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10월 프리즈 서울의 디렉터로 선임된 이후 아트 신 내에서 누구보다 바쁘고 활발한 시간을 보내는 중일 것 같습니다. 아트 페어의 디렉터는 처음이라 계속 배우면서 해나가는 중입니다. 디렉터가 된 이후 가장 먼저 한 일은 갤러리를 선정하는 커미티(위원회)와의 대화였어요. 첫 아시아 진출이니 어떤 갤러리를 어떤 식으로 구성할지가 가장 중요하다는 생각이었어요. 물론 최종 선정은 커미티 고유의 몫이지만요. 작년 겨울엔 프리즈 서울에 관심이 있는 갤러리와 미팅을 가졌고, 봄부터 본격적인 갤러리 선정과 페어가 펼쳐질 코엑스에서의 계획을 구상하는 논의가 이뤄졌어요. 프리즈 서울의 개막이 보다 가까워진 여름에는 다양한 프로그램이나 이벤트를 구상하고, 이를 위해 서울에 있는 기관들과의 소통을 이어나가는 중입니다. 계절이 어떻게 흘렀는지 체감하지 못할 정도로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어요.

지난 1년간 준비 과정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지점은 무엇이었나요? 런던, LA, 뉴욕 등 모든 프리즈의 아트 페어는 각기 다른 특징과 매력이 있어요. 물론 최상의 퀄리티로 다양한 작품을 선보인다는 공통점은 있지만, 각 도시의 특징을 반영하면서 자연스럽게 발현되는 독창성이 있거든요. 프리즈는 아트뿐만 아니라 미식, 음악, 영화, 건축 등 사람들이 보다 다양한 방식으로 그 도시를 감상하도록 장을 만드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죠. 그래서 프리즈 서울 역시 서울이라는 도시를 제대로 소개하는 플랫폼이 되고자 하는 목표가 있어요. 이번 페어를 통해 난생처음 서울을 방문하는 사람도 많을 것 같아요. 그들에게 서울이 굉장히 즐겁고 흥미로운 곳으로 각인되길 바라거든요.

그 바람을 담은 기획 중 하나가 프리즈 위크(FRIEZE WEEK)일까요? 프리즈 서울이 시작되기 전인 8월 29일부터 한 주간 진행되는 모든 문화 이벤트를 ‘프리즈 위크’라 명명했어요. 페어장인 코엑스를 포함해 서울 곳곳에서 다양한 이벤트가 벌어질 거예요. 키아프와 함께 진행하는 ‘프리즈 키아프 토크’, 패션 브랜드와 함께 여는 파티, 또 삼청동이나 한남동 갤러리 몇 곳은 운영 시간을 연장해 저녁이나 밤에 전시를 즐기는 이벤트 등을 계획하고 있어요. 아트를 기반으로 한 축제의 장을 만들고자 하는 거죠.

시각미술에 대한 진입장벽을 낮추고 다양하게 즐길 수 있는 장을 마련하는 것 역시 아트 페어의 역할이라 보는 거겠죠. 아트도 중요하지만, 페어가 펼쳐지는 도시를 보여주며 그 도시와 관계를 맺는 것 역시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어떤 도시를 선택하느냐가 페어의 특성을 결정하는 데에 큰 영향을 미치고요.

그런 의미에서 프리즈가 서울을 택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프리즈는 꽤 오래전부터 아시아 진출을 고려했고, 여러 후보지 중 서울은 늘 우선순위에 있던 도시였습니다. 누군가는 서울의 아트 신에 대해 단기간에 가파르게 발전했다고 말하지만, 사실 서울은 아주 오래전부터 탄탄하게 성장을 거듭해온 도시예요. 포스트, 아방가르드, 컨템퍼러리 등 다양한 장르에서 수준 높은 작품들이 탄생하고 있는데다 컬렉터들의 수준도 굉장히 높은 편이고요. 특히 최근 젊은 세대까지 아트를 향유하고 즐기는 층이 넓어지고 있는 현상도 눈길이 가는 지점 중 하나였어요. 이런 이유로 서울을 선택하는 과정에서 키아프 서울과 대화를 나눌 수 있었고, 이곳을 더 흥미로운 도시로 만들자는 생각을 공유하며 공동 개최까지 결정하게 되었어요.

키아프 서울과의 협업은 올해 프리즈 서울이 주목받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입니다. 키아프는 프리즈가 서울이라는 도시를 이해하고 접근하는 로컬라이즈 과정에서 도움을 주고, 프리즈는 키아프가 국제적인 페어로 입지를 넓히는 데에 나름의 노하우를 전하며 서로 좋은 공생 관계를 쌓고 있다고 생각해요. 관람객에겐 공동 티켓이라는 유례없는 방식을 통해 더 풍요로운 경험을 선사할 수 있을 테고요. 우선은 페어에 집중하고 있지만 이후에도 계속해서 여러 방식으로 협업하며 서로 발전을 도모하고자 하는 바람이 있어요.

올해 프리즈 서울은 세 가지 섹션으로 구성되었어요. 그 중 신설된 ‘포커스 아시아’의 주목도가 높습니다. 이 섹션은 아시아의 젊은 갤러리에게 기회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두고 있어요. 실제로 작은 갤러리도 부담 없이 참여할 수 있도록 부스비를 낮췄고요. 이를 통해 관람객에게도 다른 두 섹션에서는 볼 수 없던 색다른 작품을 만날 수 있는 기회가 될 거라 생각해요. 지금 아시아 아트 신의 흐름이나 비전을 엿보는 즐거움도 있을 거고요.

그리고 프리즈를 대표하는 메인 섹션과 프리즈 마스터스 섹션이 구성되어 있습니다. 프리즈 마스터스 섹션은 앤티크나 오래된 지도, 책 등의 컬렉션을 마련했어요. 디렉터인 네이선 클레멘트-길레스피(Nathan Clements-Gillespie)가 구성을 다채롭게 하는 데에 집중한 섹션입니다. 한국 갤러리의 참여도 놓치지 않아줬으면 하는 부분이고요. 메인 섹션은 말 그대로 프리즈의 중심이 되는, 가장 다양한 갤러리와 작품을 만날 수 있는 섹션이에요. 뉴욕의 가고시안과 글래드 스톤, 런던의 화이트 큐브와 하우저 앤 워스, 베를린의 에스더 쉬퍼 등 세계 유수 갤러리의 작품들을 한자리에 모았습니다.

구성에 있어서 아시아 갤러리의 참여 비율을 고려한 부분도 있나요? 아시아 갤러리의 참여를 권장하긴 했지만 선정 과정에서 분포도를 의도적으로 계획하진 않았어요. 지금 결과를 보니 전체 구성 중 약 25%가 아시아 갤러리로 이뤄져 있어요. 팬데믹으로 인해 참여 여부의 유동성이 커지면서 처음 생각보다는 약간 적은 수치가 되었다 보고 있어요. 내년이나 내후년부터는 아시아 갤러리의 참여가 더 많아지지 않을까 기대하는 부분이 있어요.

프리즈 서울의 디렉터로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역할은 무엇인가요? 갤러리스트, 큐레이터, 컬렉터, 관람객 등 페어를 구성하는 이들의 세계를 소개하고 의미 있는 연결을 해주는 게 디렉터의 주요 역할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그들이 바라는 점에 대해 계속해서 고민하는 중이에요. 갤러리 외에도 더 많은 기관과 소통하면서 서울 안에서 아트를 기반으로 한 새로운 관계들을 만들고 싶거든요. 단순히 작품을 판매하거나 구매하는 것을 넘어 왜 이토록 많은 사람들이 서울에서 일어나는 페어에 오는지에 대해 고민하고 그것에 대한 의미를 찾아나가는 것이 목표이기도 해요.

세계 아트 신이 빠르게 변화하고 있습니다. 아트 신에 머물며 감지하는 최근의 흐름이나 변화는 무엇인가요?
정보 교환의 속도가 굉장히 빨라지면서 각광받는 나라나 도시의 범주가 다양해지고 있어요. 예전에는 유럽이나 미국 시장이 아트 신을 주도했다면, 이제는 그 외의 나라에서 주목받는 작가나 큐레이터가 빈번히 등장하고 있어요. 흑인 작가들의 인기가 올라가는 것 또한 이런 흐름 중 하나라 생각해요. 최근 독일 ‘카셀 도큐멘타’의 큐레이터로 인도네시아 출신의 아티스트 콜렉티브 ‘루앙루파’가 선정된 것도 화제가 되었어요. 이는 더 이상 아트 신은 특정 국가나 인종이 주도하지 않는다는 반증인 것 같아요.

이런 흐름에 프리즈 서울이 하나의 방향이 될 수 있겠네요. 그렇죠. 아트 페어라는 것 자체가 지금의 흐름을 반영하는 동시에 새로운 방향을 만들어내는 플랫폼이니까요. 프리즈 서울을 통해 보다 많은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작가들이 더 다양한 나라에 소개되길 바라고, 계속해서 아트 신이 확장되는 데에 프리즈 서울이 긍정적인 역할을 해나가길 꿈꾸고 있습니다.

프리즈 서울을 가야 하는 또 하나의 이유를 찾은 것 같아요. 지금의 아트 신을 한 장의 스냅샷으로 남기는 경험이 될 거예요. 미술사를 배울 수 있는 이전 세기의 작품들부터 지금 가장 저명한 갤러리의 컬렉션, 젊은 작가들의 새로운 작품까지 구성은 다채롭지만 이 모든 것이 결국은 ‘지금’의 현상을 모은 것이라 생각해요. 현상을 체감하는 즐거움이 있을 거라 장담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