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랑 늑대가 나타났다

이랑 인스타그램(@langleeschool)

 

“이 땅에는 충격이 필요합니다.”
-‘늑대가 나타났다’ 中-

 

싱어송라이터 이랑이 정규 3집 <늑대가 나타났다>를 발매했다. ‘이른 아침 가난한 여인이 굶어 죽은 자식의 시체를 안고 가난한 사람들의 동네를 울며 지나간다’ 는 나레이션으로 시작하는 타이틀곡 ‘늑대가 나타났다’는 확연히 커진 카리스마와 질감으로 전작들과는 다른 판이 펼쳐지리라는 것을 짐작케 한다, 극적인 현악기, 블루지한 기타와 베이스, 두터운 코러스. 결정적인 순간 나타나는 드럼들은 ‘내 친구들은 모두 가난합니다 이 가난에 대해 생각해보세요’ 라는 가사를 향해 달려간다. 마녀, 폭도, 이단, 늑대의 등장이 강렬하게 선언된다.

 

이랑 대화

‘대화’ 뮤직비디오

가사는 더욱 직접적이다. 그는 해야 하는 이야기가 있기 때문이다. ‘이 세계에는 뭔가 중요한 것들이 있을 테고 그건 내 얘기는 아니라는 것을 난 잘 알고 있어’ (대화) 여전히 질문 투성이인 화자는 ‘네가 하는 말은 듣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질문은 타인들과 함께 살아보려는 화자의 시도다. 내 노래 잘 듣고 있나요? 라는 질문에서 자신이 타인들의 마음을 잘 듣고 있다는 내용으로 넘어가는 ‘잘 듣고 있어요’ 와 ‘잠 못 드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을까’ 라는 나지막한 질문으로 시작하는 ‘의식적으로 잠을 자야겠다’는 불면증을 앓는 사람들을 향한 사려 깊은 자장가처럼 느껴진다.

 

이랑 늑대가 나타났다

이랑 인스타그램(@langleeschool)

‘빵을 먹었어’는 사소한 사물에서 비롯된 작은 사건을 통해 우울한 시대정신을 드러내고 있다. ‘이것밖에 없어서 오늘 본 것 중에 가장 좋은 것이 좋다고 말할만한 것이 이 빵 밖에 없어서’ 라는 가사는 경쾌한 드럼과 코러스로 점차 더 근사해지고 동시에 쓸쓸해진다.

 

이랑 박강아름

‘박강아름’ 뮤직 비디오

결혼 생활과 창작을 동시에 하고 있는 여성의 무게를 노래하는 ‘박강아름’에서는 뒤로 갈수록 아무도 하지 않았던 이야기를 슬며시 드러낸다. ‘이젠 네가 내 얘기를 대신 해볼래 내 하루를 상상해볼래 어때 해볼 수 있겠니 우리의 대화의 주제는 언제나 박강아름이었으니까’ 노숙자의 이야기를 담은 ‘어떤 이름을 가졌던 사람의 하루를 상상해본다’ 의 마지막은 ‘나 아니면 누가 이 일을 말할 수 있을까 이건 나밖에’ 라는 가사에서 자신의 예술이 겨냥하는 방향을 향한 사명감이 드러난다.

 

이랑 늑대가 나타났다

유튜브 채널 ‘뮤즈스(MUZES)’ – 이랑 ‘늑대가 나타났다’ 라이브

<늑대가 나타났다>의 모든 노래에는 나–화자와 너-청자들이 나란히 있다. ‘너’들은 먹고 살기 위해 일을 하고 있는 모든 사람이기도, 먹고 살 수 없는 공부에 몰두하는 사람이기도, 여성이기도, 길에서 사는 사람이기도 하다. 화자는 이랑 자신인 동시에 같은 일로 생계를 유지하는 많은 이들을 대표한다. 이랑의 앨범에서 언제나 진득하게 묻어나는 친구들과의 연대감은 ‘어쩌면 오늘 이후로 다시 만날 리 없는 귀한 내 친구들아 동시에 다 죽어버리자’ (환란의 세대)라는 말을 하면서도 다시 만나기 위해 일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일을 하지 않으면 무엇도 의미가 없다는 것을 반어적으로 드러내며 유지된다. 그렇게 너와 나는 ‘우리’가 된다. 재능을 팔고, 대부분은 하기 싫은 일을 하고, 정상에서 한참 벗어난 사회에서 정상인인 척 하며 하고 싶은 말은 작품으로 힘들게 만들어야만 해도, 울면서 우리 계속 하자고 손을 내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