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한 연인, 세상을 떠난 친구, 심리적 거리가 멀어진 가족. 장희원 작가의 첫 소설집 《우리의 환대》는 부재하는 사람의 잔흔을 담담히 응시한다. 지나온 시간을 되짚는 인물들의 이야기를 통해 작가는 ‘우리’라는 관계에 질문을 던진다. 그리고 나와 다른 존재를 진정으로 환대하는 마음에 대해 귀띔한다. 서로를 온전히 이해할 수 없다는 슬픔까지 기꺼이 끌어안으며, 온 힘을 다해 누군가를 맞이하는 용기. 그 마음이 수많은 타인을 돌고 돌아 다시 내게로 왔을 때, 나 자신을 더욱 사랑할 힘이 되어준다는 것을 작가는 믿고 있다.

2019년 등단 이후 발표한 소설 중 9편을 모은 《우리의 환대》가 출간되었습니다. 첫 소설집을 선보인 기분이 어떤가요? 언젠가 한 번쯤은 물성을 갖춘 책을 낼 거라고 막연히 생각하고 있었는데, 감회가 깊기보다는 덤덤해요. 괴로움을 비롯해 소설을 쓰면서 느낀 복합적인 감정들이 당시보다 작아진 것 같아 마음이 한결 편안해요.

약 3년에 걸쳐 쓴 여러 작품을 한 권으로 엮으며 이전과 달리 느껴지는 것도 있었나요? 시간이 흐른 뒤에 다시 살펴보며 이전에는 미처 느끼지 못한 인물의 감정 등을 알게 됐어요. 새롭게 느껴지기도 하고 아쉬운 마음이 들기도 했죠. 책을 완성해가며 고쳐 쓴 부분도 있어요. 제가 이번 소설집을 엮으며 생각한 지점을 독자들도 감지할지 궁금해요.

인상 깊은 독자의 반응이 있다면요? 독자마다 가장 선호하는 수록작이 달라 신기했어요. 9편 중에서도 <혜주>를 좋아해주는 분이 예상보다 많았어요. 화자가 대학병원에서 아버지를 간호하는 옛 동창 ‘혜주’를 만나며 펼쳐지는 이야기에 크게 공감해주었죠. 제 지인들은 <혜주> 를 읽고 저를 떠올렸다고 하더라고요. 제 경험이 담긴 작품이거든요.

소설에 일상의 경험을 자주 담는 편인가요? 모든 글에 제가 보고 느낀 점이 꼭 들어가요. ‘어떤 모양의 의자에 앉았다’와 같은 사소한 한 문장일지라도요. 의도하지 않아도 제 크고 작은 경험이 글의 영감이 되거나 미묘한 뉘앙스를 만들어내더라고요. 이번 소설집에도 제 경험이 군데군데 녹아 있어요. 이를테면 호주와 뉴욕을 찾아갔던 때의 경험은 각각 <우리의 환대>와 <Give me a hand>에, 팔공산 갓바위에 올랐던 기억은 <기원과 기도>에 담겨 있어요. 남동생이 어릴 때 장난감을 갖고 싶다며 울던 날은 <작별>의 출발점이 되었고요.

9편을 관통하는 키워드로 ‘부재’를 들 수 있을 것 같아요. 누군가를 영영 잃어버렸거나 서서히 잃어가는 과정에 놓인 인물들이 나오죠. 소설집 전반에 녹아 있는 부재의 감각과 표지 이미지가 잘 어울린다고 느꼈어요. 제가 원래 머릿속에 그린 표지는 아주 차가운 흑백 이미지였어요. 사진가 로버트 메이플소프의 ‘White Gauze’처럼, 차가우면서도 찰나의 따뜻함이 담기기를 바랐죠. 출판사 측에 제 의견을전달한 후 표지 시안을 받았는데, 제가 원하는 바와 잘 맞아 떨어지는 것 같았어요. 한 줄기 빛과 너울지 는 그림자가 이뤄낸 장면이 쓸쓸하지만 어딘가 따스하게 느껴지거든요.

부재와 관련한 소설을 자주 쓰게 된 계기가 있나요? 순전히 우연이에요. 오히려 이번 소설집을 내고 앞으로 쓸 소설들에 대해 고민하면서 제가 부재라는 주제에 관심을 갖고 있다는 걸 깨달았죠. 돌이켜보면 전 사람을 잃었을 때 마음이 제일 힘들었어요. 상실의 아픔을 훌훌 털어내지 못한 채 부재하는 존재를 곱씹어 생각했죠. 그 시간들이 제 무의식에 부재가 관심사로 자리 잡게 했나봐요.

하지만 소설집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부재의 상황에서 슬픔이나 절망에 빠지지 않습니다. 누군가 떠난 자리를 담담히 바라볼 뿐이죠. 어떤 일이 벌어진 직후에는 슬프더라도, 나중에 보면 그 안의 자그마한 행복을 찾아낼 수 있잖아요.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고요. 그래서 ‘이건 슬픈 일이다’라는 식의 판단을 내리기가 망설여져요. 제가 무슨일을 겪든, 결론을 짓기 전에 한 번 더 돌아보는 기회를 갖고 싶어요. 이런 제 삶의 태도가 소설에 담긴 것 같아요.

어떤 과정을 거쳐 형성된 태도인가요? 글을 쓰다 보니 만들어진 태도가 아닐까 싶어요. 작품 속 타인을 좀 더 이해하려는 마음의 영향이죠. ‘이 사람은 대체 왜 저러지?’라고 생각하기에 앞서 사건이나 현상, 그로 인한 다양한 감정을 더 면밀히 살펴보려고 노력해요. 그래야 좋은 이야기가 완성될 확률이 높더라고요.

타인을 온전히 이해하는 건 불가능할 거예요.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도 너와 내가 과연 우리였는지 돌이켜보며 낯선 기분을 느끼고요. 내가 아무리 노력을 다하더라도 나와 타인 사이에 반드시 일어나는 균열들이 있잖아요. 전혀 예상하지 못한 타인이 내 옆에 있는 순간을 발견할 때도 있고요. 그래서 전 ‘너와 나는 비슷한 사람이기에 우리다’라는 문장이 부서질 것처럼 여겨져요.

 

 

“저기 눈부신 햇빛 아래
서로가 온 힘을 다해
부둥켜안고
있는 것 같은 기분….”

 

 

연인, 친구, 가족 등 ‘우리’의 형태를 띤 관계가 소설에 등장합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확실한 우리라고 여겨지는 관계는 부모와 자녀 사이가 아닐까 싶어요. 맞아요. 제일 육체적이고, 우리라는 명목으로 서로를 쉽게 가둬놓을 수 있는 관계죠. 그럼에도 부모와 자녀는 가장 사랑하는 사이라는 점이 흥미로워요. 아버지 때문에 화가 나 미치는 줄 알았다고 말하지만 그 곁을 계속 지키는 혜주처럼요.

미워도 사랑하는 마음의 기반에는 무엇이 있을까요? ‘억제할 수 없음’이요. 속절없이 누군가에게 향하는 마음이 다양한 감정과 무수한 관계를 아우르는 사랑의 공통적 특징이 아닐까 해요. 이 지점에 집중하며 사랑에 대해 쓰는 것 같고요. 이번 소설집의 모든 인물에게 그런 사랑이 어느 정도 존재하기를 바라요.

그중 제일 애정이 가는 인물을 한 명 꼽는다면요? <우리의 환대>의 아버지 ‘재현’이요. 재현의 아들 ‘영재’는 혼자 호주로 떠나 노년의 흑인, 허벅지에 문신을 한 여자아이와 가정을 이뤄요. 그 가정이 겉으로 보기에는 마치 가축을 기르는 축사 같지만, 그 안에 사는 세 사람은 빛나는 우리가 되었다는 사실을 재현은 받아들이지 못하죠. 제가 5년 전에 이 작품을 처음 썼을 때는 재현을 단죄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영재의 시점으로 이야기를 전개하며 영재의 세계가 얼마나 찬란한지 보여주리라 하는 마음을 담았죠.그 이후 재현의 시점을 따라 다시 풀어나갔더니, 재현이 영재를 무척 사랑한다는 게 느껴지더라고요. 저만의 상상이지만, ‘저 빛 너머의 모습이 눈부시다는 듯 자꾸만 두 눈을 움찔움찔 떨었던’ 재현은 언젠가 다시 영재에게 가지 않을까 싶어요. 재현이 영재의 빛나는 세계를 볼 수 있게 되기를 바라요.

재현은 영재의 세계에 첫발을 내딛으며 경계했지만, 영재가 호주에서 이룬 가족은 어떠한 제약이나 편견 없이 재현을 맞이하죠. 진정한 환대가 무엇인지 생각하게 하는 작품입니다. 환대는 거창한 일이 아니라고 봐요. ‘내가 널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하더라도 난 네 옆에 있겠다’ 하는 작은 마음이면 충분하지 않을까요. 물론 이 마음을 얻는 과정에서 느껴야 하는 아쉬움이나 슬픔이 있을 수 있죠. 하지만 그 감정까지 기꺼이 인내하며 상대를 충실히 끌어안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요. 저 또한 주변 사람들의 마음에 엄청난 위로를 받았고, 제 마음을 주변에 전하며 기쁨을 느꼈어요.

‘자신에게 기대고 있는 누군가의 마음을 잊지 않기를’이라는 작가의 말 마지막 구절이 떠오르네요. 사람은 서로를 위하는 마음을 지지대 삼아 살아가는 것 같아요. 누군가를 진심으로 위한다면 그 마음을 나 또한 언젠가는 받게 되는 거죠. 세상은 그럴 수밖에 없는 구조로 짜여 있다고 봐요. 그러니까 누군가를 환대하는 용기는 결국 나를 더 사랑하는 방법이 되어준다고 생각해요.

소설이 환대를 주고받는 하나의 경로가 되어주지 않을까 싶습니다. 작가와 독자가 서로 마음을 나눌 수 있을 테니까요. 글을 쓰고 읽는 사람으로서 소설의 어떤 점을 가장 좋아하나요? 언어는 어떤 대상을 정확히 가리킬 수 없잖아요. 불완전한 언어로 이뤄진 소설이 독자의 마음을 울린다는 점이 참 아름다워요. 소설의 언어가 독자의 오감을 일깨우는 힘을 지닌 것도 신비롭고요. 소설을 읽고 쓰며 저와 다른 존재의 세계를 들여다볼 수 있고, 이를 통해 제 협소한 세계가 점점 확장되는 것 같아요. 글 쓰는 장희원이  그렇지 않은 장희원보다 조금은 더 괜찮은 사람일 거라 믿고요. 물론 글을 쓰면서 맞닥뜨리는 여러 가지 두려움이 있고, 이를 이겨낼 방법은 없어요. ‘그래도 이겨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 한 문장씩 쓰다 보면 큰 기쁨을 느낄 수 있더라고요. 그렇게 완성해낸 결과물에 공감하는 독자가 있으니 외롭지 않아요. 앞으로도 꾸준히 지금의 제가 할 수 있는 이야기를 쓰고 싶어요.

마지막으로 작가님이 언젠가 환대하고 싶은 대상이 무엇인지 묻고 싶습니다. 제 마음 깊이 들어오는 질문인데요.(웃음) 제 존재 자체를 기꺼이 희생할 수 있는 무언가를 만나고 싶어요. 그게 저한테 제일 큰 고통이자 행복이 되어줄 것 같아요. 그런 세상이 제게 나타나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