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소연 <세계의 악당으로부터 나를 구하는 법>

“모든 자리에서 모든 사람들이 무언가를, 무엇이든 하고 있다고 믿어야 한다. 안 보여도 믿어야 한다. 뭔지 몰라도 문제가 있다면 그 문제에 ‘하는 일도 있는’ 사람, ‘지금까지 어디 가서 뭐 하다 온’ 사람이 있다고 믿어야 한다. 보이지 않으면 우선 내가 못 봐서라 생각하고, 둘째로도 그저 내가 몰라서라 생각하고, 보이지 않는 사람은 다른 곳에 가 있고, 보이지 않는 자리에는 다른 사람이 서 있다고 믿어야 한다. 이 믿음이 우리를 지탱한다고, 나는 믿는다._ <세계의 악당으로부터 나를 구하는 법>(은행나무) 중

소설 창작과 해외 SF 문학 작품을 번역하며 사회와 문화 전반의 경계에서 소외된 목소리를 대변해왔던 SF 작가이자 공익인권변호사인 정소연의 첫 에세이다. 칼럼, 수필, 해설 등 그간 다양한 지면을 통해 만날 수 있던 글들을 모은 이번 에세이는 삶의 현장에서 분투하는 이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그가 목도하고 경험한 차별과 혐오를 차분하게 되짚으며 극복하고 나아가야 할 방향을 그린다. 노동, 인권, 젠더 등 최근 2~3년간 한국 사회를 달군 이슈에 대한 날카로운 시각과 성찰이 빛을 낸다.

 

 

 

 

리베카 솔닛 <이것은 누구의 이야기인가>

“페미니즘은 길고 느리고 끈끈하게 진행되면서 사람들의 의식을 바꾸고 여성의 손에 힘을 쥐여주었다. 누가 이야기를 하고, 누가 판단하는지를 바꾸는 것은 곧 이 모든 것이 누구의 이야기인지를 바꾸는 것이다. 우리의 이야기들이 더 많은 사람들을 초대할 것이며 이 이야기는 우리를 더 너그럽고, 더 희망차고, 더 공감하는 사람으로 만들 것이다._<이것은 누구의 이야기인가>(창비) 중

리베카 솔닛이 2017년에서 2019년 사이 발표한 칼럼과 에세이 등을 엮은 책으로, 미투 운동, 문화계 젠더 문제, 미국 대선과 투표권 억압 문제, 민족주의, 임신중지법, 기후위기 등 시대의 현안을 날카롭게 포착한다. 우리 사회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변화가 거스를 수 없는 변화임을 말한다. 어떤 변화는 대대적인 전환을 이룩하며 성큼 다가오기도 하지만, 어떤 변화는 차별과 배제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는 것처럼, 심지어 때때로 후퇴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솔닛은 아무리 사소한 변화일지라도 그 작은 발걸음들이 만들어온 커다란 결과에 희망을 건다.

 

 

 

 

문유석 <최소한의 선의>

법이란 사람들 사이의 넘지 말아야 할 ‘최소한의 선線’인 동시에, 사람들이 서로에게 베풀어야 할 ‘최소한의 선善’이기도 하다. 이것이 문명 세계를 떠받들어온 기둥이다. 단순히 위반하면 안 되는 규칙이나 강제라는 의미로서가 아니다. 오랜 역사를 통해 인류가 발전시켜온 공통의 가치, ‘인간의 존엄성, 자유, 평등’을 보장하기 위한 수단이라는 의미에서 법은 문명 세계의 기둥이다. 그 기둥이 세계 도처에서 무너지는 듯한 공포를 느끼던 2020년 봄의 어느 날, 나는 법에 대해 뭐라도 써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_ <최소한의 선의>(문학동네) 중

전작 <개인주의자 선언>으로 한국의 집단주의 문화를 비판한 문유석 작가가, 한 사회의 개인들이 공유해야 할 가치들은 무엇일지 법학적 관점에서 경쾌하고도 예리하게 짚어보는 에세아다. 인류가 발전시켜온 공통의 권리선언이자 모두의 약속인 인간 존엄성과 자유, 평등이라는 헌법적 가치가 위협 받는 때. 급속한 과학기술 발전과 경기 침체로 막연한 불안감에 시달리는 시대. 지혜로운 공존을 위해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저자는 이야기한다.

 

 

 

 

김현우 <타인을 듣는 시간>

이해의 대상 ‘안으로’ 들어가서 대상의 위치에 서 보는 것이 이해다. 그것은 위치의 이동을 전제하는 행위이고 기존의 위치, 즉 나의 맥락을 벗어날 것을 요구한다. 이해란 머리나 마음이 아니라 행동으로, 몸으로 하는 것이다. 때로 그렇게 자리를 이동하고 나면 원래 내가 있던 자리로 돌아오지 못할 수도 있다. 이해한다는 것은 그만큼 어떤 의미에서는 위험한 행동이기도 하다. 그런 위험을 감수하지 않은 채, 자기가 앉은 자리에서 조금도 움직이지 않은 채 남발하는 이해가, 그런 이해를 바탕으로 전하는 이야기나 행동이 공허한 이유다. _<타인을 듣는 시간>(반비)

다큐멘터리 프로듀서인 저자가 공장 노동자, 트랜스젠더, 장애인, 학교폭력 가해자 등 다양한 타인들을 담은 다큐멘터리 제작 과정에 그간 저자가 읽어온 글을 인용하며 감상을 담은 서평기다. 조지 오웰의 르포부터 여행기, 참사 피해자 유족들이 쓴 투쟁의 기록, 구술생애사 등 다양한 작품들을 다루고 있다. 이 책은 나아가 ‘잘 듣기 위해’ 타인들의 현장을 찾아가 온 몸으로 부딪치고 경험하며 자신의 지평을 넓혀 가는 특별한 여행기이기도 하다. 타인의 삶과 그들의 삶을 담은 글들을 섬세히 읽으며 빚어낸 저자의 담백한 문장들이 마음에 오래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