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투 운동은 ‘당한 사람’으로서의 피해자 고백이 전부가 아닙니다. 연대의 의미가 우선이죠. 남자든, 여자든, 피해자이든 아니든 ‘미투’는 ‘나도 당신의 아픔에 공감한다’, ‘그래서 당신과 연대하겠다’라는 뜻이고, 두 번째는 행동의 의미입니다. ‘나도 가만히 있지 않겠다’ 는 것이 주요한 맥락입니다. 마지막 세 번째는 미래 지향적 의미입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겠다’라는 일종의 자발적인 사회 공동 선언이죠.

 

진선미 의원

‘의심받는 사람은 늘 빈민이고 여성이고 탈북자고 가난한 나라 출신의 외국인이다.’ 작년에 무려 9시간 14분간 이어진 필리버스터를 마무리 짓는 말이었죠? 그 마지막 순간에 소수를 조명했습니다. 아, 그때 정말 절박했어요.

여성과 아동, 장애인 등 소수를 의식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나요? 저 역시 여성이고요. 지역 격차가 심한 동네에서 여고까지 다녔어요. 그때의 경험들이 피부 아래 쌓여 있는 거죠. 지금도 교육 차별, 교육 격차가 문제 되고 있지만 제 때는 음악 선생님이 국토지리도 가르칠 정도로 심각했죠. 학교가 과목별로 선생님을 따로 둘 여력이 안 되니 국토지리 시간에 음악 선생님이 들어와 계속 지도만 그리게 하는 거예요. 참고서 보고 베끼는 거죠. 그걸 고3 때 하고 있었으니···. 그러면서 애들 공부 못한다고 맨날 때리고. 속은 부글부글 끓어오르고, 부당함에 맞서고 싶었지만 나도 무섭잖아요. 범생이로 살던 때라.

그렇게 범생이로 성장했는데(웃음) 어쩌다 호주제 폐지에 앞장서고, 소라넷 폐쇄의 주역이 되었습니까? 그러니까요.(웃음) 변호사로 살면서도 차별에 늘 노출돼 있었어요. 성추행, 성희롱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고, 저 역시 여성이라는 이유로 늘 경계에 서 있는 느낌을 받으며 살아왔으니까요. 제가 사법연수원 갈 때만 해도 정원 5백 명 중 여성이 34명이었어요. 총 30반으로 나누는데 조마다 여자를 최소 한 명씩 배정했어요. 안 그러면 남자들이 자기 조에는 여자가 없다고 불만을 가졌거든요. 아니 뭐, 여자가 기쁨조입니까? 왜 그렇게 홍일점 타령들을 했는지. 말도 안 되게 폭력적인데 그게 자연스러운 시대였어요. 사법연수원 졸업하고 나서 가사 사건도 맡고, 호주제 위헌 소송에 몸담으며 지금의 자리까지 온 것 같아요.

의원님과는 대한민국 여성 인권 역사에서 기념비적 사건인 호주제 위헌 소송 이야기를 안 할 수 없죠. 인생이 호주제 폐지 전과 후로 나뉜다는 말도 하셨고요. 호주제 위헌 소송 변호는 제 인생에서는 상징적인 사건이자 생의 어떤 기점이죠. 문제 제기부터 제도 변화까지 이끄는 데 꼬박 10년이 넘게 걸렸어요. 사법연수원 마친 해에 호주제 위헌 소송 변호를 맡았는데 1999년 처음 이 소송에 투입되고 2005년에 위헌 판결이 났고, 법안이 개정되고 2008년에야 개인별 신분등록제가 만들어졌으니까요.

긴 여정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은 언제인가요? 두세 가지가 기억에 강하게 남아 있어요. 처음 공론화했을 때 호주제는 여자들끼리의 문제라고 하도 공격 받아서 남자들도 관심이 많다는 걸 보여주기 위해 모든 인터뷰나 토론회에는 남자가 대표로 나갔어요. 그래서 그날도 원래 계획대로라면 이석태 변호사님이 토론회에 나갔어야 하는데 다른 일이 생기는 바람에 제가 떠밀려 그 자리를 채웠어요. 그때가 2000년이었는데, 생생해요. 프레스센터 20층 국제회의장이었어요. 시작 시간은 오후 2시인데 오전 11시 30분부터 갓 쓰고 도포 입은 어르신들이 몰려와서 객석을 장악하고 계시더라고요. 막 밥 내놓으라고 하고. 재판도 몇 번 못해본 1년 차 변호사였던 제가 얼마나 겁이 났겠어요. 심장이 벌렁벌렁.

브이넥 블랙 원피스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난장판이었네요.(웃음) 삿대질하고 욕하고···. 그때 제가 그 어르신들의 위선을 봤어요. 연단에 가정법률상담소 소장님, 관련 전문가와 활동가분들이랑 함께 앉아 있었거든요. 이분들한테는 소리소리를 지르고 쌍욕을 해요. 그런데 30대 초반의 초짜 변호사인 저한테는 욕을 안 해요. 변호사라는 지위와 권한에 눌리는 거예요. 제가 토론을 잘해서 그런 게 아니고요. 딱 한 마디 해요. ‘거 참 못되게 배웠구먼’ 하고요. 그날 이후로 의지가 더 불타올랐죠.

살면서 쌓아온 전투력 덕분인가요. 작년 행정안전위원회 국정감사 현장에서 경찰청장 자리에 위장형 카메라를 설치하고 무려 경찰청장을 몰래 촬영했죠? 아니 어떻게 경찰청장 몰카를 생각했습니까? 누군가는 이를 두고 ‘2017 국감 최고의 장면’으로 꼽기도 했어요. 국회에 있다 보면 메시지를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방법에 대해 고민을 많이 하게 돼요. 처음에는 너무 보여주기 식은 아닐까 고민도 있었습니다. ‘쇼 한다’고 생각하는 분들도 있고요. 그런데도 강행한 건 몰래카메라의 존재에 대해 익히 알고 있지만 그 폐해에 무감각한 사람들에게 이는 명백한 중대 범죄이며 ‘누구라도, 나도, 그리고 경찰청장도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경각심을 주고 문제 재인식의 계기를 만들고 싶기 때문이었어요. 위장형 카메라를 처음보고 저도 속았어요. 우리 팀의 한 친구가 물병을 들고 오길래 물을 주나 보다 했거든요. 감쪽 같더라고요. 더 충격적인 건 몰래카메라 3대를 구입하는 데 10만원도 안 들었다는 거예요.

문제 제기 후 곧바로 ‘위장형카메라의 관리에 관한 법률안’을 발의했습니다. 몰카를 판매하거나 소유하려면 신상 정보를 등록하게 만드는 내용이죠. 재작년 4월, 온라인 시민 입법 플랫폼 ‘국회톡톡’에서 이와 관련해 1만8천여 명의 국민이 입법 제안을 해주셨습니다. 그 의견을 받아 전문가 간담회와 토론회를 거쳐 작년에 제가 대표로 법안을 발의했고요. 그 과정에서 해외 사례를 찾아보기도 했는데 유사 사례가 단 한 건도 없었어요.

전례 없는 사안이니만큼 반대 의견도 있었을 것 같습니다. 처음에는 방해가 심했어요. 위장형 몰래카메라 또한 기술의 발전으로 만들어진 결과물이니 이 역시 산업에 기여하는 부분이 있다는 주장이죠. 그런데 육안으로는 카메라인지 뭔지 식별할 수 없을 정도로 기술이 발전하는 동안 관련 범죄에 대응해서는 아무것도 만들어진 것이 없잖아요. 몰래카메라를 이용한 성범죄는 지난 5년간 드러난 것만 해도 1천7백여 건이고 해마다 40여 종의 새로운 위장형 카메라가 출시되고 있어요. 여성들이 두려워하니까 반대로 몰래카메라 탐지기가 개발되고, 몰래카메라가 정교해질수록 탐지기 성능이 좋아지고요. 얼마나 모순적인 상황입니까. 범죄로 처벌하려고 해도 몰래카메라가 얼마나 만들어졌는지 어디에서 누구에게 얼마나 팔렸는지에 대한 통계가 없어요. 경로 파악이 전혀 안 되는 거죠. 규제가 불가능하더라도 경로 정도는 사전에 조절할 수 있도록 등록제를 실시하자는 취지의 법안을 냈죠.

2015년에는 소라넷 폐쇄를 주도했습니다. 그런데도 유사한 형태의 제2, 제3의 소라넷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리벤지 포르노, 유튜브 BJ 성범죄 등 디지털 성범죄가 빠르고 다양하게 일어나고 있지만 이를 다루는 법과 제도는 과거에 머물러 있다는 지적이 있습니다. 디지털 성범죄가 심각한 건 한번 유포되면 개인 차원에서 절대로 회복이 불가능하다는 겁니다. 법적인 사후 조치는 사실상 의미가 없어요. ‘사회적 인격 살인’이고, 피해자가 자살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사안이 사안이니만큼 소라넷 폐쇄 당시에도 법과 제도에 대한 문제 제기가 있었고, 제 스스로 한계를 목격하기도 했지만 중요한 의미는 있었던 것 같아요. 소라넷이 이슈화되고 폐쇄되면서 사회 전반에 이것이 중대 범죄임을 인식시킨 계기는 만들었다고 봅니다. 그런 의미에서 한 단계 넘어섰다고 생각해요. 경찰도 관심을 갖게 되어 사법공조를 통해 해외 서버였지만 기민한 도움을 받아 폐쇄할 수 있었고 운영자를 체포했으니까요. 이 과정이 중요한 경험이 되어 이후 유사 사이트를 감시하고 빠르게 대처할 수 있는 선례를 만들었다고 생각합니다. 지난해 9월 정부 차원의 디지털 성범죄 종합대책도 발표됐고요.

나아가 몰카 상습범 가중 처벌을 위한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일부개정 법률안’을 발의했죠. 호기심으로, 장난으로 한 촬영이 얼마나 큰 범죄인지 인식을 심어줘야 한다고 봐요. 최근 발생하는 불법 촬영 범죄를 살펴보면, 가해자가 다수의 피해자를 반복적으로 상습 촬영하고 유포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2015년 워터파크 사건만 해도 가해자들이 2백 명이 넘는 피해자를 상습적으로 촬영했고, 지난해 10월에도 모텔 종업원이 탁상시계형 위장형 카메라를 구입해 3개월 동안 1백 명을 촬영하다 적발되는 사건이 있었어요. 이에 상습 촬영의 경우 형량의 2분의 1이 가중되는 법안을 냈습니다.

19대 국회는 성폭력 친고죄 폐지라는 의미 있는 순간이 있었습니다. 의원님께서 20대 국회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여성 관련 안건은 무엇인지요? 20대 국회에서 이뤄내야 할 역사적인 숙원 중 하나가 개헌이죠. 개헌을 통해 성별에 따른 차별과 폭력을 없애고 실질적 평등을 촉진하기 위한 기틀을 마련해야 한다고 봅니다. 고용, 재정, 복지 등 모든 영역에서 적극적인 조치를 취해야 함을 헌법에 명시하고 모든 사람이 임신과 출산으로 차별받지 않도록 명확히 해야 합니다. 또 저는 우리 사회에서 요구가 크게 일고 있는 사법개혁특별위원회(이하 사개특위)의 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사개특위에서 검찰과 검찰 조직 내의 성범죄와 관련된 기록과 현안, 향후 관리 시스템과 조직 내 대응 방안 등을 꾸준히 모니터링하고, 방향을 제시하고, 구체적인 실천을 현장에서 확인하는 것 또한 매우 중요한 현안이고요.

마지막으로 여혐과 남혐이라는 대립을 극복하고 대한민국의 여성운동은 어떤 방향으로 진화해야 한다고 보나요? 미투 운동은 ‘당한 사람’으로서의 피해자 고백이 전부가 아닙니다. 연대의 의미가 우선이죠. 남자든, 여자든, 피해자이든 아니든 ‘미투’는 ‘나도 당신의 아픔에 공감한다’, ‘그래서 당신과 연대하겠다’라는 뜻이고, 두 번째는 행동의 의미입니다. ‘나도 가만히 있지 않겠다’, ‘당신과 함께 행동하겠다’라는 것이 주요한 맥락입니다. 마지막 세 번째는 미래 지향적 의미입니다. ‘미투’는 ‘과거의 아픔을 딛고 그런 비극이 없는 미래로 나아가겠다’, 폭력적이고 왜곡된 권력을 휘둘러 이뤄지는 모든 종류의 성폭력에 대해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겠다’라는 일종의 자발적인 사회 공동 선언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