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정 퓨즈서울 남성복

자기소개 ‘퓨즈서울’이라는 브랜드를 운영하고 있는 김수정. 퓨즈서울은 기존에 내가 운영하던 ‘꽃 피는 시절’(이하 ‘꽃시’)이라는 쇼핑몰에서 하나의 라인으로 나왔다가 독립 해 지난 10월 론칭한 브랜드다.

FUSE SEOUL 주로 앉아서 일을 하다 보니 살이 쪄서 트레이닝팬츠를 샀다. 기능성 운동복인데도 오래 앉아 있으니 소화불량이 올 정도로 불편했다. 어느 날 남동생의 트레이닝팬츠를 입어봤는데 너무 편한 거다. 왜 여자 바지는 운동복마저 라인이 강조돼야 하는지 의문을 가졌다. 그렇게 남성복에 대해 공부하기 시작했는데 여성복에는 없는 기능이 많다는 걸 알게 됐다. 슬랙스에 히든 스트레칭 밴드라고 해서 허리가 편하게 늘어날 수 있도록 하는 밴드가 숨겨져 있고 셔츠가 빠지는 것을 방지하는 실리콘이 붙어 있는 식이었다. 여성복은 라인을 강조하며 ‘아름다움’에 더 초점이 맞춰져 있지 않나. 내가 공부해온 여성복 역사에는 그런 옷이 없었다. 이 의문을 인스타그램에 올렸더니 많은 사람이 공감의 뜻을 표했다. 그래서 내가 만들기로 했다. 여자라는 이유로 불편한 옷을 감수할 필요는 없는 옷. 퓨즈(FUSE)는 전기라는 뜻도 있지만 도화선이라는 의미도 가지고 있다. ‘Anyone can be a fuse(누구나 도화선이 될 수 있다)’가 우리의 캐치프레이즈다. 퓨즈의 룩 북 속 모델은 모델치고 살집이 있는 편이다. 짧은 머리에 메이크업을 하지 않고 겨울옷이라 티가 나지 않지만 노브라로 촬영했다. 내가 추구하는 여성상이다.

남성복 공장으로 남성복 매장에 가서 어마어마한 양의 샘플을 받고 직접 브랜드에서 바잉을 하기도 하면서 모은 옷을 MD, 나, 남동생이 전부 직접 입어보며 공부했다. 그중 특별히 핏이 좋은 바지는 조금 사이즈 조정을 해서 그대로 만들기도 했는데 그 과정도 쉽진 않았다. 그 옷을 만든 남성복 공장에 이 바지를 똑같이 여자 사이즈로 만들어달라고 하니 그런 작업은 안 한다며 거절했고 여성복 만드는 공장으로 가서 이 남자 옷을 여자 사이즈로 줄여달라고 했더니 퀄리티가 너무 떨어졌다. 결국 공임비를 더 주고 남자 봉제 공장에서 옷을 다시 만들었다. 이 외에 바지는 밑위를 길게, 아우터는 일자 라인에 어깨에 패드를 넣어 더 힘을 주는 식으로 내가 직접 디자인하고 있다.

FUSE의 옷 ‘꽃시’에서 일하면서 여성복 바지의 사이즈가 날로 작아지는 걸 볼 수 있었다. 이걸 누가 입나 싶을 정도로. 브랜드마다 사이즈가 다른 것도 문제다. 여기서는 M을 입는데 다른 데선 그 치수가 L인 경우가 있다. 그럴 때 대부분의 여성은 ‘살쪘나 보다’고 자책한다. 퓨즈에서는 그동안 기형적으로 작게 나왔던 바지 체계를 우리 기준으로 다시 만들었다. 타 브랜드보다 사이즈가 넉넉해 ‘살쪘다’는 생각 같은 건 안 들 거다. 사이즈는 XS부터 XL까지 다양한 체형을 커버할 수 있도록 만들고 밑위가 길어서 앉아도 불편하지 않고 주머니도 깊다.

사람들은 나에게 ‘페미니즘으로 돈 벌려고 하네’라는 말을 많이 들었다. 기존에 운영하던 ‘꽃시’와 상반되기 때문일 거다. 하지만 올 초 남성을 여성으로 미러링해서 새해 달력을 만들었고 다양한 체형의 일반인 모델을 모집해 S/S 시즌 컬렉션 촬영을 준비하고 있다. 이러한 프로젝트들을 통해 진실성을 보여주며 점점 긍정적인 반응을 얻고 있다. 입어본 사람들에게서 너무 편하다는 말을 압도적으로 많이 듣는다. 라인 들어가는 옷이 없으니 그럴 수밖에. 오늘도 고객에게 항상 XL만 입을 정도의 하체 비만인데 퓨즈의 청바지를 입고 너무 편해서 지퍼 올리는 걸 까먹었다는 내용의 메시지를 받았다.

매출 총매출은 8억원 정도. ‘꽃시’에 비해 많이 부족하지만 성장 가능성이 보이는 액수라고 생각한다.

이 사회에 반(反)하고자 하는 것 옷으로 젠더를 구분 짓는 것에 계속 반대해나갈 생각이다. 단순히 성별이 다른 것뿐인데 왜 여자에게만 코르셋을 강요하는지 이해되지 않기 때문이다. 퓨즈서울이 더 커져서 ‘여자가 이렇게 쇼트커트를 해도, 노브라로 다녀도, 눈썹 정도는 없어도 멋있구나’라는 느낌을 주고 이러한 영향력을 사회 전반에 끼치고 싶다.

지금 가장 관심 있는 사회 이슈 청소년 페미니즘. 어린 친구들이 용기를 내 ‘스쿨 미투’를 하는 걸 보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성인들의 미투보다 사회적으로 관심도가 많이 떨어지는데 그런 친구들이 결국 그 틀을 다 깨는 것이다. 더 많은 관심이 필요하다.

룰 브레이킹이란 “너 왜 굳이 그런 걸 해? 원래 하던 거 해, 매출도 잘 나오잖아”라는 말을 많이 들었다. 그런 것을 ‘굳이’ 하는 게 룰 브레이킹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