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이크아웃 문학 시리즈 최은미 황현진 소설가

최은미 니트 원피스 마인(Mine), 샌들 토리 버치(Tory Burch). 황현진 버건디 벨트 원피스 쁘렝땅(Prendang), 구두 헬레나 앤 크리스티(Helena & Kristie).

‘테이크아웃’ 기획이 어떤 점에서 흥미로웠나? 최은미(이하 최) 단편소설 한 편이 한 권의 책이 된다는 것. 보통 여러 편의 단편소설이 책 한 권으로 묶이기 때문에 장편보다 단편이 독자의 접근이 제한적이다. 황현진(이하 황) 일러스트를 더한다는 기획의 결과물이 무척 궁금했다. 다른 장르의 예술에 호기심도 조금 생기고 다른 장르의 사람들은 어떻게 작업할지 알고 싶었다. 함께 작업한다고 하니 즐겁기도 하고, 기대도 되고.

한 명의 작가와 일러스트레이터가 한 권의 책을 완성했다. 최 글과 일러스트의 비중이 비슷하다. 이전에는 소설에 삽화가 들어가는 것에 큰 관심이 없었다. 소설은 언어 자체로 완결성이 있기에 다른 무언가가 필요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번에 그림이 들어간 책의 완성본을 보고 소설의 분위기나 정서가 얼마나 확장될 수 있는지 실감했다. 일러스트가 소설과 잘 맞았다. 나의 글을 다른 형태로 경험해서 새로웠다. 조금 의지가 되기도 했다. 나의 이야기를 다른 방식으로 보여주는 사람이 있다는 점이 힘이 되었다.

테이크아웃 시리즈를 위해 이번 단편을 선택한 이유는 무엇인가? 이전에 발표한 작품 중 한 편만으로도 하고 싶은 이야기를 모두 전달할 수 있는 것을 찾았다. 여러 단편을 묶어서 낼 때와 선택의 기준이 달랐다. 소설에 사람의 이야기를 담는 것을 좋아하는데, 한 사람의 삶에 대해 단편으로 쓸 때는 삶 전체를 드러내기보다 부분을 들여다보려고 한다. <부산 이후부터>는 한 사람에 대해 비교적 많은 이야기를 하고 있기 때문에 이 작품을 골랐다. 발표 작품 중 사람들이 좀더 같이 읽어주었으면 하고 애정이 가는 작품이 <정선>이었다.

단편소설이란 뭘까? 초등학생 사이에서 슬라임이 유행하지 않나. 바닥 풍선을 만들어 뾰족한 것으로 찌르면 형태가 으스러지는데 단편소설도 그런 것 같다. 어느 한 부분을 딱 꼬집었는데 갑자기 나를 둘러싼 세계의 색깔이 순간적으로 달라지는 경험을 담은 것이 단편소설 아닐까? 한 지점을 포착하거나 꼬집었을 때 환기되는 것을 표현하기에 가장 적절한 형식이다. 비슷한 맥락의 이야기인데, 단편소설은 뭔가를 터뜨리는 도구 같다. 풍선이라는 세계가 있으면 누군가는 손으로 뜯어서, 누군가는 힘을 줘서 터뜨리는데 그 도구가 단편소설인 거다.

글보다 이미지가 중요한 시대가 아닌가. 그럼에도 글이 가진 힘이 있다면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글을 읽고 쓰는 것은 즉각적인 감각을 통하는 것이 아니라 사고 과정을 한 번 거친다. 그 과정이 주는 자유로움이 있다. 영화를 보는 것도, 음악을 듣는 것도 좋아하지만 글을 읽을 때만 나를 대입하게 된다. 영화를 볼 때는 그 주인공이 나라고 가정하지 않고 재미있고 즐겁게 시간을 보내는 반면, 글은 타인의 이야기란 걸 알면서도 내 이야기인 것처럼 읽게 된다. 주인공이 존재하는 공간이 좀 더 직접적으로 느껴진다. 읽은 후에도 계속 잔상과 함께 질문도 남고.

무엇 혹은 누구를 위해 글을 쓰는가? 나 자신을 위해. 내가 나를 긍정할 수 있을 때가 글을 쓸 때이다. 전에 잠깐 심리 치료를 받은 적이 있는데 시간이 지난 뒤 상담 선생님께 내 단편소설집을 보내드린 적이 있다. 책을 읽은 선생님이 ‘은미씨가 자신을 알기 위해 여전히 애쓰는 게 느껴졌다’는 말을 해주셨는데 그때 생각했다. 나는 나를 알아가기  위해 글을 쓰고 있구나. 쓰지 않거나 읽지 않으면 내가 나를 싫어할 것 같다. 작가가 되기 위해 등단하고자 노력했고, 계속 글을 쓰는 사람으로 살아가려고 한다. 그런데 막상 소설을 쓰는 그 순간에는 누구도 위하지 않는 느낌으로 쓰려고 한다.

한 편의 소설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무엇인가? 작가의 색깔. 비록 완성도가 떨어지더라도 그 작가만의 뭔가가 느껴지면 그 소설이 좋다. 우리는 보통 타인에게 엄격하다. 작은 실수나 잘못 혹은 죄가 될 수도 있는데 소설로 얘기한다면 그런 행동에 대한 이유까지는 아니어도 정당성이 있어야 한다. 인물의 맥락, 행동의 논리.

한 편의 소설을 완성하기까지 가장 큰 위기가 있다면? 맥락과 이어지는 얘긴데, 소설 속 인물을 지나치게 보호해서는 안 된다. 행동에 대해 맥락을 짚는 것이 아니라 설명하고 싶어질 때가 있다. 아무도 위하지 않는 마음과 방식으로 써야 하는데 구구절절 변명하려고 할 때가 고비다. 나에게 실망스러운 순간이기도 하고. 갑자기 기발한 아이디어가 떠오를 때. 이런 생각이 든다. ‘이렇게 재미있는 생각을 아무도 안 했을 리가 없어. 누군가 분명 썼을 거야.’ 글을 쓰는 행위가 부질없게 느껴지면서 허무감과 고립감이 찾아올 때도 좀 위험해지는 순간이다.

소설을 완성한 후 가장 먼저 누가 읽나? 문예창작과 다닐 때 하던 습관 때문에 초반에는 친구들에게 보여줬다. 그런데 글을 쓰다 회의감이 드는 시기가 있다. 그럴 때면 다른 사람들의 평가를 반영하지 않고 내가 오롯이 책임지겠다는 마음으로 몇 년을 붙들고 있을 때가 있다. 그럴수록 자신감은 더 떨어진다. 요즘은 끝까지 붙들고 있지 않고 마지막으로 넘기기 일주일 전, 3일 전쯤에 함께 공부했던 친구 딱 한 명에게 보여준다. 완성된 소설을 누군가에게 통째로 보여주는 경우는 별로 없다. 대신 한 장면이나 단락을 가족에게 읽어주곤 한다. 어떨 때는 스마트폰 음성 메모에 녹음해서 한번 들어본다. 전체는 아니고 짧은 단락 단락을.

최근에 경험했던 일 중 소설로 남기고 싶은 순간이 있다면? 1980년대쯤인 것 같은데, 초여름에 시멘트 담장 앞에서 찍은 누군가의 어린 시절 사진을 본 적이 있다. 누구 집에나 있을 법한 어린 시절 사진이었는데 그 사진 속 여자아이에 대해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필름 카메라를 들고 다닐 때가 많은데, 한번은 필름을 현상했더니 내가 찍지 않은 사진이 들어 있었다. 물속인 것 같았고 명확하게 무엇이 찍혔는지 알 수 없는 사진이었는데, 인물은 다들 외국인이었다. 현상소에 전화해 내 것이 아니라고 했더니 그럴 리 없다며 내 것이 맞다고 했다. 기분이 이상했다. 그 문장이 주는 위압감도 있고. 낯설고 기이했던 그 순간을 글로 쓰고 싶었는데 일기로만 남겨두었다. ‘소설로 써야지’ 하고 마음먹으면 이상하게 잘 써지지 않는다. 얼마 전에는 병원에 갈 일이 있었는데 모니터에 떠 있는 대기 환자들의 이름을 봤더니 모두 생소한 이름이었다. 그 이름의 주인에게는 실례일 수도 있지만 언젠가 소설에 등장시키고 싶어 적어두었다.

소설가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뭘까? 지금 쓰는 이야기를 내가 잘 알고 있다고 착각하지 않는 것. 아는 이야기, 아는 사람을 쓰는 것이 아니라 소설을 쓰며 인물에게 일어나는 변화와 삶을 자꾸 확인하고 들여다봐야 한다. 내가 모르는 것을 쓰면서 알아간다고 생각하며 쓴다. 소설가에게 가장 중요한 건 이야기에 대한 욕구가 아닐까. 쓰지 않을 수 없게 하는 어떤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