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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돔을 써야 하는 수많은 이유는 콘돔 광고에 다 나와 있다. 아이들의 귀여운 모습만 아는 다정한 이모, 삼촌으로 살 수 있게 해주고, 좀처럼 내놓고 자랑할 기회가 없는 그것의 사이즈도 XXL사이즈의 콘돔을 구매하면서 은근한 과시의 수단이 된다. 기발한 상황 설정과 유머 감각으로 웃음을 주는 전 세계 콘돔 광고의 목적은 하나다. 브랜드를 기억하도록 하는 것. 사람들이 콘돔을 고르는 기준은 생각보다 단순해서 곧장 익숙한 브랜드의 제품을 집어 들기 때문이다.

영국의 듀렉스는 끊임없이 기발한 광고를 내놓는 대표적인 브랜드다. 무엇인지 모를 커다란 것을 입에 넣다가 다친 여자의 입술 사진이나 다리가 세 개 달린 남자 화장실 표지판 등 허풍의 차원이 남다르다. 올 해 터키 이스탄불에서 선보인 듀렉스 광고의 배경은 기차역, 아직 기차는 들어오지 않았는데 전광판에는 윌리엄과 제니퍼의 이름이 써 있다. 그리고 우리는 비보를 접하게 된다. 윌리엄은 방금 역(오르가슴)에 도착했지만 불행히도 제니퍼는 지금 막 취소되었다는 소식이다. ‘Come at the same time’이라는 슬로건 아래 모두가 오르가슴이라는 종착역에 도착하게 돕겠다는 듀렉스의 광고는 이제 기발함을 넘어 기특한 경지에 올라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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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이미지로 눈길을 사로잡는 콘돔 광고도 있다. 투명한 비닐 안에 발가벗은 남녀가 뒤엉켜 있고 진공포장을 한 듯 그들의 몸에 밀착된 비닐은 적나라한 포즈를 그대로 보여준다. 웅크린 남자가 자신의 몸 위에 비슷한 자세의 여자를 태우고 있는가 하면 69라는 숫자를 몸소 완성한 커플도 보인다. 남자가 여자의 벌린 다리 사이에 허벅지를 올린 채 안긴 과감한 자세는 볼수록 에로틱하다. 이 독특한 이미지들은 성인용품 숍 콘돔 마니아의 일본 광고로 할(Hal)이라는 이름의 포토그래퍼가 실제 커플을 섭외해 촬영했다. ‘Preserve the love. Wear the condom’이라는 슬로건으로 각종 근심과 위협으로부터 섹스를 지켜내겠다는 콘돔의 의지, 그 숭고함이 강조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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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대로 단순한 이미지로 상상력을 자극하는 콘돔 광고도 많다. ‘The End’라는 글씨로 영화의 끝을 알리던 옛날 영화 화면이 콘돔 광고에 등장한 것이다. 뭉게 뭉게 피어오른 구름 사이로 끝을 알리는 글씨가 잘 보이지 않는다. 살짝 커닝을 하자면 ‘Long time before the orgasm’. 섹스에는 길수록 칭찬받을 만한 것들이 있는 법. 끝날 듯 끝나지 않는 네버 엔딩이 곧 해피 엔딩일 수도 있다는 벨기에의 콘돔 광고도 단순하지만 유혹적이다.

그러나 국내에서 이렇게 상상력을 자극하고 환상을 불어넣는 콘돔 광고는 찾아보기 어렵다. 콘돔은 기호품이 아닌 의료 기기라서 괜한 오해를 불러일으켜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대신 성병이나 피임 예방을 위한 기구로 그려지는데 그마저도 보수적인 국내 정서상 눈치 볼 것이 많다. 하지만 이 좁은 틈을 비집고 활약 중인 인물이 있으니 무슨 말을 해도 야릇한 상상을 불러 일으키는 신동엽이다. 국산 콘돔의 대표 주자 유니더스는 그의 얼굴을 제품 전면에 부착하고 영화 <킹스맨> 의 명대사를 차용해 이런 멘트를 실었다. ‘매너가 사람을 안 만든다’. 모처럼 고개를 든 콘돔 광고가 반가우면서도 피임 외의 그 어떤 상상도 허락하지 않겠다는 이 철벽 수비가 씁쓸하다. 피임과 성병 예방이라는 콘돔의 역할을 언제까지 다 큰 성인들에게 주입해야 할까. 일차원적인 공익광고에서 진일보한 발칙명랑한 콘돔 광고를 대한민국의 버스정류장과 극장에서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