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슐랭 이 뭐길래 - 마리끌레르 2016년
모던 한식의 강자 M이 2년간의 지하 생활을 끝내고 지상으로 자리를 옮겼다. 부산 프렌치 퀴진의 간판 M도 서울 지점을 준비한다는 풍문이 돈다. 뉴욕 미슐랭 3스타 레스토랑에서 근무한 셰프 S도 레스토랑 오픈을 서두르고 있다. 동시다발적인 변화의 배후에 이게 다 미슐랭 효과 아니냐는 말이 오간다. 음식만큼이나 중요한 평가 기준인 식당 분위기를 위해 지상으로 올라와야 했을 것이고, ‘서울편’이니만큼 지방 소재 레스토랑이라면 일단 상경부터 하고 볼 일일 테니까.

3월 10일, 한국을 찾은 미쉘린 그룹 베르나르 델마 부사장은 27번째 미슐랭 가이드북의 서울편을 제작한다고 공식 발표했다. 도쿄, 홍콩, 싱가포르에 이어 아시아에서 네 번째로 미슐랭의 도시로 선정된 것이다.

이에 국내 특급 호텔들은 시장을 선점하기 위해 자본력을 내세워 치밀한 전략을 펼치고 있다. 최근 호텔들 사이에서는 해외 미슐랭 셰프를 초청하는 게 유행이다. 중구 웨스틴 조선호텔 ‘스시조’는 2009년부터 미슐랭 2스타의 자리를 지키고 있는 ‘기온 사사키’의 오너셰프 사사키 히로시를 초청해 갈라 디너를 열며 별 따는 노하우를 특훈받았다. 롯데호텔 서울 일식당 ‘모모야마’ 역시 도쿄 미슐랭 2스타 ‘하마다야’의 미타 요시히로 총괄 셰프를 포함 총 3명의 셰프를 서울로 모셨다.

전문가들은 미슐랭 가이드가 평균적으로 11월에 발간되기 때문에 늦어도 7개월 전인 4월부터는 ‘암행’을 시작하지 않겠느냐고 의견을 모은다. 문제는 별을 주는 미슐랭 인스펙터는 사전에 아무 연락 없이 식당을 방문하고, 돈까지 지불하고 가기 때문에 당최 눈치챌 방법이 없다는 것. 셰프들 사이에서 오가는 ‘미슐랭 카더라’에 따르면 미슐랭 인스펙터는 인스펙터로 추정되는 외국인과 통역을 담당하는 현지인이 2인 1조로 움직인다. 최소 두 번은 테스트하기 때문에 1~2주 사이 다시 식당을 방문했다면 100%라고. 미슐랭 스타를 얻기 위한 고군분투를 다룬 영화 <더 셰프>에서도 약간의 힌트를 얻을 수 있다.

“저녁 7시 30분, 중년 남성 둘이 오는 팀을 눈여겨 봐라. 한 명이 미리 와서 바에서 음료를 마시고 다른 남성을 기다리며 식당 내부를 훑어보면 의심해라. 코스 요리와 단품 요리를 각각 주문하면 확률은 더욱 높아진다. 포크를 바닥에 내려놓는다면 당장 셰프와 지배인에게 보고하라. 이는 서비스 수준을 보기 위한 시험이다.”

어디까지가 사실일까? 3년 연속 미슐랭 2스타를 받은 도쿄 긴자의 한식당 ‘윤가’의 윤미월 대표의 증언을 들었다. “언제 몇 번이나 왔는지 저나 종업원들이나 감을 못 잡겠어요. 곰곰이 곱씹어도 단서가 없거든요. 언제 왔다 갔는지도 모르는데 어느 날 전화가 와요. 미슐랭 위원회라고 소속만 밝히고 주소와 전화번호, 메뉴와 가격 등 기본 정보를 확인하더라고요. 미슐랭 스타를 받게 됐다거나 별이 몇 개라거나 그런 이야기는 일절 하지 않고요. 그러다 12월 열리는 미슐랭 파티 초대장이 도착하더라고요. 별 개수는 파티장에 가서 책 보고 알게 되는 거죠.”

그녀에게 별 따는 요령을 물었다. “일본의 사례를 보면 3스타를 받은 곳은 대부분 스시집이에요. 미슐랭은 지역색을 살린 전통 요리에 관심이 많아요. 서울에서는 한식을 주목하겠죠? 한식인지 프랑스 요리인지 모호한 퓨전은 위험해요. 기교를 부리거나 미슐랭 스타를 겨냥해 갑자기 변화를 주기보다는 전통 방식이나 고유의 스타일을 고수하는 게 좋고요.”

미슐랭 가이드 6대 사장인 장 뤽 나레가 그녀의 증언을 입증한다. 2007년 도쿄의 음식점이 무더기로 별을 받았는데 당시 그는 한 인터뷰에서 “전문성을 높이 평가한다. 파리의 일본 음식점에서는 초밥, 회, 야키도리 등 다양한 메뉴를 내놓는 반면, 일본 현지에서는 스시 전문점, 회 전문점, 야키도리 전문점, 도시락 전문점, 우동 전문점 등으로 세분화돼 있었다. 매우 인상적이었다”라고 말했다.

1백16년 역사의 미식 가이드가 지닌 정통성과 권위의 힘에서 자유로운 이는 별로 없다. 이름을 알리고 싶어 하는 요리사들에게 이만큼 확실한 훈장도 없다. 문제는 영원한 스타가 없다는 거다. 지난 2월, 스위스 로잔에서 미슐랭 3스타 레스토랑 ‘오텔 드 빌’을 운영하던 셰프 브누아 비올리에가 미슐랭 가이드의 새 평점 발표 하루 전날 자택에서 자살했다. 이번 사건이 처음은 아니다. 2003년 프랑스 부르고뉴에서 미슐랭 3스타 식당 ‘코트 도르’를 운영하던 베르나르 루아조도 3스타에서 2스타로 강등될 것을 걱정해 사냥총으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반면 3스타 셰프 올리비에 뢸랭제는 “체력이 달려 더 이상 별을 지키지 못하겠다”며 별을 자진 반납하고 큰 짐을 내려놓았다. 우리의 미식 판도는 어떻게 변화할까? 서울의 건투를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