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지완 감독 내가 죽던날 마리끌레르 부산국제영화체특별판

절벽 끝으로 사라진 소녀 ‘세진’(노정의)과 그 흔적을 추적하는 형사 ‘현수’(김혜수), 그들의 주변을 맴도는 섬마을 주민 ‘순천’(이정은). 영화 <내가 죽던 날>의 세 사람은 각자의 벼랑 끝에 서 있다. 이들은 이내 타인의 위태로운 삶을 더듬으며 자신을 발견하기 시작한다. 내내 외면하던 내 얼굴을 눈앞의 당신으로부터 보게 되고, 당신에게 뻗은 손은 이내 나에게로 돌아온다. 이 연결은 서로를, 나를 붙잡는 힘이 된다. 그러니 인간은 아무리 허약해도 그 어떤 절망보다는 오래 살아남을 것이다. 이상하게도 이런 믿음은 쉽게 흐트러지지 않는다. 이 아름다운 이야기의 시작과 끝에는 박지완 감독이 있다.

박지완 감독 내가 죽던날 마리끌레르 부산국제영화체특별판

2012년 시나리오를 쓰기 시작해 올가을이면 개봉한 지 1년이 되어간다. 두루 좋은 평을 받았고, 백상예술대상 각본상도 수상했다. 지난 10년의 여정이 끝나가고 있음을 실감하는가? 감독으로서 할 수 있는 건 다 해봤으니 이제는 보내줘야 하는 타이밍일 거다. 한데 잘 안 된다. 이 영화를 보내주는 날은 언제일까? sns에 제목 검색을 그만두는 날일까?(웃음)

아직도 영화에 대한 감상을 찾아 보는 건가? 맞다.(웃음) 상황상 관객과의 대화(GV)를 전혀 못 하다가 영화제에 가서 처음 GV를 했는데 나조차 기억하지 않은 장면들에 대해 질문을 받았다. 흔히 말하는 감독의 책임이 영화가 상영되는 시기에만 발현되는 게 아니라 상영이 끝나도 나와 계속 함께 가는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끝까지 책임지는 일이구나 싶었다. 사람마다 이 영화를 만나면 좋을 각자의 시간이 있을 테고, 부디 그때에 맞춰 이야기가 잘 전달되었으면 좋겠다.

배우 김혜수, 이정은, 김선영 등 실력을 의심할 여지 없는 배우들이 함께한다는 사실은 첫 장편영화를 만드는 감독에게 엄청 든든하게 다가왔을 것 같다. 그 든든함과 비례해 나만 잘하면 된다는 두려움을 느끼지는 않았나? 내가 좀 늦되다. 어떤 사건도 다 지나간 다음에야 ‘아, 이런 거구나’ 하고 뒤늦게 느끼곤 한다. 스태프들과 늦은 점심을 먹을 때 김혜수 배우가 함께한다는 전화를 받았었다. 그 뒤로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날 뭘 먹었는지도. 멍한 상태였는데 그다음 날부터는 조금 무서웠다. ‘나만 잘하면 되는데’ 하는 생각이 들었고, 이 배우들의 앙상블을 내가 어떻게 만들어가야 할지 두려웠다. 현장에서 이야기를 어떻게 풀어갈지 논의할 때 내가 생각한 지점과 조금씩 다른 질문을 받아 혼란스럽기도 하고 재미도 있었다. 너무 무섭지만, 동시에 너무 재미있는 거다. 영화 촬영이 끝날 때쯤 혹시 이 작품 이후에 영화를 못 찍게 되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과 이 사람들을 다시 못 만나면 많이 슬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못난 모습까지 다 봐준 사람들과 두 번째 만남이 없다는 건 잔인하다고 느껴지는 거다. 잘 마무리해서 이 영화의 배우, 스태프들을 다시 만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두려움을 딛고 할 일을 하게 한 힘은 어디에서 기인하는 것 같은가? 제일 강한 동기는 ‘내가 이 영화를 보고 싶다’는 거다. 영화가 좋은 게 오랫동안 혼자 골방에서 시나리오를 쓰다 보면 한 사람, 두 사람 이 영화에 합류하기 시작한다. 그게 참 든든하다. 각자 다가와 하나씩 채워주고, 질문에 대답해주고, 자신들의 생각을 전해주는 일련의 과정이 모두 좋았다. 촬영을 마치고 매일 그날의 일기를 썼는데 다시 읽어보면 한 번도 촬영장에 가기 싫었던 적은 없었던 것 같다. 타고나길 쫄보라 벌벌 떨고, ‘왜 그랬지, 어떡하지’ 하고 자책하다가도 털어내고 다음 날 촬영장에 다시 간 걸 보면 내가 영화 찍는 걸 내 생각보다 더 즐거워한 거다. 이제는 혼자서도 영상을 만들 수 있는 시대라지만 영화의 힘이라는 게 그런 것 같다. 사람들의 기운을 모아 생각의 조각을 한 땀 한 땀 기우는 느낌이다. 그래서 이걸 완성하고 싶고, 완성본을 내 눈으로 확인하겠다는 욕망이 컸던 것 같다.

감독에게 힘이 되어준 장면들은 무엇인가? 어떤 장면들이 새삼 떠오르는가? 요즘에 계속 떠오르는 건 현수의 표정들이다. 이 사람이 괴로운 일을 겪고 이겨내서 마지막에 웃기에 이르는 과정과, 그 과정에서 만난 여성들의 얼굴이 떠오른다. 세진을 연기한 노정의 배우의 얼굴도 떠오른다. 노정의 배우는 촬영 당시 개인적으로 입시를 준비하고, 다른 드라마도 촬영했었다. 본인도 지친 상태에서 세진을 만난 거다. 괜찮아 보이지 않는데 늘 괜찮다고 했다. 어느 순간부터는 내가 너를 믿으니까 하고 싶은 대로 하라고 그냥 두기도 했다. 그를 그냥 두었을 때 배우가 보여준 얼굴들이 오래 남아 있다.

영화를 보는 동안은 특정 감정이 일어나지 않는다. 한데 영화가 끝나고 시작된다. 버스를 기다리다가 문득, 편의점에서 줄을 서다 문득 갑자기 이야기가 나를 찾아온다. 그때 감정이 증폭되는 경험을 하게 된다. 감독의 치밀한 계산이 없었다면 제대로 구현되기 어려울 이야기다. 첫 장편영화를 찍기 전 시나리오 쓰는 단계에서 흔히 빠지는 욕망의 딜레마가 있다면 ‘남들과 비슷하게 흥미로운 것을 찾아야 데뷔할 수 있지 않을까’와 ‘당장은 몰라줘도 내가 아니면 할 수 없는 새로운 것을 보여주고 싶다’ 사이에서 갈등하는 것 아닐까. 그 사이의 균형을 찾으면 제일 좋겠지만 말이다. 그래도 유일하게 계속 욕심낸 것은 극장을 나선 후에도 영화가 관객을 쫓아갔으면 좋겠다는 마음이었다. 익숙한 길로 가는 것 같으면서도 영화가 끝나면 완전히 새로운 곳에 도달해 있는 느낌이길 바랐다. 이야기 특성상 스릴러나 미스터리로 가기 쉬었지만 그럴 때마다 내가 ‘그게 아니니까, 여기까지만’ 하면서 방향을 휙휙 틀더라. 지금 돌이켜보니 강박적이기까지 한 것 같아서 내가 통제광인가 싶은 생각도 든다. 오래 알고 지낸 어떤 분이 영화를 보고 ‘욕심이 많았네’ 하셨는데 그때 제일 찔렸다. 누군가는 상업적이라고 할 수 있는 영화의 효용을 내 손으로 꺾은 셈이니까.

장편을 만들고 세상에 내보이며 새삼 감독은 무얼 하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나? 감독이 바라는 상(像)이 있는데 배우든 스태프든 감독의 상과 완전히 동일할 수는 없다. 그때 ‘당신이 이 지점에 있으면, 나는 이 지점에 있다’는 것을 계속 좌표를 찍으며 지도를 그리고 ‘우리가 저기까지 가야 합니다’ 하고 말하는 사람이 아닐까? 나아가 카메라 뒤에 내가 있고 누군가를 앞세워서 찍는 행위 자체가 오만하고 잔인한 일임을 항상 자각해야 하는 사람이기도 하다. 감독은 장면을 고르는 사람이기 때문에 마치 자신이 뭔가를 만든 것처럼 착각할 수 있다. 근데 사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이 일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극 중 순천댁인 이정은 배우의 대사인 “인생이 생각보다 훨씬 길어”라는 말이 오래 회자됐다. 상황에 따라 힘을 불어넣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무척 끔찍한 말이기도 하다. 이 대사가 어떻게 전해지길 바랐나? 누군가의 고통이나 어려움에 대해 가까운 사람이 아닌 경우에는 쉽게 ‘괜찮아, 별일 아니야’라고 이야기해줄 수 있다. 하지만 아프고 냉정한 이야기를 해줄 수 있는 사람이 세진에게는 없지 않나. ‘다 지나갈 거야’라고 말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아니야, 너의 상황을 정확히 봐야 해. 인생은 길어. 그렇기 때문에 너는 이곳을 떠나야 해’라고 무리한 요구를 할 수 있는 건 아주 가까운 관계에서만 가능하다고 본다. 인생이 길다는 것, 그러니 네가 너를 구해야 한다는 게 어린아이에게 얼마나 잔인한 이야기인가. 하지만 그 말은 세진에게 반드시 필요한 말이다.

감독 자신은 어떤가. 10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당신이 붙잡은 것은 무엇인가? 영화 학교를 졸업하면 바로 영화를 만들 수 있을 줄 알았다. 현실은 그렇지 않았고, 긴 시간을 보내면서 내가 잃어선 안 되는 게 현실 감각이었다. 내가 생각하는 나와 현실의 나 사이의 간극이 있고 그 간극을 메우기 위해서는 움직여야 했다. 그 간극을 머릿속으로만 메우면 그냥 미친 사람이 되는 거니까. 이를 좁히기 위해 마당이라도 한 번 더 쓸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움직였다. 나에게는 가장 냉정하고, 도망가고 싶은 동시에 마주해야 하는 생각이었다. 그래서 순천댁이라면 세진에게 그 이야기를 해주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냉정한 말이지만 동시에 ‘내가 너를 사랑한다’라는 말과 똑같이 느껴졌다.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이미 영화를 통해 한 것 같지만 다시 묻고 싶다. 영화는 더 이상 이전 삶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걸 아는 이, 인생에 메울 수 없는 구멍이 생긴 이가 어떻게 계속 살아갈 수 있는지, 살아가는 힘에 대한 이야기라는 생각도 든다. 무엇이 그들을, 우리를 살아가게 할까? 나는 늘 ‘왜’를 궁금해하며 살았다. 그리고 그 ‘왜’에 대한 답이 떨어지지 않으면 움직이기 힘든 사람이었다. 나는 왜 태어났고, 왜 영화를 하며, 왜 앞으로도 영화를 해야 하는지에 대해 계속 질문해왔다. 근데 어느 순간 ‘어떻게’ 해나가다 보면 그 ‘왜’를 알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안 살 거면 모르겠지만 살기 위해서는 앞으로 가야 하는데 그게 참 힘들다. 누군가에게는 별일 아닌 것이 내게는 굉장히 크게 남아 뒷걸음질하게 만들기도 하니까. 각자에게 일어난 일은 모두 개별적인 것이니 ‘어떻게’를 찾다 보면 ‘왜’ 또한 발견할 수 있다는 걸 순천댁이 세진에게 가르쳐준 거라고 생각한다. 그걸 보며 현수 역시 ‘그래, 그렇지’ 하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지 않았을까.

차기작은 재미있는 이야기를 하고 싶다고 했다. 그래도 코미디는 아닐 것 같다. (웃음) 성실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좋아한다. 무언가에 부딪히면서도 사람들의 선한 의지가 발현되는 과정을 보는 것을 좋아한다. 토마스 매카시의 <스포트라이트>를 좋아하는데 영화가 꽉 차 있어서 숨 쉴 데가 없다. 그래서 힘들어하는 사람도 있는데, 나는 그 영화의 어떤 부분에서 시작하더라도 항상 끝까지 보게 된다. 데이비드 핀처의 영화도 다 좋아하는데 최근에는 <나를 찾아줘>를 자주 보았던 것 같다. 꼼꼼하게 보니 새로 보이는 것들이 계속 나왔다.

아무래도 통제광이 맞는 것 같다. 두 영화 모두 엄격하게 재단된 영화 아닌가. 그런가 보다. 근데 이게 내 인생에 좋은 건지는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