가 지금의 남성들과 과연 얼마나 다른 지 주목할 만하다.

‘그는 이 땅의 많은 여자에게 일어나는 불행과 고통에는 적극적으로 공감하지만 여성차별의 역사와 지배구조의 악의성에 대해서는 동의하지 않았다. 특히 현대에 이르러서는 모든 남성이 여성차별에 가담하는 것은 아니라고 강변했다. 단지 개개인의 성격차이를 지나치게 확대해석하여 사회를 분열시키는 것은 옳지 않다고도 했다.

그는 복잡화한 사회일수록 여성들에 대한 억압 또한 복합적으로 자행된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했으며( …. )’

90년대 초반, 많은 소설에서 가부장제에 찌들려 희생당하며 자신을 잃고 우울에 잠식되는 무력한 여성상을 재현할 때 양귀자는 세상을 거꾸로 보았다. 30여년이 지난 지금도 이 책이 대형서점 매대에 올라있고 현대 여성들에게 흥미롭게 읽히고 있는 이유다.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사회적 여성 혐오 문제 ㅡ매 맞는 아내, 성폭력, 결혼을 선택하지 않은 여성을 보는 시선, 성매매, 성희롱 등ㅡ 는 2021년인 지금 얼마나 달라졌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