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3회 서울국제여성영화제가 8월 26일부터 9월 1일까지 메가박스 상암월드컵경기장과 문화비축기지에서 열린다. 이번 영화제는 ‘돌보다 돌아보다’라는 슬로건을 바탕으로 팬데믹과 페미니즘 백래시 시대를 살아가는 여성들을 초대한다. 서로를 응원하며 내일로 나아가자는 메시지가 담긴 올해 서울국제여성영화제에서 눈여겨봐야 할 작품들을 프로그래머들이 직접 추천했다.

 

<고양이를 부탁해>
정재은

2001년, 20대의 정재은 감독이 야심 차게 내놓은 데뷔작. IMF 당시 스무 살 여성들의 삶을 세밀하게 각인한 시대의 초상화다. 당시 주류의 청춘 영화에 등장하던 20대 여성들을 떠올린다면, 이 영화의 가치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정재은 감독과 최영환 촬영 감독의 섬세한 손끝을 거친 디지털 리마스터링 버전이 올해 서울국제여성영화제에서 최초로 공개된다.

 

<세실리와 리디아>
줄리엣 스트랜지오

올해 장편 경쟁 출품작의 경향은 여성들의 우연한 만남과 그로 인해 변화하는 삶을 그린다는 것이다. <세실리와 리디아>도 마찬가지로, 어느 날 하늘에서 뚝 떨어진 듯한 두 사람이 서로를 발견하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간결한 설정 속에서 이들이 나누는 끊임없는 대화는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도전적인 질문을 던진다.

 

<해는 짧고 하루는 길지>
실비나 에스테베스

산후 여성들을 몇 주 동안 기록한 아르헨티나의 다큐멘터리. 출산 그리고 양육의 기쁨과 고충에 대해 이야기하는 다양한 연령대의 어머니들이 등장한다. 이들을 바라보는 감독의 고민이 관객에게 확장되어 어머니가 되기를, 혹은 되지 않기를 결심한 각자의 선택을 지지하게 만든다. 서울국제여성영화제에서 월드 프리미어로 상영된다.

 

<섬광의 밤>
아이노아 로드리게스

스페인의 신예 여성 감독 아이노아 로드게리스가 만든 영화. 시간이 멈춘 듯한 작은 마을에 사는 여성들의 감춰진 욕망이 스멀스멀 피어오른다. 작품 속 세계는 어둡지만, 여성들이 등장하는 순간만큼은 섬광이 비치듯 활력으로 가득하다. 각자의 성적 환상에 대해 털어놓는 만찬 장면이 대단히 매혹적이다.

<생존 지침서>
이아나 우그레헬리제

트빌리시에 거주 중인 연인을 포착한 다큐멘터리. 출생 당시 여성이었기 때문에 합법적인 노동을 할 수 없는 트랜스젠더 알렉산더와 그가 성별을 바꿨다는 사실만으로 위험한 상황에 놓인 연인 마리는 살아남기 위해 고국을 떠나기로 결심한다. 다큐멘터리의 카메라가 인물들에게 얼마나 깊이 다다를 수 있는지 알 수 있는 작품이다.

 

<토베 얀손>
차이다 베리로트

세계적인 사랑을 받는 ‘무민’ 시리즈로 유명한 핀란드 작가 토베 얀손의 삶을 다룬 전기 영화. 열정적인 사랑을 추구하던 퀴어 예술가가 맺은 다양한 관계와 이로 인한 불안과 긴장, 활력과 생동감에 주목한다. 그의 작품에 큰 영감을 준 비비가 반들러와의 관계가 특히 인상적이다.

 

<일렉트로니카 퀸즈 – 전자음악의 여성 선구자들>
리사 로브너

전자 음악의 여성 선구자들에 대한 경이롭고 매혹적인 다큐멘터리. 여성의 작곡 능력에 대한 의구심이 존재하던 시대를 살아가는 여성들이 기계가 가져온 기술을 기꺼이 수용하여 새로운 음악을 창조하는 과정을 다룬다.  등장인물, 음악, 화면 모두 시대를 초월하여 멋지다.

 

<미얀마의 봄: 파둑 혁명>
진 할러시, 라레스 마이클 길레잔

동남아시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꽃의 이름을 본떠 ‘파국 혁명’이라고 명명한 미얀마의 민주화 운동을 다룬 다큐멘터리. 잔혹한 실체를 드러낸 군부 독재에 맞서 싸운 경험이 이전과는 다른 세상을 만들 것이라는 믿음을 가진 현지의 젊은이들을 만날 수 있다.

 

<사르그나겔>
자비네 히블러, 게르하르트 에르틀 

파격적인 작품, 사람들을 당황시키는 언행으로 컬트적인 명성을 얻은 오스트리아의 젊은 시인이자 만화가 스테파니 사르그나겔이 주인공인 전기 영화. 모든 사람을 파멸의 벼랑으로 몰고 갔던 그의 삶을 살펴볼 수 있다. ‘진짜와 가짜’에 대한, 유머러스하면서도 철학적인 질문을 던지는 작품이다.

 

<두 도마뱀의 락다운 다이어리>
메리엄 베나니, 오라이언 바키

코로나19의 유행으로 ‘락다운(lock down)’된 뉴욕에 거주하는 도마뱀 두 마리의 일상을 극화한 애니메이션. 아무것도 안 하고 집에서 여유를 즐길 수 있는 자유가 이렇게 ‘빌어먹을’ 방식으로 올 줄은 몰랐다는 도마뱀의 한탄에 공감하며 영화를 보다 보면 무기력과 불안감, 시니컬한 유머, 가슴 찡한 감동의 순간들을 마주하게 된다.

 

<잊혀진 길>
니콜 루이스 베나비데스

UFO 목격에 집착하는 칠레의 한 작은 마을을 배경으로 한 영화. 남편을 먼저 떠나보낸 노년의 여성 클라우디아가 생활을 꾸려나가기 위해 마지못해 이사한 동네의 하늘에서 눈부신 빛을 내는 무언가를 발견한다. 인생이 끝났다고 생각하는 지점에서 열리는 여성의 새로운 욕망, 해방, 자기발견을 다룬 온화하면서도 신비한 작품이다.

 

<줌마네에서 영화를 만드는 까닭은>
줌마네, 오소리(이숙경), 하리(김혜정)

상근자도, 상시 프로그램도 없이 20년을 지속해온 여성문화기획 플랫폼 ‘줌마네’의 영화제작 워크숍을 통해 탄생한 12편의 단편영화들을 장편으로 엮었다. 초반부터 줌마네와 함께한 김혜정 감독이 자신의 시선을 바탕으로 플랫폼의 역사를 짚는다. 각 작품 속에 켜켜이 쌓여 있는 감정과 관계 그리고 지나온 시간들을 마주할 수 있다.

 

<더 치터스 – 청춘의 사기꾼들>
플랫 맥도나

1920~30년대 호주에서 감독, 배우, 제작자로 활발히 활동했던 ‘맥도나 자매들’의 무성 영화. 화려하면서도 표현주의적인 세트에서 복수와 출생의 비밀, 범죄와 운명적 사랑이 얽힌 격정적인 이야기를 풀어낸다. 뮤지션 이주영의 ‘1인 다악기’ 즉흥 연주가 작품 감상의 재미를 더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