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랑 참 비교된다”

제아무리 잘나보았자 속세의 중생일 뿐인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항상 남과 나를 비교한다. 하지만 다른 누구도 아닌 연인이 나를 누군가와 비교해 비난하는 건 차원이 다른 문제다. 이 발언이 나쁜 이유는 이어질 대화가 지극히 뻔하기 때문이다. ‘그럼 걔랑 만나지 왜 나랑 사귀느냐’는 반박에 지지않고 ‘그럴 걸 그랬다’고 확인 사살을 하는 흐름은 ‘너답지 않게 왜 이래’, ‘나다운 게 뭔데’에 이어 더 이상 드라마에서도 나오지 않는 대화로 이어진다. 연애는 둘만의 이야기일 때 가장 평온하다. 다툼도 포함해서 말이다. 그리고 솔직히 누가 부모님에게도 듣기 싫은 말을 연인에게 듣고 싶겠는가.

 

“그게 그렇게 서운해?”

이야기를 실컷 다 들어놓고도 예민보스 취급하는 데는 당할 재간이 없다. 자매품으로 ‘그게 그렇게 잘못이야?’가 있다.

 

“우리 헤어져”

습관성 이별 통보 증후군을 보이는 사람들이 있다. 연애 스토리의 끝은 사실 헤어지는 것이다. 그런 마지막을 두려워하는 감정은 당연하다. 그런 마음을 이용해 싸움의 주도권을 잡고자 하는 건 지극히 치사한 행동이다. 이런 유형의 사람은 상대방이 알겠다며 순순히 이별을 받아들이는 것 같으면 오히려 역정을 낸다. 애초에 상대가 잡아줄 걸 예상하며 한 발언이라는 증거다. 다툴 때 번번이 헤어지자고 으름장을 놓는 쪽이 당신이라면 깊이 반성해야 한다.

 

“네가 그래서 안 된 거야”

네가 그래서 승진 시험에 떨어진 거야, 네가 그래서 전 여친이랑 헤어진 거야, 네가 그래서 지금도 부모님에게 얹혀사는 거야, 네가 그래서 친구가 없는 거야 등. 싸움의 본론과 별 상관 없는 인신공격인 ‘네가 그래서’ 시리즈는 서로에 대한 쓸데없는 증오만 키운다.

 

“심한 욕”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내 부모에게도 들어본 적 없는 욕을 하는 인간은 상종하지 않는다.

 

“내 친구가 그러더라”

인용은 논문을 쓸 때는 필수다. 하지만 남자친구와 언성을 높일 때는 그다지 추천할 만하지 않다. 특히 한쪽의 잘잘못을 가리는 상황에서는 더욱 그렇다. 친구 ◯◯도 네가 그러는 거 이상하다고 하더라, 내 동생이 너에 대해 한 말이 맞았다 등. 싸우다 보면 어떻게든 상대의 과오를 강조하고 싶기 마련이지만, 많은 경우 듣는 사람으로선 당신이 뒤에서 제삼자에게 둘 사이의 속사정과 치부를 미주알고주알 논했다는 원망스러운 마음과 수치심이 먼저 들고, 그 때문에 정작 잘못했다는 죄책감은 뒷전이 된다. 소위 사랑싸움도 때로는 전략적일 필요가 있다. 남의 말은 본질을 흐리는 사족일 뿐이다.

 

“그래 네가 이겼다”

계속 이어질 연애에서 오늘만 싸울 것이 아니기에, 어떻게 싸우느냐 만큼 어떻게 싸움을 끝낼지도 중요하다. 내 잘못이 더 크다면 제대로 사과하고 상대가 누그러지기를 바랄 일이고, 그건 아니지만 격앙된 분위기를 감당하기 힘들다면 지금은 계속 얘기해도 해결이 나지 않으니 마음을 가라앉히고 나중에 얘기하고 싶다고 휴전 요청을 하면 된다. 그럼에도 자존심 혹은 욱하는 마음에 비아냥거리듯 네가 이겼다는 식으로 말하며 싸움을 끝내려 한다면 안타깝게도 그건 지는 게 못내 분해 쏟아내는 지질한 복수처럼 들리는 데다 십중팔구 오만 정이 떨어진 상대의 표정을 마주하게 된다.

 

“왜 시비야”

다툼은 서로 이해하지 못하는 데서 출발한다. 왜 짜증이 심한지, 왜 연락이 안 되는지, 왜 말을 그렇게 하는지, 얘기를 하다 보면 반드시 이유가 있고 대부분의 경우 결국 납득하게 된다. 연애는 서로에 대한 의문과 이해의 반복이다. 너와 나는 같지 않기에. ‘왜 시비야’는 그런 상대방을 한순간에 시비 터는 양아치로 만드는 마법의 문장이다. 물론 성미가 정말 고약해 사사건건 싸움을 거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경우라면 무슨 부귀영화를 위해 계속 사귀는지? 결국 이 말은 당신을 이해하고 싶어 나선 사람에게 따지지 말라고 윽박지르는 격이다. 이에 문장 중간 ‘또’를 넣으면 부아가 치미는 수준이 배가된다. 왜 또 시비야. 입씨름을 시작하기도 전부터 쓸데없이 전투력을 상승시키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