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ANG OONG KI
강웅기

강웅기는 서울대학교 미술대학과 동 대학원에서 금속공예를 전공했다. 은을 주재료로 주전자, 그릇, 수저 등의 기물을 만드는 공예가이다. 대표작인 은주전자로 2009년 ‘제33회 필라델피아 크래프트쇼’에서 금속 부문 작가상을 받았다. 실용성과 심미성의 균형을 갖춘 공예 작품으로 일상을 보다 예술적으로 만드는 데에 기여하고 있다. 인사동 가나아트스페이스, 갤러리 로얄, 명보랑,아름지기, 예올 등의 전시에 참여한 바 있다.

‘낯설게 보기_22p’ 시리즈, 2022, 스테인리스스틸, 켄트지, 한지, led, 350x120x55 mm (각)

‘BambooⅡ’(주전자와 워머), 2006, 은(925), 오죽(烏竹), 구리(워머), 주전자 210x110x100 mm, 워머ø100x65mm

새로운 미감을 보여주는 은 주전자로 많은 주목을 받았다. 관람객 혹은 사용자의 입장에서는 완성된 결과물밖에 볼 수 없다는 사실이 아쉬울 때가 많은데, 하나의 기물을 만드는 과정을 설명해준다면? 평소 은 주전자를 만드는 과정을 압축해 설명해보겠다. 우선, 작업을 구상하는 단계에서는 스케치도 하지만 손으로 모델링하며 직접 작업을 해보면서 아이디어를 얻는 경우가 많다. 모델링 후에 문제점을 보완해 작업을 도면에 옮기고 구체적인 방법과 순서를 정한다. 주로 망치, 모루 같은 도구를 쓰는 판금 작업으로 몸통부터 만들고 물대, 손잡이, 뚜껑 등 부속품을 제작해 조립한다. 마지막으로 표면을 처리해 완성한다. 아주 간단하게 설명했지만, 실제 작업 과정은 상당히 격렬하다.(웃음)

은과 나무 등 즐겨 사용하는 재료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싶다. 대학에서 공예과에 진학했더니 세부 전공으로 금속공예와 도자공예가 있었다. 성격이나 손이 금속과 더 잘 맞는 것 같아 금속공예를 선택했다. 대학 시절부터 주전자라는 기물에 관심을 가졌고, 금속공예에서는 주전자를 만들 때 주로 은을 쓴다. 흙, 섬유, 나무 등 재료의 물성이 다 다르듯 금속 중에서도 은이 갖는 고유한 특성이 있다. 단단함과 부드러움을 동시에 표현할 수 있는 재료라는 점에 가장 큰 매력을 느끼고, 이런 성질을 표현하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손잡이 부분에 쓰는 나무는 기능적인 이유가 크다. 손에 닿는 부분이니만큼 오염이나 열을 피하기 위해 금속이 아닌 재료여야 하고, 나무에 단열 기능이 있기 때문이다. 전통적으로 금속 주전자에는 손잡이에 나무나 상아를 많이 썼다. 계속 나무를 깎고 다듬는 동안 금속과 또 다른 매력을 발견했고, 목공방에서 1년 정도 배우며 가구를 만들기도 했다. 금속을 자르고 성형하고 다듬는 데 들이는 엄청난 힘과 반복적인 작업에 비해 나무를 자르고 다듬을 때는 마음이 평온해진다.

기물을 만들 때 ‘쓰임’이나 ‘기능’은 어느 정도 염두에 두나? 미적 요소와 기능적 요소의 조화를 찾는 방식이 있다면? 공예계의 해묵은 논쟁이자 여전히 해결되지 않는 주제 중 하나가 ‘쓰임’인 것 같다. 이전에는 기능과 미적 표현 사이에서 많이 고민했지만 지금은 그러지 않는다. 주전자를 제작할 때는 공예가라는 정체성을 더 깊이 생각한다. 주전자가 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토대를 다져놓은 후 형태와 비례를 변형하며 작업을 구상한다. 물론 사용하기 편한 주전자를 만드는 것이 목표는 아니다. 오늘날 우리가 만드는 주전자에는 기능 그 이상의 의미도 담을 수 있다고 본다. 소장자들 또한 내 주전자를 쓰려고 구매하지는 않는 것 같다.(웃음)

그렇다면 기물의 미적인 면을 위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요소는 무엇인가? 금속공예에서 주전자는 일단 ‘기능적’으로 상당히 많은 요소를 고려해야 한다. 이러한 요소들이 형태와 조화를 이뤄야 하므로 자연스럽게 가장 염두에 두는 것은 형태다. 비례 또한 형태와 함께 고민해야 하는 부분이다. 은 주전자 작업을 오래 하다 보니 색채에 관한 고민은 상대적으로 덜하다. 은이라는 재료가 색을 다양하게 표현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게 색에 대한 감각이 무뎌져서 그런지 다른 작업을 할 때도 색에는 신경을 덜 쓰게 된다.

만족스러운 작업을 결정짓는 본인만의 기준이 있다면? 한 가지 기준만 있는 것은 아니다. 작품의 구상부터 아이디어를 풀어가는 과정, 작업을 진행하면서 느끼는 것들이 최종 결과물에 투영된다. 이런 여러 요소가 복합적으로 어우러져야 한다. 재미있는 건 전시나 구매를 통해 내 작품을 접하는 다른 사람들의 평가는 내 느낌과 다를 때도 많다.

작품을 볼 때마다 그것이 태어난 공간을 상상한다. 작업하는 공간의 풍경은 어떤 모습인가? 아주 넓거나 멋진 작업실은 아니다. 거주하는 아파트 단지 상가 1층의 한 칸을 작업실로 쓴다. 오른쪽은 벽으로 막혀 있고, 왼쪽에 무인 판매 아이스크림 매장, 앞은 도로, 뒤로 세탁소와 마주한 복도, 위층에는 교회가 있다. 마음껏 망치질하고 음악을 크게 틀어도 상관없는 공간이다. 무엇보다 집에서 도보로 2분 거리라 조금 비좁은 것 빼고는 내게 최적의 작업실이다. 음악은 항상 조금 크게 틀어놓는데, 기분이나 일에 따라 음악 장르도 다양하게 바꾼다. 원래 인테리어 매장 자리였던 터라 조명이 좀 많다. 그 점이 좋아서 전부 켜고 밝게 지낸다. 금속 냄새는 전혀 맡을 수 없다. 은으로 하는 작업은 기계로 갈아서 하는 공정이 드물다. 그래서 금이나 은 작업을 하는 공간은 깨끗한 편이다. 가루까지 다 모아서 써야 할 정도니까.(웃음)

이번 전시 <유연한 공존>에 참여하게 된 계기가 있다면? 원래 다작하지는 않았지만 오랫동안 작업하다 보니 정신적 긴장감이 많이 떨어진 것 같다. 반복적인 작업에 매너리즘에 빠졌다고 할까. 기능을 배제한 조형 작업을 해봐야겠다는 막연한 생각을 하던 차에 이번 전시를 기획한 FLOW의 이성희 큐레이터와 대화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새로운 것을 보여주기 위해 익숙하지 않은 작업을 해야 한다는 두려움도 있었으나 깨지더라도 조금 더 젊을 때 깨져야겠다는 생각으로 전시에 참여하기로 했다.

‘Cake Stand’, 2018, 황동, 옻칠, 호두나무, (from top to bottom) ø240x45mm, ø200x170mm, ø160x285mm

Bamboo IV’ (술을 위한 주전자와 잔), 2007, 은(925), 향나무, 주전자 210x130x150 mm,잔 ø65×40 mm, Philadelphia Museum of Art 소장

<유연한 공존> 전시에서 소개하는 작품은 전작인 주전자, 잔 등의 기물과 완전히 다르다. 새로운 도전을 통해 무엇을 보여주고 싶었나? 조명을 설치한다. 하지만 조명이라는 오브제가 목적은 아니다. 주요 목표는 형태를 탐구하며, 그것을 다루는 새로운 시도를 하는 것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는 형태를 보여주는 방식도 보는 이들이 형태를 느끼게 하는 요소 중 하나일 거라는 생각을 실험해보고자 했다. 이번 전시를 출발점으로 삼아 앞으로 차츰 더 멀리 나아갈 예정이다.

전시를 위해 ‘낯선 기억들’이라는 주제를 잡았다. 추상적인 기억이 어떤 과정을 거쳐 구체적인 사물로 거듭날 수 있었나? 전시에서 소개하는 작업은 ‘눈’의 형태에서 착안했다. 기억은 어쨌든 눈을 통해 시작되는 것이 많지 않은가. 눈으로 담은 기억이 머리나 마음속에 저장되었다가 우연히 눈으로 그것을 환기하는 것들을 다시 접하면, 오래된 기억들이 기억의 수면 위로 올라와 묘한 감정을 불러일으킬 때가 많다. 청각, 후각, 미각 등 다른 감각도 비슷한 작용의 통로가 되긴 하지만, 이번에 내가 주목한 것은 ‘시각’이다. 이와 관련한 주제를 앞으로도 계속 발전시켜나가려고 계획 중이다.

현대미술가와 함께 선보이는 2인전이다. 서로 다른 분야의 창작자가 만나 어떤 시너지 효과를 낼 것으로 기대하나? 기대 반 궁금증 반이다. 이번 전시는 장르가 다른 두 작가가 새로운 공간에서 하는 실험이라고 표현할 수 있다. 무엇보다 주로 하던 작업과 다소 다른 작업에 도전했고, 2인전도 처음이다. 물론 현대미술가와 함께 전시해본 적도 없다. 새로운 공간에서 두 작가와 두 장르 사이의 유연성을 보여주는 것이 이번 전시의 주제지만, 개인적으로는 내 작업 안에서 유연성을 시도하는 첫걸음이 되는 전시라고도 생각한다. 전시에 함께하는 홍성철 작가의 작품에서는 ‘손’의 이미지가 두드러진다. 공예가에게도 손의 의미는 남다를 것 같다. 공예가에게 손은 몸과 마음, 도구 그 모든 것이다. 홍성철 작가와 어릴 때는 눈은 좋았지만 손이 숙달되지 않았다, 나이가 들어 손이 숙달되니 이제는 눈이 나빠져서 작업하기가 힘들다는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이런 대화 중에 들은 홍 작가의 말이 마음에 남아 있다. “눈으로 못 보는 것은 손으로 만져서 봐야 한다.”

다른 미술 장르를 바라보는 공예가의 관점은 어떨지 궁금하다. 특히 눈여겨보는 부분이 있다면 무엇인가? 입체물을 만드는 공예 작가이다 보니 조각이나 설치 작업에 관심이 간다. 특히 단순하면서도 응축된 힘이 느껴지는 작품에 강하게 끌린다. 이런 형태를 좋아하고 나 또한 추구하는 바이기 때문인 듯하다. 그 외에 기계적으로 움직이거나 신기하게 작동하는 작업에도 흥미를 느낀다.

온갖 사물이 가득한 시대에 공예의 역할이나 진가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정직함. 잘 만든 공예품에는 그것을 만든 사람의 생각과 노동이 응축되어 있다. 손길이라고도 표현할 수 있다. 평론가나 전문가가 아닌 그 누가 봐도 느낄 수 있는 것이다. 우리 시대의 사물에서는 점점 이러한 가치가 사라지고 있다. 그러나 공예는 아직 정직한 손길을 간직하고 있다. 공예가로서 일상에서 어떻게 공예품을 즐기나? 솔직히 고백하자면, 실생활에서 공예품을 많이 사용하지 않는다.(웃음) 항상 작업을 해야 해서 장신구도 착용하지 않는 편이다. 생활이 전체적으로 단순해서 그런 것 같다. 다만 작품을 완성하면 내보이기 전에 실제로 사용해보면서 스스로 피드백을 얻는다.

만드는 사람으로서 누리는 가장 큰 기쁨은 무엇인가? 나아가 ‘만든다’는 행위는 어떤 의미를 갖나? 세상을 살면서 마음대로 되는 것이 많지 않은 것 같다. 인간관계, 진로, 금전 문제 등 어느 하나 쉬운 것이 없다. 그런데 무엇을 만드는 동안에는 내 마음대로 할 수 있고, 내 마음대로 된다. 100% 그렇다고 할 수는 없지만. 또 그렇게 만드는 행위를 통해 누군가를 가르치고, 작품을 만드는 일을 직업으로 삼는다는 사실에 감사한다. 앞으로도 공예가로서 변함없이 지키고 싶은 정신이나 태도는 무엇인가? 아직은 이 질문에 대답할 정도의 공예가가 아닌 것 같다. 그러한 정신이나 태도가 무엇인지를 찾아가는 과정에 있다고 말할 수 있다.

 

 

[ HONG SUNG CHUL ]
홍성철

홍성철은 다양한 매체로 불안과 소통에 관해 이야기하는 예술가이다. 탄성이 있는 줄에 사진을 전사해 3차원으로 재조합하는 작업으로 큰 관심을 받았다. 그의 작품은 관람객의 신체와 정신을 유연하게 자극한다. 홍익대학교에서 조소를 전공한 후 미국 캘리포니아 예술대학 대학원을 졸업한 그는 유럽과 미국 등 해외에서도 활발한 활동을 펼쳤다. 서울시립미술관, 금호미술관, 영은미술관, 미국 나이키 월드 헤드쿼터, 벨기에 보고시앙재단 등에서 홍성철의 작품을 소장하고 있다.

‘String_Mirror_hands’, 2022, 알루미늄, 각각 170x100x20cm, 162x114x17cm

실을 활용한 ‘STRING’ 시리즈는 시야에 따라 미묘하게 달라지는 이미지에서 눈을 떼기 어렵다. 어떤 과정을 거쳐 작업하나? 우선 여러 개의 줄을 연달아 팽팽하게 고정해 마치 한 장의 종이처럼 만든다. 그 위에 UV 프린터로 원하는 이미지를 전사하고, 뒤집어서 반대 면에 한 번 더 전사한다. 그러면 줄 위에서 이미지가 360도 돌아가는 것처럼 보인다. 마지막으로 그 줄을 프레임에 고정하는데, 형태에 따라 차례를 맞추면서 최대한 입체적으로 보이게끔 다시 배열한다.

가느다란 실에 이미지를 전사할 아이디어는 어떻게 착안한 것인가? 2021년에 캘리포니아예술대학(California Institute of the Arts, CalArts) 대학원으로 유학을 떠났다. 학교에서 해마다 개인전을 열 기회가 있어서 새로운 아이디어를 고민하던 때였다. 한국에서 조각을 전공했지만 전통적인 재료 말고 다른 걸 써보고 싶었다. 문득 느슨한 곡선 형태를 당기면 직선이 되는 줄의 특성이 눈에 들어왔다. 처음 만든 작품은 아무 이미지 없이 백색 면실을 일정한 간격에 맞춰 대형 큐브로 만든 설치 작업 형태였다. 전시장에 다른 장치 없이 면실로 만든 흰색 큐브만 놓았는데, 그 큐브 주변을 돌면서 움직여보니 각도에 따라 착시 현상이 생겼다. 전사도 우연히 시작했다. 작업을 해체하던 중 근처에 있는 프로젝터가 눈에 띈 것이다. 칼아츠는 영화 전공이 발달한 학교라 장비가 많았다. 실에 이미지를 영사해보니 이미지가 맺히면서 흩어지기도 하는 것이 재미있었다. 전기의 힘을 빌리지 않은 일종의 언플러그드 미디어 아트인 셈이다.

신체 부위 중 유독 손의 이미지가 두드러진다. 손에 집중하는 특별한 이유가 있나? 내가 조각가라서 그런지 몰라도 가장 친근하고, 자주 마주 보는 대상이 손이다. ‘String_hand’ 시리즈의 첫 작품도 내 손을 찍어서 만든 것이다. 또 손에는 손 나름의 생각이 있다. 머리가 지시를 내리기 전에 손이 먼저 기억하고 행동하는 것 같을 때가 있다. 조형적으로도 시시각각 다른 표정이 있다. 사진을 촬영하면서 손을 여러 장 찍는데, 미묘하게 풍기는 느낌이 전부 다르다. 그리고 인사를 하거나 관계를 맺으며 다른 사람과 연결될 때 가장 먼저 내미는 것도 손이지 않나. 손에는 여러 감각이 모여 있어 아주 예민하기도 하다.

수많은 사진 중에서 이미지를 고르는 기준이 있다면 무엇인가? 포즈, 색감, 조형성 등 많은 요소가 복합적으로 작용할 것이다. 그런데 가만히 내려다보면 손에 이목구비는 없어도 각각의 표정이 있다. 그중에서도 마음을 움직이는 표정으로 묘한 느낌을 내는 손을 고르곤 한다. 말로 설명하기는 어렵고. 소통하려는 듯한 포즈가 있다. 무언가 말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드는 손짓이 관람객에게도 전달되지 않을까 싶다. 형태 자체가 줄에 표현했을 때 더욱 입체적으로 느껴질 만한 것을 고르는 경향도 있다.

작품 속 손은 대개 무언가를 하고 있다. 종이를 구기거나 목걸이를 잡고 있거나 두 사람의 손이 엉켜 있기도 하다. 그 때문인지 하나의 장면이 무빙 이미지처럼 눈앞에서 계속 반복되는 느낌도 든다. 정적인 이미지가 아니라 착시라는 유동적인 방식으로 이미지를 보여주고자 한 까닭은? 작품으로 불안을 표현하고자 하는 것이다. 나부터 항상 불안하고 자신감도 부족하다.(웃음) 모든 사람에게 불안은 기본적으로 내재되어 있고, 힘들지만 때로는 그것이 삶의 원동력이 되기도 한다. 가만히 있는 하나의 이미지도 움직인다고 느껴질 수 있다. 사람이 보는 시선에 따라 달라진다. 이미지를 해체하고 흩뜨려놓았기 때문인데, 사람들에게는 흩어져 있는 것을 모아서 보려는 습성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자기 나름대로 재구성하는 것이다. 이런 반응이 직접 만지고 싶은 욕구를 일으키기도 하는 것 같다.

본인을 조각가라고 규정하는 점이 인상적이다. 조각이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내게 조각은 무언가를 쌓아 나오는 행위이며, 이 과정을 다소 과장되게 보여주는 작업이라고 말할 수 있다. 처음 조각을 배울 때도 깎아내는 조각이 아니라 가는 뼈대에 흙을 붙이는 소조로 시작했다. 그 찰흙의 촉감에 매료되어 아직까지 작가로 사는 것 같다. 그보다 어린 시절 미술 교과서에서 접한 조르주 쇠라(Georges Seurat)의 ‘그랑자트섬의 일요일 오후’에 쓰인 점묘 기법도 뇌리에 박혀 있고, 대학 졸업 후 한동안 신문지를 쌓은 후 잘라낸 단면을 강조해 정육점에 진열된 고깃덩어리처럼 만들기도 하는 등 지난 관심사를 관통하는 조형은 평면보다는 입체에 가까운 것이었다.

신작에 활용한 재료 알루미늄 유닛.

‘String_hands_5376’, 2016, 탄성줄, 철, 200x120x14cm

그렇다면 현재 하는 작업도 조각의 일종이라고 여기나? 그렇다. 사진 이미지를 두껍게 만든 평면 작업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조각의 연장이라고 생각하는 이유도 크게 다르지 않다. 작업의 시작점에 사진이라는 2차원의 이미지를 굳이 해체해 다시 쌓아 올림으로써 새로운 형상을 만들고자 하는 조각적 욕구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 변환 과정에서 발생하는 물리적 반응 또한 관람객에게 입체적 착시를 유발하는 것도 조각의 연장이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 쉽게 정의하기 어려운 새로운 차원의 미술(new form)이라고 하면 어떨까. 무조건 조각이라고 우기려는 것은 아니다.(웃음)

줄을 배치하는 과정은 대단히 정교한 작업을 요할 것 같다. 작가에게 실제를 재현하는 것은 중요한 문제인가? 오히려 어느 정도는 실제와 달라야 한다. 너무 똑같으면 의미가 퇴색한다. 그럴 바에는 그냥 사진을 보여주면 된다. 내가 보여주고자 하는 것은 해체되고 흐트러진 실체이다. 완벽하지 않은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보는 사람이 나름대로 합치고 빼면서 보기를 원한다. 사진을 그대로 실로 옮기기 위해서가 아니라 이미지 전체의 입체감을 조성하기 위해 레이어와 간격을 일일이 조정한다. 어떤 지점에서 이미지의 중심이 선명해지는 순간이 있는데 그때 짜릿한 쾌감을 느끼기는 한다.

이번 전시 <유연한 공존>에서는 어떤 작품을 선보이나? ‘String’ 시리즈 중에서 손과 더불어 패브릭 이미지를 전사한 작품을 만날 수 있다. 흰 천을 구겨 사진으로 찍었다. 그 모습이 피부처럼 보이기도 하고, 근육 같기도 하다. 생각해보면 결국 실을 엮으면 천이 되지 않나. 아주 작은 것들이 모여서 표면을 이루는 것을 보며 새삼 모두 연결된다고 느꼈다. 손이든 천의 이미지든 의도적으로 무언가를 만들어내기보다 우연히 형성된 주름과 자연스러운 형태 안에서 조형미를 발견하려고 한다.

전시에서 줄 외에 새로운 재료를 사용한 신작도 공개한다. 줄 대신 알루미늄 재질의 육각 유닛을 조립하고 그 위에 이미지를 전사했다. 봉이 여러 겹으로 중첩되며 형상을 이루는데 공중에 매달려 있는 설치 작업이다. 그간 줄로 작업하면서 프레임에 갇힌 느낌이 드는 순간이 있었는데, 신작을 만들며 답답함이 조금 해소된 듯하다. 프레임 없이 마치 세포 증식을 하듯 유닛들이 연결되어 스스로 구조를 이루고 건축적으로 결합한다. 수많은 픽셀이 모여 전체를 구성하는 디지털 이미지의 구현 방식과 유사한 원리라고 할 수 있다.

줄부터 알루미늄까지 재료의 실험이 두드러진다. 어떤 물성을 지닌 재료가 흥미를 끄나? 가변성이 있는 재료에 관심이 간다. 늘어져 있을 때와 장력을 가할 때가 다른 실이나 알루미늄 봉도 작은 유닛이지만 모으면 무한하게 확장 가능하다. 적합한 실을 찾기 위해 시행착오도 많았다. 굵기와 재질, 탄성 등 여러 면을 비교해보다가 이제 실리콘 심지 위에 나일론을 씌운 실을 사용하고 있다. 최근에는 탄소봉(카본 스틱)으로 새로운 실험 중이다.

공예가와 함께 선보이는 2인전이다. 비슷한 전시 경험이 있는지, 평소 공예에 대한 생각은 어떠했는지 궁금하다. 전혀 해본 적 없는 새로운 시도다. 장르가 서로 다르기는 하지만 한 공간 안에서 마치 한 작품처럼 보일 수 있으면 색다른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지 않을까. 공예에 조예가 깊지 않아 조심스럽긴 하지만, 공예는 순수미술에 비해 좀 더 재료의 물성을 연구하는 데 큰 비중을 두는 것 같다. 그것을 기반으로 조형미를 자연스럽게 드러내는 분야라고 생각한다. 무엇보다 공예가들은 만드는 일을 대하는 자세에서부터 장인정신이 느껴진다.

함께 전시하는 강웅기 작가와 대화하며 ‘눈으로 못 보는 것은 손으로 만져서 봐야 한다’라고 말했는데, 어떤 의미인지 더 자세히 듣고 싶다. 사실 내가 그런 말을 했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웃음) 아마 고등학교 시절 조각을 처음 배울 때 선생님이 하신 말씀이 무의식에 남아 있어서 한 말이 아닐까 싶긴 하다. 조각가는 평소에도 대상을 볼 때 마음의 손으로 대상의 이면까지 어루만지듯 볼 줄 알아야 한다며, 항상 그렇게 보려고 노력하라는 가르침을 주신 분이었다. 그 영향으로 항상 눈으로 만진다는 느낌으로 관찰한다.

전시장을 찾은 관람객이 놓치지 않고 봐줬으면 하는 것이 있다면? 작품이 유발하는 착시 현상을 신기하게 여기는 분이 유독 많다. 그 때문인지 어떻게 만들었느냐는 질문을 제일 많이 받는다. 하지만 테크닉적인 부분에만 초점을 맞추기보다는 작품의 부분과 전체를 좀 더 입체적으로 봐주셨으면 좋겠다. 조금 더 오래 작품에 온전하게 집중하면서 소통하듯 각자의 인터랙션을 경험하기를 바란다.

새로운 시도를 멈추지 않는 작업의 원동력은 무엇인가? 누구에게 보여주거나 칭찬을 듣기 위해서 작업하는 건 아니다. 자기만족이 가장 크다. 생각을 구현했을 때 그대로, 혹은 예상치 못한 것이 나오면서 거기서 계속 발전시켜가는 재미가 크다. 아무것도 아닌 상태에서 나조차 알 수 없는 것들을 만들어내는 과정 자체가 즐거워서 계속 작업을 하는 것 같다.

앞으로 예술가로서 궁극적으로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다면? 그저 사람들의 원초적인 불안을 위로하고 어루만져주는 작품이면 좋겠다. 예술 작품이 반드시 무언가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내 작품을 보고 마음이 편안하고 생기가 돌고, 기분 좋은 자극을 받을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