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ROLINA HERRERA

로버트 메이플소프의 꽃 사진을 보며 캐롤리나 헤레라에서 맞은 두 번째 컬렉션을 준비한 웨스 고든. 이 덕분에 그가 ‘행복한 색’이라고 표현한 생동감 넘치는 노란 바탕에 파란 꽃을 그려 넣은 드레스가 쇼의 첫 장을 차지했다. 이 꽃무늬는 이후 다양한 컬러로 변주돼 컬렉션 곳곳에 등장하며 존재감을 알렸다. 한편 경쾌한 데이 수트와 칵테일 드레스의 향연은 물론 오렌지색 스트링 장식 아노락 드레스, 발렌티노가 연상되는 네온 컬러 롱 드레스로 브랜드에 젊은 피가 적절하게 수혈되고 있음을 알렸다. 어깨와 허리를 매듭으로 장식한 드레스와 수트 역시 발랄한 스타일을 즐기는 업타운 걸에게 선택받을 만한 아이템. 전반적으로 우아하고 고상한 드레스가 부족하다는 의견이 뒤따르긴 했지만 이 영리하고 예의 바른 디자이너는 브랜드의 시그니처인 화이트 셔츠를 재해석한 드레스를 피날레에 올림으로써, 프런트 로에서 흐뭇하게 쇼를 바라보던 디자이너 캐롤리나 헤레라에게 경의를 표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TORY BURCH

허드슨강이 내려다보이는 피어 17에 마련된 쇼장에는 살롱 94가 소장한 데이비드 벤저민 셰리의 산 이미지가 곳곳에 걸려 있었다. 이는 “교육에 대한 비전통적 접근법을 정립하고, 미국 현대미술의 역사를 새로 쓴 블랙마운틴 칼리지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언급한 토리 버치 컬렉션의 시즌 컨셉트를 뒷받침하고 있었다. 런웨이를 누비는 자유로운 기운이 물씬 풍기는 옷들을 보고 있으니 디자이너의 의도가 더욱 명확하게 느껴졌다. 클래식한 테일러드 코트와 트라우저 등 매니시한 룩을 기반으로 했는데, 거기에 꽃무늬와 러플, 플리츠를 더한 로맨틱한 블라우스와 스커트 등을 매치해 반전을 꾀한 것. 이렇듯 격식을 갖추면서도 곳곳에 색다른 요소를 가미한 옷으로 블랙마운틴 칼리지의 도전정신을 계승하고자 했다. 이번 시즌에도 여전히 토리 버치다운 컬렉션을 완성한 부분에는 이의를 제기할 생각이 없다. 하지만 조금 더 로맨틱하거나 모던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은 끝내 지울 수 없다.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다.

COACH 1941

스튜어트 베버는 지난 시즌에 이어 이번에도 여행지에서 쇼를 구상했다. 1949년에 문을 연 캘리포니아 빅서의 레스토랑 ‘니펜시(Nepenthe)’가 그를 특별한 협업으로 이끌었다. 니펜시는 퀼트 작가 카프 파셋 가족이 운영하는 레스토랑. 카프 파셋의 사이키델릭한 퀼트 패턴은 보헤미안 무드에 유독 애정을 기울이는 스튜어트 베버의 취향과 절묘하게 맞아떨어졌다. 온갖 꽃무늬, 지질층이 연상되는 마블링 패턴, 클래식한 타탄 체크 등 여러 가지가 한데 뒤섞였지만 마치 카프 파셋의 퀼트 작품처럼 하나의 컬렉션에서 적절하게 하모니를 이뤘으니! 아메리칸 포크란 바로 이런 것임을 패션으로 보여준 셈. 한층 업그레이드된 코치의 전매특허 아우터와 함께 드레스에 버뮤다팬츠를 매치해 반전을 꾀한 스타일링도 눈여겨볼 것. 이뿐 아니라 백 컬렉션에도 거장의 작품을 프린트해 소장가치를 더했다. 프런트 로에서 쇼를 지켜보던 여러 셀러브리티는 물론이고 카프 파셋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음은 물론이다.

Giambattista Valli

지암바티스타 발리의 쇼엔 여성을 가장 여성스럽게 만드는 온갖 ‘드레스’가 줄줄이 등장했다. 기퓌르 레이스, 실크, 자카드, 오간자, 브로케이드 등 최고급 소재로 무장한 드레스들은 현란한 주얼 장식과 아르누보 양식을 지오메트릭 패턴으로 승화한 꽃무늬 등 로맨틱한 디테일을 더해 시종일관 달콤한 분위기를 폴폴 풍겼다. 디자이너가 유독 애정을 기울이는 1960년대 풍 A라인 미니 원피스부터 풍성한 롱 드레스까지 다양한 실루엣 또한 특징. 리본으로 단정하게 매듭지은 실크 스카프, 볼드한 메탈 펜던트 목걸이, 글래디에이터 샌들 등 감각적인 액세서리도 좋았다. 쇼가 끝난 후, 주얼 장식 옐로 시폰 드레스를 입은 지지 하디드의 환상적인 피날레 컷이 SNS를 타고 삽시간에 퍼져나간 것으로 미루어 보아 프런트로에 앉은 셀마 헤이엑을 비롯한 할리우드 여배우들의 러브콜은 예견된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