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플 사랑 연애 소개팅어플

 

진실 게임

소개팅 앱으로 B를 알게 됐다. 앱 안에서 커플로 매칭되는 건 그리 어렵지 않지만 이 만남이 앱 밖으로 이어지는 일은 드물기에 B와 실제로 만나게 된다는 사실만으로도 어느 정도 맞는 구석이 있는 것이라고 판단했다. 카페에서 만나 서로 마음에 들면 저녁 겸 술을 마시러 가기로 했는데 우리는 보자마자 서로 호감을 느꼈고, 술을 곁들인 저녁 자리에서 바로 진지하게 만나보기로 했다. 나는 오랜 연애가 끝난 후 결혼할 사람을 찾으려고 이 앱을 이용하던 터라 조건, 성격, 외모 중 딱히 모난 데 없고 괜찮으면 시간 낭비를 줄이는 편이 더 좋았다. 딱 하나 마음에 걸리는 점이 있다면 B가 오랜 회사 생활을 정리하고 사업을 준비 중이라는 것. 하지만 좋은 학교를 나온 B가 똑똑한 학교 후배들과 의기투합해 벤처기업을 구상중이라는 사실은 오히려 B의 창창한 앞날을 예고해주는 듯했다. 며칠 후 나는 친한 친구들에게 남자친구가 생겼다는 사실과 그의 신상 정보를 알렸다. 공교롭게 친구 C의 남자친구가 B의 대학교 1년 선배였다. 나는 반가운 마음에 B의 이름과 학번을 알려줬다. 그런데 C에게서 돌아온 대답은 의외였다. “그런 이름은 들어본 적 없다는데? 오빠가 그때 과대표였기 때문에 1년 후배를 모를 리 없거든. 너 아직 남친 나이도 제대로 모르는 거 아냐? ㅋㅋ” C 말대로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내가 B의 나이를 헷갈렸을 수도 있다. B가 재수를 했거나 혹은 삼수를 했을지도 모른다. B에게 넌지시 물었다. “오빠, 그럼 05 학번이겠네?” B는 그렇다고 대답했다. C의 남자친구 이야기를 했더니 “1년 선배가 어떻게 우리 학번 애들을 다 알겠어 ㅎ 점심은 뭐 먹었어?”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쎄한 기분이 들어 C의 남자친구 후배의 도움을 받아 그 학교 05 학번 졸업 앨범을 볼 수 있었다. 설마 했는데 어디에도 B의 이름은 없었다. 놀라서 B에게 바로 연락했더니 B는 당황하는 듯하다가 “이따가 다시 전화할게”라며 전화를 끊었고 그 뒤로 지금까지 연락이 없다. 학력 위조에 잠수 이별까지, 7년 사귀고 바람난 전 남친보다 더 끔찍했다. 이래서 소개팅 앱은 안 된다는 거구나. 앱은 빛의 속도로 삭제했는데 그 안에 내 기록이 아직 남아 있을 생각을 하면 창피해 견딜 수 없다. M(교사, 31세)

 

인스타그램 사냥꾼

‘앗, 저도 어제 그 공연장에 갔었는데’. A에게 처음 온 DM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A는 꽤 오래전부터 내 인스타그램의 팔로어였고, 나 역시 섬세하고 차분한 A의 취향이 마음에 들어 맞팔로 하고 있었다. 서로의 게시물에 ‘좋아요’를 누르는 정도의 사이였지, 직접적인 소통을 한 적은 한 번도 없었던 터라 놀랍기도 하고 반가운 마음도 들어 바로 답을 했다. 내가 답글을 쓰는 족족 바로 ‘읽음’ 표시가 떴고 그의 답변 역시 빠르게 이어졌다. 생각보다 취향이 같은 부분이 많아 한창 재미있게 대화를 나누다 보니 휴대폰 배터리가 곧 방전될 지경이었다. 그렇게 긴 시간 동안 DM을 나눈 적은 처음이었다. 휴대폰이 꺼질 것 같다고 했더니 그가 불쑥 내 전화번호를 물었다. 이후 우리는 자연스럽게 카톡을 주고받는 사이로 발전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둘 다 좋아해서 각자 인스타그램에 한 번씩 올렸던 카페에서 만나기로 했다. 연락을 하며 A의 계정을 다시 쭉 살펴보았다. 평범하다고 생각했던 그의 외모가 제법 귀여워 보이고, A가 가지고 있는 소품들이 하나하나 감각적으로 보였다. 드디어 나도 취향이 맞는 남자친구를 만나게 되는 걸까? 가슴이 떨렸다. A를 만나기 전날 밤, 모르는 사람에게 DM이 왔다. ‘혹시 @(A의 계정)를 아냐, 나는 A와 사귄 지 두 달 정도 된 여자친구다’라는 내용이었다. A가 연애 중일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한 나는 자초지종을 설명했고, 그 여자는 곧바로 두 달 전 A가 그녀에게 보냈던 DM을 캡처해서 내게 보냈다. ‘앗, 저도 어제 그 영화 봤는데’. 소름이 돋았다. 그녀는 A를 만나면서 뭔지 모르게 느낌이 좋지 않아 A의 인스타그램을 해킹했다고 고백하며 우리 두 사람 말고도 A가 그런 식으로 DM을 보낸 여자가 수십 명이라고 했다. A는 그날로 여자친구는 물론 DM 어장에 관리하던 물고기들까지 한꺼번에 잃었다. 나는 인스타그램 세상에 환멸을 느끼고 그날 이후 인스타그램을 멀리했다. 이후에도 DM으로 쪽지를 보내는 남자들이 몇 있었지만 ‘믿고 거른’다. S( 대학원생, 26세)

 

절친 된 사연

물론 그 앱이 그런 앱은 아니다. 하지만 연애를 안 한 지 8개월이 다 되어가니 솔직히 섹스가 너무 하고 싶었다. 이 안에서 몇 개월 동안 몇 명의 여자를 만나 밥도 먹었지만 만난다고 다 인연은 아니더라. 이럴 바에야 차라리 욕구 충족이 필요한 사람들끼리 만나는 게 어떨까 싶었다. ‘빠른 오프 원함’. 상태 메시지에 이렇게 써두니까 전보다 훨씬 더 많은 메시지가 왔다. 사진이 프로필에 대문짝만하게 걸려 있으니 내게 쪽지를 보낸 사람은 내 외모를 괜찮게 생각한다는 뜻이다. 나는 그중 평소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과 다른, 은밀한 판타지를 자극하는 사진 속 여성에게 답장을 보냈다. 만남은 금방 성사됐다. 집은 서로 멀지만 회사는 둘 다 강남. 나는 그리 고급스럽지 않은, 그러나 소주가 쭉쭉 들어가는 강남의 오래된 포장마차 앞에서 만나자고 제안했다. 오랫동안 회사와 헬스장만 오가는 생활 패턴을 유지했는데 퇴근 후 갈 곳이 있다는 사실만으로 심장이 뛰었다. ‘어디쯤? 전 도착. 앞에서 담배 피우고 있을게요’. 그녀에게서 쪽지가 왔다. 하룻밤 같이 보내고 헤어질 생각으로 휴대폰 번호도 알려주지 않은 것이다. 뛰다시피 약속 장소로 가니 이목구비가 크고 짙은 화장을 한 여자가 날카로운 눈으로 나를 살피며 담뱃불을 비벼 껐다. “저 혹시…” “아… 네. 안녕하세요.” “들어갈까요?” 우리는 쭈뼛거리며 술집 구석에 자리를 잡았다. 막상 마주 앉으니 생각보다 훨씬 더 어색했다. 나도 그녀도 이런 일은 처음이었다. 뭐 드실래요? … 오늘은 쉬셨다고요? … 서로 상대에 대해 아는 게 없어서 할 말도 없었다. 이럴 때 기댈 수 있는 건 작은 소주잔뿐. 한 잔 두 잔 홀짝이다 보니 어느새 우리 앞에 술병이 쌓였다. 두 병에서 세 병으로 늘어날 때쯤 우리는 일회용 플라스틱 컵 사용 제한에 대한 의견을 주고받고 있었다. 그것도 반말로. 그날 우리는 소주 6병을 나눠 마셨고 새벽 2시가 넘은 무렵 당연한 듯 서로 휴대폰을 내밀어 전화번호를 주고받은 후 집으로 돌아갔다. 물론 각자의 집으로. 그날 이후 그 친구와 나는 매일 카톡으로 시시콜콜한 대화를 주고받고 저녁에 술 한잔하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절친이 됐다. 그리고 그 앱 속 내 상태 메시지는 다시 이전으로 돌아갔다. ‘운동과 강아지를 좋아해요. :)’ K( 약사, 34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