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이크아웃 문학 시리즈 전석순 김학찬 소설가

전석순 화이트 니트 스웨터 제이리움(Jrium), 스트라이프 재킷과 팬츠 모두 자라(Zara), 로퍼 카르미나 바이 유니페어(Carmina by Unifair). 김학찬 니트 스웨터 세인트 제임스(Saint James), 와이드 팬츠 와이엠씨(YMC), 스니커즈 라코스테(Lacoste).

‘테이크아웃’ 기획이 흥미로웠던 지점은 무엇인가? 전석순(이하 전) 어디에서든지 읽을 수 있도록 작고 가볍게 만들어졌다는 것. 독서를 딱딱하지 않고 좀 더 말랑말랑하게 해줄 것 같은 판형과 사이즈가 이번 기획에서 가장 좋았다. 처음에는 소설은 독서를 하며 이미지를 떠올려야 하는 작업인데 고정된 이미지가 나오면 책의 재미가 반감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번 기획에 참여하며 생각이 달라졌다. 일러스트레이터와 의견을 주고받지 않은 덕에 같은 내용을 두고 다른 이미지가 나와 소설이 더 풍부해진 느낌이다. 이미지가 제한될 거라고 생각했는데 오히려 더 부풀어 올랐다. 김학찬(이하 김) 나는 오히려 믿고 맡겼기 때문에 불안감이 더 컸다.(웃음) 책은 결국 언어로 소통한다. 작가가 언어를 통해 이야기하고 비평도 언어로 나오며 독자의 감성도 그렇다. 영화화되지 않는 이상 책이 이미지로 표현될 기회가 있다면 표지라고 생각한다. 표지가 없는 책은 없고, 한 권에 하나의 그림이 있는 셈인데 이번 <우리집 강아지>에는 10장의 그림이 실렸더라. 내 소설을 해석한 그림이 10장. 그림이 더 많았어도 좋았을 것 같다.

이번 기획을 위해 어떤 작품을 골랐나? 새로 썼다. 단편소설이 책으로 나오다 보니 결과물을 고칠 기회가 없지 않나. 그래서 새로 쓰고 싶었다. 한 작품을 쓰고 나면 다른 작품을 쓰기 위해 그 작품과 헤어져야 하지 않나. 그런데 그렇지 못한 작품이 있다. <아홉 개의 밤>은 탈고 후에도 가장 오랫동안 헤어지지 못한 작품이다. 여기에 감정 노동에 대한 관심이 맞물려 이 작품을 선택했다. 언젠가 실제로 소설에 등장한 감정 측정기가 등장하지 않을까? 그런 시대가 실제로 온다면 무서울 것 같다.

단편소설을 무엇이라고 정의할 수 있을까? 독자 입장에서 단편소설은 30분간 할 수 있는 극치의 무언가 같다. 30분 만에 이야기 하나를 온전히 들려준다. 무심결에 지나쳐버리는 사람 혹은 사물에 집중해서 바라보는 것. 가령 최은미 작가의 <정선>을 읽은 후라면 숟가락이 이상해 보일 것이다. 늘 쓰는 숟가락이 책을 읽은 후로 이상하고 낯설게 보이는 것처럼 평범했던 사물과 장면을 다른 방향에서 바라볼 수 있게 하는 것, 그것이 단편소설의 중요한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글보다 이미지가 중요한 지금의 시대에도 흔들리지 않는 글의 힘은 무엇일까? 영상은 이미지를 받아들이고 해석하고 분석하는 데 초점을 맞추는데, 소설은 텍스트 너머를 생각해야 하기 때문에 나 스스로 이미지를 만들어내야 한다. 인물을 상상하지 않으면 이해할 수 없고 소설을 제대로 느낄 수도 없다. 우리는 점점 생각할 시간도 없고 생각하기보다 시스템에 맞춰 급하게 살아가는 것 같다. 그런데도 그 시스템을 의심하지 않으며 뭔가를 떠올리지 않고 생각하고 고민하는 것을 시간 낭비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소설이란 결국 시간 낭비처럼 보이는 과정을 지나야 느낄 수 있는 작업이다. 영상을 볼 때는 이해하지 못한 장면이 나오면 좀처럼 따라잡을 수가 없다. 이전 장면을 미처 이해하지 못했는데 진행돼버리면 힘들다. 그런데 텍스트로 이해하는 소설은 가장 정보가 없는 매체여서 이해의 폭이 자유롭다. 책은 보다가 멈춰도 다시 읽는데 문제가 없지만 영상은 어제 5분 보다가 오늘 5분 보라고 하면 못 보겠다. 정보가 가장 없는 게 글의 힘 아닐까.

무엇 혹은 누구를 위해 글을 쓰는가? 김 사회적 약자를 위해 쓴다고 생각했는데 나 자신을 위해 쓰더라. 자신을 위해 쓰면 결국 모두를 위해 쓰는 것이기도 하고. 내 소설 분위기가 전반적으로 발랄하다고 생각하는데 실은 가장 힘든 순간에 쓴다. 가장 힘들 때 유머러스하게 쓰면 내게 도움이 되기도 하고. 나를 위한 이야기를 하는 게 가장 오래 글을 쓸 수 있는 방식이다. 언젠가 예술인 복지 재단에서 진행하는 심리 치유 캠프에서 심리 상담사가 내게 소설을 쓰는 이유를 물었다. 곰곰 고민하다 보니 소설만이 유일하게 내가 하는 일 중 오로지 나를 위한 일이더라. 습작을 쓰던 때는 나를 알기 위해 썼고, 그 뒤로 몇 년은 나에게서 벗어나기 위해 썼다. 우리는 일인칭 주인공으로 살고 있지만 다른 사람을 주인공으로 소설을 쓰면 나에게서 벗어나게 되니까.

소설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있다면? 김 재미. 이야기를 전달하는 수단이 많은데 왜 소설을 선택했느냐고 묻는다면 재미 때문이다. 읽을 때도, 쓸 때도. 재미없는 걸 읽으면 화가 나고 반대로 재미있는 걸 읽으면 기분이 좋다. 읽는 사람은 한 번 읽지만 쓰는 사람은 계속 고쳐야 하지 않나. 재미없으면 할 수 없는 일이다. 차이. 그동안 있었던 것들과 무엇 하나라도 다른 점이 있어야 한다.

한 편의 소설을 완성하기까지 가장 큰 고비가 있다면 언제인가? 김 초고를 다 쓴 순간, 괜찮다고 생각될 때가 굉장히 위험하다. 착각일 테니까. 그런데 초고를 다 썼는데 망했다 싶으면 죽고 싶을 만큼 힘들다. 잘 써질 때. 문제가 있기 때문에 잘 써지는 거다. 잘 써지면 보통 어디서 듣거나 읽은 이야기다. 그런데 더 무서운 건 다 쓰고 나서 비슷한 이야기를 만났을 때. 책을 다 쓰고 나면 겹치는 제목이나 내용이 없는지 불안한 마음에 검색해보곤 한다.

초고가 완성된 후 가장 먼저 읽는 사람은 누구인가? 김 예비 아내. 아마 나를 만나는 것보다 내 소설을 읽는 게 더 짜증 나지 않았을까.(웃음) 처음엔 쓰자마자 보여줬는데 이제는 눈치 봐가며 보여준다. 언제 줘야 더 기분 좋게 읽을까 하는 마음으로. 초고를 읽어주는 사람이 있다는 건 무척 고마운 일이다. 해답을 얻길 바라기보다는 최소한 나만 읽은 게 아니라는 사실이 격려가 된다. 아무에게도 보여주지 않는다. 부끄럽기도 하고, 글을 읽는 것도 노동이라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는 것 같다. 그러다 결국 편집자에게 가장 먼저 보여주게 된다. 가끔 고민을 상담하는 익명 게시판에 소설의 일부를 올릴 때도 있다. 가령 이런 줄거리의 소설이 있는데 아는 사람 있느냐는 식으로 질문하거나 주인공의 사연을 조금 변형해 올리기도 한다. 이에 대해 거짓말 아니냐는 댓글이 달리면 리얼리티가 떨어진다고 생각한다.

언젠가 소설로 쓰고 싶은 기억에 남는 순간이 있다면? 전 부모님이 춘천에서 오랫동안 세탁소를 하셨는데 최근에 주변이 개발되며 건물을 헐었다. 세탁소에 달린 단칸방에서 나고 초등학교 3학년 때까지 그곳에서 지냈다. 어린 시절을 보낸 곳이니 내게는 내심 든든한 공간이었다. 건물이 해체되고 세탁소의 기계가 빠지는 과정을 사진으로 남겼다. 부모님과 해체된 세탁소를 배경으로, 그리고 건물이 다 없어진 후 길이 되어버린 자리에서도 사진을 찍었다. 언젠가 아버지의 세탁소를 소재로 소설을 쓰고 싶다. 어려운 질문이다. 가장 중요한 건 보여주지 않고 계속 숨겨둔 채 그다음 것을 보여주려 한다. 그런데 지금 드는 생각은 내 소설 스타일이 장면을 잘 그리지 않는다는 거다. 등단할 때 심사평에서도 ‘이렇게 이야기하는 것이 다소 이상하다’는 맥락의 평이 있었다. 내 소설은 구체적인 장면이 떠오르지 않아 이 질문이 더 어렵게 다가오는 것 같다.

소설가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김 의심. 프로의심러가 되어야 한다. 인터뷰하는 사람은 무슨 생각으로 인터뷰하는 걸까, 이 질문은 왜 나온 걸까, 계속 의심하는 거다. 그리고 무엇보다 가장 필요한 건 자신에 대한 의심이다. 호기심과는 다르다. 호기심보다 좀 더 어둡달까. 유연함. 몸도 마음도. 계속 앉아서 써야 하니 몸도 유연해야 하고 마음도 유연해야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다. 나이 들수록 유연함이 점점 사라지지 않나. 그게 가장 위험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