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트카드에 담는 고유한 시선

네드

네드는 번역가이자 화가다. 영국에서 자랐고 이탈리아에서 그림을 배운 후 세계 곳곳을 돌아다니다 지금은 약혼자와 함께 서울에서 살고 있다. 생의 대부분을 여행으로 채운 네드에게 엽서 위에 그리는 그림은 일기나 다름없었다. “가족이나 친구들이 항상 물어봐요. ‘지금 어디니? 거기서 뭐 하고 지내?’ 그래서 내 일상의 한순간을 포착해 엽서에 그려 그들에게 보내주기 시작했죠.” 네드는 곧 그 엽서가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는 독특한 선물인 동시에 자신의 경험을 타인과 나눌 수 있는 좋은 수단이라는 걸 깨달았다. “연필로 일상을 자유롭게 스케치하다 보면 나의 삶과 이야기에 볼륨이 생기고 깊이가 더해져요. 저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이 자신의 일상을 ‘캡처’해나가길 바라는 마음에서 에어비앤비 트립을 구성했죠.”

드로잉 장소는 청계천으로 선택했다. 서울의 중심에 위치해 접근성이 좋고 숨 가쁘게 돌아가는 도시에서 마치 도피처 같은 느낌을 자아내는 작은 하천이라 스케치하기에 적합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청계천 돌계단에 앉아 연필을 꺼내 그리려는 대상의 구도를 잡는 법과 눈에 보이는 장면을 종이에 옮기는 법을 훈련하는 것이 트립의 첫 단계. 이후 인근 카페로 자리를 옮겨 그림을 본격적으로 그리기 시작한다. 게스트들은 아늑한 카페 테이블에 앉아 시야에 들어온 것을 자신의 스타일대로 자유롭게 표현하는데, 그림이 완성되어 갈수록 무의식에 내재되어 있던 저마다의 개성이 드러난다. 네드는 그림을 그리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는 것도, 그들의 개성 넘치는 작품을 보는 것도 흥미롭다고 이야기한다.

“서울의 어느 한자리에서 연필로 드로잉을 하다 보면 그저 관광객으로 스쳐 지나던 그 장소의 다른 얼굴을 발견할 수 있어요. 내가 앉아 있는 장소가 어떻게 변하는지 사소한 디테일을 눈치채게 되죠. 그곳을 오가는 사람들의 태도도요. 그러한 변화와 차이를 인지하는 과정에서 서울이 새롭게 다가왔어요.” POST CARD FROM YOUR SEOUL

 

 

음식으로 국경 넘기

백지혜

백지혜는 ‘제리코 바 앤 키친’이라는 식당을 거쳐 현재는 ‘제리코 레서피’라는 이름으로 쿠킹 클래스를 운영하고 있다. 전 세계의 다양한 음식에 자신만의 해석을 가미하는 그녀는 1년 전부터 에어비앤비 트립을 통해 모던 한식을 선보이고 있다.

창전동 작은 한옥에서 3시간 동안 이루어지는 그녀의 클래스는 재료를 다듬는 것부터 요리하고 차려내는 것까지 모든 과정을 게스트들과 함께 한다. 그 과정에서 게스트와 교감하는 순간이 트립을 더욱 풍성하게 만든다. “사람들은 이곳에 요리를 배우러 오면서 단순히 요리 지식만을 얻으러 오는 게 아니거든요. 자신을 위해 투자하고 나를 위한 온전한 시간을 갖는 행위 자체가 자존감을 높여준다고 생각해요.”

3시간 동안 요리를 하면서 “너희는 주로 뭘 해 먹니?”라는 질문을 시작으로 다양한 나라의 음식들이 얼마나 다르고 또 비슷한지 이야기하다 보면 누군가의 인생 자체가 자연스럽게 흘러나온다. 그 덕분에 백지혜에게는 기억에 남는 게스트도 많은데 배낭 하나 매고 몬트리올에서 혼자 온 70세 할머니가 특히 그렇다. 30년 넘게 가정의학과 의사로 살아오다 퇴직 후 이곳저곳을 여행한다는 할머니가 자신의 버킷리스트가 분명할 이 여행을 멋지게 실현하는 모습이 인상 깊었다고. 홍콩 비건 레스토랑의 젊은 셰프가 한국의 ‘장’이 궁금하다며 찾아온 적도 있고, 도쿄에서 쿠킹 클래스로 가이세키 요리를 하는 사람이 온 적도 있다. 그럴 땐 각자의 애환을 나누기도 하고 쿠킹 클래스를 하면서 어떤 흥미로운 사람을 만났는지에 관해서도 이야기를 나눈다. 가이세키 요리를 하는 사람과 얘기를 나눈 후에는 백지혜 역시 곧 도쿄로 가 그의 수업을 듣기로 했다. “그런 일들이 저에겐 작은 여행 같아요. 독일에서 혼자 온 청년은 서울에서 클럽을 갔다가 한국 여자에게 반해서 매년 오고 있어요. 사진을 찍는 친구인데 그 친구가 찍은 사진을 보니 평소 내 눈에는 그저 지저분하게만 보였던 골목이나 평범한 서울의 일상이 피사체가 되어 있더군요. 여행이라는 행위는 각자의 시선과 경험으로 완성된다고 생각해요. 그들의 눈을 통해 서울을 새롭게 보고 느낄 수 있어서 좋아요.” JIHAE’S PRIVATE KITCHE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