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김신록 사진

얼마 전 ‘마리끌레르 디지털 매거진’으로부터 한 꼭지를 맡아 글을 써달라는 청탁을 받았습니다. 사실 인터뷰 글을 요청 받았었는데, 저는 일상의 우연한 대화를 짤막하게 수집해 모자이크* 하는 방식의 글을 써보겠다고 제안했습니다.

글 꼭지의 제목은 <경로를 이탈하였습니다> 입니다. 오랜 시간 연극을 하다 영상 매체로 넘어가고 있는 저의 행보도 그렇지만, 올 해 만으로 마흔을 넘어가면서, 혹은 작년과 올해 코로나를 겪으면서, 요새 부쩍 내가 알고 있던 삶의 방식이나 정답들이 너무 낡아버렸다는 감각이 생겼습니다. 무슨 생각을 하든, 무슨 말을 하든, 내가 이미 ‘기성’이 되어 버렸다는, 내가 하는 말이 현재성을 잃고 과거를 반복하고 있다는 느낌입니다.

좀 더 솔직하게는, 저는 저의 30대가 썩 마음에 들었는데, 갑자기, 정말이지 1~2년 사이에, 공교롭게도 마흔으로 넘어가는 이 시점에, 내 모습이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게 되었습니다. 내 방식이, 태도가, 사고가, 말이, 갑자기 낡고 녹슨 것이 되었다는, 어리둥절하고 황망한 마음. 허둥대며 새로운 답을 찾기 보다는 차라리 안정적인 과거의 답을 자꾸 반복하는 스스로에게 느끼는 난처한 실망감. 모든 것이 의미와 목적과 노력과 계획과 배움과 가르침과 내용으로 꽉 차 있었던 지난날에 대한 본능적인 거부감이 들었습니다.

‘좀 더 가벼워지고 싶다.’ 그렇다고 가벼워지기 위한 책을 읽거나 세미나에 가거나 워크숍에 참여하거나 새로운 친구를 사귀거나 낯선 취미를 가져보는 등의 여전히 목적적인 방식 말고, 전혀 새로운 방식을 발견하고 싶었습니다. 경로를 이탈하여, 네비게이션 없이, 주변의 표지판과 환경과 소리에 귀 기울여 길을 헤매듯이, 그냥 스치듯 들리는 다른 사람들의 말에 귀를 기울여 보고 싶었습니다.

‘마리끌레르 디지털 매거진’에서 만나게 되실 <경로를 이탈하였습니다>는, 배우 김신록이 일상에서 만난 사람들과의 우연한 대화 속에서 더듬더듬 주워 담은, 의미 없어 보이는 짧은 대화의 모자이크입니다. 해당 대화가 왜 일상의 무의식적인 대화로 흘러가지 않고 의식의 거름망에 걸렸는지, 해당 대화를 통해 어떤 의미나 감상을 나누고 싶은지에 대해서는 쓰지 않아 볼 생각입니다. 여러분 역시 스치듯 읽어주세요.

그럼에도, 이 대화가 어떤 의미로든 여러분의 거름망에 걸려들어 여러분 일상에도 하나의 모자이크 조각이 된다면, 초면에도 농담이 통하는 사람을 만난 것처럼 기쁠 것 같습니다. 그럼 우리, 경로를 이탈한 곳에서 만나요!!

 

김신록 배우 사진

블랙 슬리브리스 니트 톱, 실키한 블랙 팬츠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모자이크 이론(mosaic theory of intelligence gathering): 미국 정보기관의 정보수집 방법 중의 하나로서, 그 자체로는 심문자나 피조사자 쌍방에게 아무런 의미도 없어 보이는 정보 조각들을 퍼즐처럼 짜맞추다 보면 전체 그림을 파악하는 데 결정적인 정보가 될 수 있다는 논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