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트 일렉트로닉 듀오 해파리 민희 혜원

노래하는 민희와 연주하는 혜원이 함께 음악을 만드는 얼트 일렉트로닉 듀오. 전통음악 중 종묘례제악이나 남창가곡 등 두 사람의 마음을 이끄는 장르를 활용한 일렉트로닉 음악을 선보인다. 제19회 한국대중음악상의 일렉트로닉 음반과 노래 부문에서 수상하며 정체성을 공고히 하는 중이다.

해파리의 음악을 단 한 문장으로 설명한다면? 혜원 한 문장으론 설명할 수 없다. 하하. 민희 대안적인 음악을 찾아가는 중이다. 얼트 일렉트로닉이라고 하지만 정확하게 어떤 장르에 방점을 찍을지는 아직 모르겠다. 일단 우리가 좋아하는 여러 음악들, 테크노와 앰비언트 그리고 전통음악의 한 장르인 종묘제례악과 남창가곡 등이 가진 특징을 모아 우리가 할 수 있는 방식으로 가지고 놀며 음악을 만들고 있다.

해파리라는 팀 이름에는 어떤 뜻이 담겨 있나? 민희 별 뜻은 없다. 예전에 본 살아있는 해파리가 너무 예뻐서 언젠가 팀 활동을 하게 되면 그 이름은 해파리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혜원과 팀이 되었을 때 그 얘기를 했더니, 놀라면서 자신의 별명이 ‘혜팔이’라는 거다. ‘이건 운명이다’ 하면서 바로 낙점했다.

해파리라 읽고, HAEPAARY라 쓴다. 혜원 철저하게 계획적으로 만들었다. 한글로 해파리를 검색하면 해파리냉채를 이길 수 없으니.(웃음)

이 음악을 일렉트로닉으로 받아들이는 이도 있지만, 국악이라 말하는 사람도 있다. 민희 일단 다 떠나서 개인적으로 국악이라는 규정 자체에 거부감이 있다. 이를테면 백인 남성은 ‘사람’이라 하고, 한국 여성은 ‘아시아 여성’이라 말하며 굳이 태그를 붙이는 것 같은 느낌이랄까. 그냥 우리는 음악의 범주 안에서 어떤 것들을 만들어낼 뿐이다. 혜원 BTS가 대취타를 가지고 음악을 만들었을 때, 그건 K-팝이지 국악이라 부르진 않는다. 그러니까 우리가 일렉트로닉 장르라고 하는데, 그걸 국악이라고 할 필요는 없는 거다. 그럼에도 이 말을 이해하는 분들은 ‘이런 음악도 있구나’ 하고 받아들여주고, 누군가는 여전히 ‘이건 국악이야’라고 말한다. 민희 어떻게 보면 우리의 음악은 편견에 대한 저항이라고도 할 수 있다.

편견을 부수는 건 분명 어려운 일이지만, 한편으론 그만의 희열도 있을 것 같다. 이 음악만의 즐거움 말이다. 혜원 쾌감은 있다. 이 좋은 걸 왜 아무도 안 했지, 빨리 선점해야겠다 하는 마음.(웃음) 민희 전통음악의 장르를 활용할 때 우리는 이를 성스럽게 대하지 않는다. ‘우리가 아는 거고 좋아하니까, 그럼 가지고 놀지 뭐’ 이런 태도다. 사실 이건 우리끼리 생각한 거니까 품고만 있어도 되긴 하는데, 일부러 말하고 다닌다. 들으라고. 혜원 종묘제례악을 보면 절차가 복잡하고 지켜야 할 것들이 많은데 그렇게만 하고 듣다 보면, 그렇게밖에 들을 수 없다. ‘편견을 부수기로 했으니 우리 안의 편견도 버리고 만들어보자’라는 말을 공공연히 하고 다닌다.

애써 국악을 벗어나려 하지도 않고, 반대로 막중한 책임감을 가지는 쪽도 아닌 것 같다. 국악에 대한 해파리의 시선과 태도는 어느 방향을 향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혜원 지난한 과정이 있었다. 그야말로 국뽕에 가득 찬 때도 있고, 아예 국악을 안 하겠다면서 완전 다른 비트를 만든 적도 있다. 그걸 다 지나고 보니 결국 내 안에 이런 음악도 있고, 저런 음악도 있다는 걸 알게 됐다. 지금은 정확하게 규정하기보다 자연스럽게 내 안의 것을 배출해내는 과정이다. 민희 혜원과 작업하는 게 좋았던 이유 중 하나가 우리 둘 다 전통음악을 공부했고, 시간이 많이 지났고, 그래서 그게 너무 좋지도 싫지도 않고 그냥 바라보는 게 가능한 상태라는 거였다. 실은 여전히 너무 싫을 때가 있다. 음악 자체가 아니라 그걸 함으로써 받는 원치 않는 시선에서 벗어나고 싶을 때가 훨씬 많았다. 그럼에도 내 언어를 긍정하려 한다. 편견과 콤플렉스가 없는 채로 음악 하고 싶으니까.

심적으로 어떤 경지에 이른 것 같아 보인다. 혜원 왔다 갔다 하다 보면 ‘그냥 다 모르겠고 그냥 할래’ 이런 상태가 된다.(웃음) 시간이 흘렀기에 가능한 일인 듯하다. 더 어릴 때라면 이렇게 파괴해도 되는 건지, 그에 따라 어떤 시선을 받을지에 대해 생각할 수도 있는데 이제는 다 벗어나게 됐다. 다만 그 안에서 지키고 싶은 건 지키면서 한다. 이런 식이다. 알지만 다르게 하는 것과 몰라서 엉망으로 하는 건 다르다. 그러니까 ‘나는 아는데 그냥 이렇게 하고 싶어’라는 거다.

 

 

얼트 일렉트로닉 듀오 해파리 민희 혜원

전통음악의 다양한 장르 중 종묘제례악과 남창가곡을 활용해 일렉트로닉 음악을 만들었다. 두 장르에 매료된 이유는 무엇인가? 민희 종묘제례악에서 내가 재미있게 생각한 지점은 사물의 물성이 잘 들리는 부분이었다. 돌, 종, 쇠, 나무 등의 소리가 매력적으로 들렸다. 또 특정한 리듬 패턴이 보이지 않는 점도 좋았고. 혜원 나에겐 미니멀함이 매력이었다. 그리고 남창가곡을 택한 건 일종의 반항심이었다. 민희 가곡이라는 장르 안에 여창과 남창이 있는데, 나는 여자니까 여창가곡을 전공했다. 그런데 배우면서도 기교가 많고 화려한 여창가곡에 비해 남창가곡은 타인에게 잘 보일 의지 없이 자기 자신을 위한 노래같은, 좀 다른 태도에 마음이 끌렸다. ‘되게 편해 보이네. 나도 좀 편하면 안 돼?’ 하는 생각이 있었다. 실제로 남창가곡을 활용한 예시가 거의 없고, 그럼 우리가 가져와보자 한 거다. 더 솔직히 말하면 남창가곡 전공자들이 게으르니 그냥 뺏어 오자 한 거다. 혜원 남창가곡 전공자는 그 수에 비해 항상 자리가 넉넉해서 하던 대로만 해도 된다. 반대로 여창가곡은 전공자의 수도 많거니와 자리도 적어서 늘 뭔가를 시도하려는 노력이 수없이 이어진다. 민희 계속 실패하고 실패해도 또 본인이 할 수 있는 뭔가를 시도한다. 혜원 그런데 여창 가객들이 남창가곡을 가져올 생각은 못 한다. 민희 완전히 장르가 다르다고 여기는 거다. ‘할 수 없는 거니까’라면서 애초에 옵션으로 두지 않는.

음악에도, 음악을 대하는 태도에도 반항심이 다분해 보인다. 민희 매우 그렇다.(웃음) 혜원 청개구리다. 하면 안 돼? 그럼 해야지.

두 사람은 어떤 것들을 좋아하나? 어떤 취향이 모여서 이런 음악이 탄생한 건지 궁금하다. 혜원 나는 음악으로 치자면 테크노, 계절은 여름, 그리고 서핑을 좋아한다. 무드는 미니멀하고 다크한 걸 선호하고. 민희 나는 저항과 반항의 모든 것. 하하. 음악도 포스트펑크를 좋아하고, 작업해온 퍼포먼스 아트도 장르 밖의 것, 이를테면 형식을 실험하는 일들을 했다. 공연을 관람할 때 뭘 봐야 할지 모르겠고 룰이 없는, 시스템에 반대하는 것들을 해왔다. 패션도 그런 걸 좋아한다. 레이 가와쿠보 같은. 혜원 민희 언니는 명확하지 않은 것을 좋아하는 취향 안에 명확한 포인트가 있고, 나는 되게 명확한 걸 좋아하는데 그 안에 어떤 모호한 지점이 있다. 그게 우리의 교집합이다.

음악을 하는 과정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지점은 무엇인가? 민희 국악 팔아먹는 짓은 안 하는 것. 어설프게 예술인 척하지만 예술성은 떨어지고, 엔터테인먼트로 기능하지도 않으면서 전통음악이라는 키워드를 팔아먹는 행사 같은 거. 특히 국뽕 같은 것엔 절대 기대지 않는다. 혜원 어릴 때 ‘선생님이 불러서 해야 해’라든지, ‘이건 너한테 좋은 거야’라는 식의 공연을 많이 해왔기 때문에 대중음악적 태도로 작업하기로 마음먹은 이후론 일에 금전적 대우를 받지 않는 건 안 한다. 반대로 천원을 받아도 돈 버는 일로 여기고 해나간다. 민희 대중음악가로서 생업을 유지하고 싶다는 큰 소망이 있다.

코로나19 시국에 탄생한 팀이라 무대가 없는 상태에서 활동해오다 이제야 무대에 오르기 시작했다. 해파리가 원하는 궁극의 무대는 어떤 모습인가? 민희 7월 8일에 바 겸 공연장 스트레인지프룻 17주년 기념 공연에 참여하게 됐다. 어릴 때 단골이었던 터라 뭔가 금의환향하는 기분이다. 그것만으로도 일단 작은 꿈 하나를 이룬 것 같다. 혜원 공연을 많이 하고 싶다. 특히 페스티벌에 우리가 막 내던져진 채로 하는 무대를 해보고 싶다.

해파리의 음악을 듣는 룰은 아마 없을 거다. 그렇지만 이 음악의 존재 방식에 대해 바라는 점은 있을 것 같다. 혜원 우리는 고민을 엄청 많이 하고 음악을 만들어도 듣는 사람들은 그렇게 안 들었으면 좋겠다. 우리가 하는 장르가 어려울 수는 있는데, 그래도 좀 쉽게 받아들이고 즐겼으면 좋겠다. 민희 시대와 사회상에 따라 지금은 낯설게 느껴질지 모르지만, 언젠가 ‘one of them’이 되어 존재하고 싶다. 인기가 없더라도 그 세계에 존재하는 음악, 소수의 상식인 음악이면 좋겠다. 색다르고 특별한 게 아니라 그냥 평범한 음악가가 될 때까지 버티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