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드라마 <지금 우리 학교는>

<지금 우리 학교는> 속 ‘남라’ 현장 사진

 

“관객이 저와 저희 팀원이 만든
작업물을
미처 알아채지 못하고
지나칠 때 가장 큰 희열을 느끼죠.

진짜보다 더 진짜처럼
만든 거니까요.”

 


한창 특수분장 중인 작업실 시체 분장 더미를 안고 가는 모습

 

<마리끌레르> 독자들에게 간단히 자기소개를 부탁합니다. 영화부터 드라마, 광고까지 다양한 영상 작업에서 특수 분장과 특수 소품을 담당하는 피대성입니다.

작품에서 특수 분장의 영역은 정확하게 어디까지인가요? 일반적으로 극 중 캐릭터가 직접 구현할 수 없는 장면에 필요한 것들을 제작하는 일을 하고 있어요. 배우보다 몸집이 큰 인물이나 나이가 많은 노인으로 분장하거나 특정 상처가 있는 인조 피부를 제작하는 일이 기본이고요. 실제로 출연하기 힘든 동물이나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크리처를 만들기도 하고, 액션물을 촬영할 땐 안전하게 배우가 안전하게 촬영할 수 있는 장치를 제작하는 일도 합니다.

앞서 특수 소품도 담당한다고 말씀하셨는데, 특수 소품은 일반 소품과 어떻게 다른가요? 기성품을 쓸 수 없어 제작하는 소품을 특수 소품으로 분류해요. 예를 들어 영화 <승리호> 같은 SF물에 들어가는 소품은 모두 별도로 제작한 특수 소품이죠. 사실 특수 소품의 영역은 굉장히 유동적이에요. 작품의 성격에 따라 기준이 달라지거든요. 그래서 작품 촬영에 들어가지 전에 연출 팀뿐 아니라 미술 팀과 긴밀한 논의를 거쳐 카테고리를 분류하는 과정이 필요해요.

올해 최고의 화제작인 드라마 <지금 우리 학교는>을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어요. 실감 나는 좀비 특수 분장으로 몰입도를 한층 끌어올렸죠. 이때 가장 신경 써서 작업한 부분은 어떤 점인가요? 일단 연출하신 이재규, 김남수 감독님과 굉장히 오랫동안 논의했어요. 좀비가 등장하는 장면에서 특수 분장을 잘했다는 느낌을 주려 하기보다 캐릭터가 극의 서사에 튀지 않고 잘 스며들 수 있도록 하려고 노력했어요. 연출과 특수 분장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중간 지점을 찾는 것이 큰 숙제였죠. 그 안에서도 다른 좀비물과 뚜렷이 구별되도록 하기 위해 바이러스에 감염돼 좀비가 되는 과정에 집중했어요. 좀비의 역사는 물론 근원까지 거슬러 올라가 공부했죠. 바이러스로 인해 테스토스테론이 과도하게 분비되어 서서히 폭력적으로 변해가는 아이들이라는 스토리에 맞춰 눈의 터진 핏줄이나 피부의 질감 등이 시간이 흐를수록 변하는 모습을 보여주려고 노력했어요. 마치 감염병에 걸린 것처럼요.

<지금 우리 학교는>에서 좀비마다 생김새와 특징이 다른 것도 흥미로운 지점이에요. 작업하신 좀비 중 특별히 애착이 가는 캐릭터가 있나요? 사실 극에 등장하는 모든 캐릭터의 스토리에 맞춰 공들여 작업했기 때문에 어느 캐릭터 하나를 콕 집어 애착이 간다고 말하긴 어려워요. 애착이라기보다는 취향이라고 할까요? 그런 건 있는 것 같아요. 특수 분장 팀의 좀비 취향(?)이 제각기 다르거든요.(웃음) 저는 극 중 1부 엔딩에 등장하는 좀비처럼 확실하게 임팩트를 주는 스타일을 좋아해요. 등장만으로도 압도되는 느낌이랄까요? 이에 반해 같이 작업한 저희 팀원 중에는 서서히 변해가는 스타일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어요. 이를테면 배우 조이현 씨가 연기한 ‘남라’처럼요.

좀비물 이외에도 다양한 작품과 장르에 참여하셨어요. 익숙한 가운데서도 새로운 경험을 많이 하셨을 텐데, 작품마다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많을 것 같아요. 맞아요. 감사하게도 다양한 장르를 접할 수 있었고, 그 덕분에 저도 도전하는 마음으로 매번 작품에 임했어요. 그 과정에서 자연스레 캐릭터에 애정도 생겼고요. 영화 <미스터 주>에서는 실사와 동일한 사이즈의 판다 퍼펫을 만들어야 했어요. 퍼펫을 작업하는 건 처음이라 부담이 되기도 했지만 귀한 경험이었죠. <승리호>는 앞서 말했듯이 특수 소품의 영역이어서 말 그대로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작업이었어요. 특정 레퍼런스를 참고하는 것이 사실상 어려웠고요. 그래서 3D 프로그램을 이용해 끊임없이 모델링을 해 시뮬레이션했죠. 영화 <창궐>은 제가 처음으로 맡은 좀비물이었어요. 시대극이라 좀비라는 단어를 쓰지 않고 밤에 활동한다고 해서 ‘야귀’라고 불렀는데, 촬영을 주로 밤에 해 핏줄이나 상처가 잘 보이지 않더라고요. 그래서 인조 피부에 과감하게 볼륨감을 주는 방식으로 대안을 마련했죠.

 

 

한창 특수분장 중인 작업실

더미 성형을 위한 재료

 

사실 촬영은 꼼꼼하게 준비해도 늘 변수가 생기기 마련이에요. 특수 분장은 제작이 끝난 상황이라 현장에서 세심하게 수정하기 어려울 것 같아요. 그래서 여분의 더미를 많이 준비해요. 물론 여건상 많은 양은 아니지만, 한 번에 OK가 나지 않는 경우에 대비해야 하니까요. 그래서 촬영에 들어가기 전에 내부적으로 테스트를 많이 해보는 편이에요. 예를 들어 팔을 자르는 장면이라면, 부분 더미 실리콘에서 어떻게 잘리는 것이 효과적인지, 피가 어느 방향으로 튀어야 NG가 덜 날지 그간의 데이터베이스를 바탕으로 계속 시뮬레이션을 해보는 거죠. 저희로서는 변수가 생기기 전에 대처할 방안을 마련하는 것이 최선이거든요.

다양한 작품을 진행하면서 가장 희열을 느끼는 순간은 언제인가요? 사실 작품마다 조금씩 다른데, 공통점을 찾자면 관객을 완벽하게 속였을 때예요. 제가 구현하는 것은 허구잖아요. 그런데 그것을 ‘진짜처럼 잘 만들었다’라는 피드백을 받으면 실패한 것처럼 느껴져요. 관객이 저와 저희 팀원이 만든 작업물을 모르고 지나칠 때 가장 큰 희열을 느끼죠. 진짜보다 진짜처럼 만든 거니까요.

작업할 때 특정 이미지나 레퍼런스를 참고하는 편인가요? 기본적으로 사실에 근거한 자료를 많이 찾아서 살펴보는 편이에요. 부검하는 장면이나 상처가 심한 피부, 피부의 절단된 면 등 실제 자료나 이미지를 직접 보고 구현하려고 노력하죠. 작업하면서 느낀 점인데, 진짜가 오히려 가짜 같을 때도 많더라고요. 뇌를 자른 단면의 색이나 시체가 아주 오랫동안 부패하면 어떤 색을 띠는지 실제로 접한 사람은 많지 않잖아요. 이런 경우에 실제 레퍼런스가 오히려 가짜 같은 경우가 있어요. 그럴 땐 극적 몰입도를 높이기 위해 디자인이나 색을 살짝 조율해서 작업해요.

이미 모든 장르를 섭렵하신 것 같아요. 앞으로 더 도전하고 싶은 영역이 있나요? 신기하게도 이만큼 다양한 장르를 경험했으니 다음에는 수월하겠구나 싶은데 그렇지 않아요. 매번 할 때마다 해당 프로젝트의 숙제는 언제나 새롭더라고요. 그래서 콕 집어서 해보고 싶은 영역을 정하기보다 주어진 작품 내의 미션을 완수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싶어요. 굳이 꼽자면 크리처에 호기심이 있어요. 명확한 레퍼런스를 찾기 어렵기 때문에 대부분 실재하는 여러 가지를 조합해서 만드는데, 세상에 없던 이미지를 만들어냈다는 보람이 커요.

매번 도전하는 마음으로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만큼, 고된 순간도 무척 많을 것 같아요.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것을 실제처럼 만드는 작업이다보니 한계에 부딪힐 때가 많아요. 아무리 좋은 재료로 만들어도 진짜 피부의 연성 같은 건 따라가지 못하니까요. 매번 고민하고 애써도 욕심만큼 나오지 않을 때가 많죠. 또 하나는 시간과 물리적 제한이에요. 저희 팀은 촬영 시작 몇 시간 전에 미리 도착해서 세팅해야 하거든요. 밤을 새우고 작업물을 만들어 숨 돌릴 틈도 없이 촬영장으로 가야 하고, 촬영이 끝난 후에는 마무리 작업까지 마쳐야 하기 때문에 팀원들에게 미안한 때가 많아요.

<마리끌레르> 10월호의 주제는 영화입니다. 특수 분장 팀으로서 느끼는 ‘영화적인 순간’은 언제인가요? 영화를 포함한 모든 작품에서 어느 하나 중요하지 않은 팀은 없잖아요. 여러 분야 전문가들이 머리를 맞대고 함께 고민하는 과정인데, 그 안에서 맺는 유기적 관계가 굉장히 특별하게 느껴져요. 혼자만 잘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협업해 하나의 결과물을 만드는 과정 자체가 영화적인 순간이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