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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롭고 무료했다. 낯선 남자를 만나고 싶었다. 나만 빼고 다들 연애를 시작했는지 종종 들어오던 소개팅 제안도 없고, 남자들과 합석하는 술자리를 마련해줄 인맥도 동났다. 친한 언니에게 외로워 미치겠다고 푸념했더니 그럴 땐 틴더만한 게 없다며 접속해보라고 했다. 틴더(Tinder)는 미국에서 개발한 데이팅 앱이다. 작년 이맘때 ‘정오의 데이트’나 ‘아만다’ 같은 한국판 데이팅 앱을 깔았다가 별 소득 없이 탈퇴한 경험이 있어 큰 기대 없이 앱을 다운로드했다. 우선 가입 절차가 쉽고 간단한 점이 마음에 들었다. 페이스북 계정과 연동하니 곧바로 가입됐다.

설정에서 얼굴이 흐릿하게 나온 전신사진 한 장을 업로드하고 이름과 나이만 공개했다. 이제 대상을 물색할 차례다. 틴더에서는 상대방과 내 거리와 연령대를 설정할 수 있다. 좀 널찍하게 일산부터 분당까지 훑어봐야 하지 않을까 싶었다. 반경을 50킬로미터 이내로 조정했다. 연령대는 연상 연하를 모두 수용해 26세에서 35세까지. 마침내 기준에 부합하는 남자들의 카드가 떴다. 사진 속 남자가 괜찮으면 카드를 왼쪽으로, 별로다 싶으면 오른쪽으로 넘기고 마음에 드는 사람을 발견하면 위로 올려 슈퍼라이크를 보내면 된다. 일반 라이크는 하루에 1백 개, 슈퍼라이크는 두 개가 주어진다. 카드를 넘길 때 상대방이 내 사진에 라이크를 눌렀는지 그냥 넘겼는지는 알 수 없고, 쌍방으로 라이크가 오고 가야 매칭이 이뤄져 채팅방이 열린다. 짝사랑할 필요가 없는 쿨한 시스템이다.

본격적으로 카드 넘기기에 집중했다. 쭉 둘러보니 예상보다 라인업이(?) 좋았다. 프로필에 자신의 직업과 취미를 꽤 길고 진지하게 적어둔 사람도 많고, 인스타그램 계정을 연결해 세련된 취향을 드러내는 남자도 눈에 들어왔다. 물론 웃통을 벗어던진 근육남과 외제 차를 뽐내는 허세남, 뜨거운 밤을 보낼 여자를 찾는다는 외국인도 많았다. 한 시간 동안 20명에게 라이크를 보냈다. 9명과 매칭됐고, 그중 네 남자가 말을 걸어왔다. ‘어디에 사시나요?’ ‘무슨 일 하세요?’ 몇 사람과 비슷한 패턴의 대화를 나누다가 독립영화를 즐겨 본다는 두 살 연하의 남자와 카톡 아이디를 주고받았다. 그리고 새벽까지 이야기를 나눴다.

일주일 후 홍대의 작은 술집에서 틴더로 알게 된 연하 남 A와 마주 앉았다. 낯설었다. 내가 지금 여기서 뭘 하고 있는 걸까. 30분 정도 이야기를 나누며 소주 몇 잔을 들이켜니 조금씩 괜찮아졌다. 사진보다 실물이 훨씬 마음에 들었다. 그날 우리는 2차로 양꼬치집까지 갔다가 다음 만남을 기약하고 헤어졌다. 이틀 후 다시 만난 우리는 충무로에서 영화를 봤다. 내가 보고 싶은 영화를 콕 집어내 표를 예매해둔 그가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A가 영화를 보다가 내 손을 잡았다. 영화관에서 나와 종로의 한 술집으로 자리를 옮겨 맥주를 마시기로 했다. 취기가 오를 때쯤 A가 곁에 다가왔다. 놓았던 손을 다시 잡고 깍지를 끼더니 갑자기 입을 맞추려 얼굴을 가까이 댔다. 불편했다. 술이 확 깨면서 현실로 돌아온 나는 서둘러 자리를 파했다. 택시를 태워준다며 함께 나온 A와 어색하게 헤어졌다. 이튿날 아침, 잘 들어갔느냐는 인사를 건조하게 주고받은 것을 마지막으로 연락이 자연스레 끊겼다.

단 한 번의 만남에 로맨스를 기대했던 내가 한심하게 느껴지는 동시에 빠르고 편리한 소개팅이 가능한 틴더의 세계에 빠져드는 걸 느꼈다. 앱을 다시 켰다. 카드를 열심히 돌렸다. 어떤 날은 라이크 1백 개를 탕진하기도 하고, 또 다른 날은 한두 명과 채팅하는 데 집중하기도 했다. 모 광고회사에 다니고 취미는 전시회 감상이라는 서른 살의 P와 만날 약속을 잡았다. 약속 당일 만나기로 한 식당 앞에 서 있는데 난생처음 보는 남자가 다가와 말을 걸었다. “안녕하세요. 저예요.” 틴더에서 내가 알던 P와 닮은 부분은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었다. 코앞에 두고 못 알아볼 정도였다. 당황스러웠다. 더군다나 현실의 P는 하얗게 워싱된 스키니 진에 꽉 끼는 스트라이프 베스트를 입고, 헌팅캡을 썼으며 팔과 손에 은반지 은팔찌를 주렁주렁 매달고 있었다. 가장 멋지다고 생각하는 아이템을 몽땅 전신에 휘감고 나온 것 같았다. 채팅할 때 말투처럼 단정한 분위기를 기대했는데, 완전히 다른 모습으로 등장한 P와의 인연은 정적 속에서 아메리카노 한 잔을 비우고 끝났다. 이후 메시지만 이따금 주고받다가 현실로 넘어온 서른세 살 O와의 만남 또한 길지 않았다. 옆 동네 아파트에 산다고 해서 반가운 마음에 주저 없이 약속을 잡았는데, 마주한 그는 30분 내내 이상한 질문을 늘어놨다. “학교는 어디 나오셨어요?” “마지막 연애는 언제였죠?” “부모님은 어떤 일을 하시나요?” 이럴 거면 결혼 정보 업체를 찾아갈 일이지 왜 여기 앉아 있나 싶었다. 호구조사는 사절이다.

틴더를 통한 만남을 거듭할수록 마음이 헛헛했다. 기대 없이 사람 구경이나 몇 번 하고 지우기로 마음먹고 다시 접속했다. 매칭이 이뤄진 지 일주일이 지나 C가 처음으로 말을 걸어왔다. “매칭 알람을 꺼둔 상태라 몰랐네요. 늦었지만 메시지를 남겨봅니다.” C는 이후 시작된 채팅 내내 젠틀하고 차분한 말투로 대화를 이어나갔다. 한 명만 더 만나 보고 끝내도 괜찮겠지 싶어 연락처를 주고받았다. 안국역 근처의 수제 맥주 바에서 C를 만났다. 실물은 사진과 똑같았고, 실제 목소리와 말투는 채팅할 때처럼 얌전하고 다정했다. 다음 날 밤에 그와 함께 한강공원을 산책했다. 그리고 이튿날에는 C가 서점에서 만나자고 제안해왔다. 각자 책을 읽다가 저녁에는 와인을 마셨다. 평화로웠다. 연속으로 C를 만난 사흘이 순식간에 지나갔다. 내일은 그와의 다섯 번째 약속이 잡힌 날이다. 오늘 밤 C에게 연락이 오면 틴더를 삭제하고 만나러 가겠다고 말할 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