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보라 김보라감독 벌새

1994년 어느 날 아침. 여느 때처럼 출근과 등교를 위해 사람들이 오가던 성수대교가 무너져 내렸다. 김보라 감독의 첫 장편영화 <벌새>는 1994년을 지나는 중학생 은희(박지후)의 맺고 또 무너지는 관계를 보여준다. 생계 때문에 자신에게 관심을 쏟을 시간이 없는 부모의 사랑을 바라고, 오빠의 폭력에 어떻게 대항해야 할지 길을 찾으며, 친구에게 상처받고 다시 화해하며, 그리고 한자 선생님 영지(김새벽)에게 따듯한 위안을 받고 또 한 번 예상하지 못한 관계의 붕괴를 겪으며 은희는 1994년을, 그리고 삶을 살아낸다.

<벌새>에서 배우 박지후가 연기한 열네 살 은희에게는 1994년 당시 감독 자신의 모습이 일부 투영됐다. 영화는 물론 픽션이지만, 그 시대 실제 겪은 감정을 이 시대의 영화에 적절하게 담아내는 과정이 필요했을 것 같다. 어떤 유명한 감독님이 “영화가 개인적이지 않으면 무슨 소용이 있느냐”는 말을 한 적이 있다. 개인적이라는 것이 곧 직접 겪은 일을 뜻하는 것은 아니고, 영화를 보고 나서 그 영화를 만든 감독을 알 것 같은 감정이 들지 않으면 영화의 의미가 없다는 뜻이다. 영화나 소설은 보거나 읽고 나면 감독이나 작가의 마음을 알 것 같은 작품이 있는 반면, 공장에서 찍어낸 것 같은 작품도 있다. 작품을 통해 만든 사람을 짐작할수 있어야 그 작품은 비로소 의미가 있다. 포장지만 보이는것에는 끌리지 않는다. 나 역시 내 영화가 그런 느낌이 들었으면 했다. 내 세계관 같은 것이 드러나는. <벌새>는 자전
적인 이야기가 아니라 허구다. 다만 내 감정적인 기억과 출발점, 지향하는 지점이 나에게서 시작됐지만 여기에 엄청나게 수학적인 각색 과정과 여러 이야기의 직조 과정이 있었다. 영화를 본 사람들에게 내 세계관과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이 굉장히 친밀하게 다가가기를 바랐다. 이 영화는 허구지만 내 마음속 깊은 곳과 맞닿아 있다. 자신의 삶을 예술로 승화해 보여주는 것이 예술가의 몫이라고 생각한다. 자신에게 일어나는 일이 힘든 일이든 기쁜 일이든 나만의 일이라고 생각하면 그냥 자기 것으로 끝나지만, 이걸 공동의 기억으로 만드는 것이 예술가의 역할인 것 같다.

주인공 은희는 중학생이지만 그렇다고 이 영화가 성장영화라고 생각되지는 않았다. 인생은 결국 크고 작은 고난의 연속이고, 계속 버텨나가는 것이 삶이라는 점에서 말이다. 그 말이 나도 좋다. 여성 작가의 영화만 다루는 해외 잡지가 있는데, 그 잡지에서도 왜 <벌새>를 여성 성장영화로 얘기하는지 모르겠다고 평한 적이 있다. 그 말에 공감했다. 주인공이 중학생이라는 이유로 성장영화나 청소년영화로 분류되기 쉬운데 그러면 영화의 내용을 지나치게 한정짓는 느낌이다. 우리가 지금 겪는 감정과 은희가 겪는 감정은 사실 크게 다를 것이 없다. 외양이 다를 뿐 감정의 근원은 같은 것이다. 어린 시절 겪은 감정이 나이 들었다고 찾아오지 않으리라는 법은 없다

영화의 배경이 왜 1994년인가? 성수대교가 무너진 해를 배경으로 영화를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성수대교 붕괴라는 사건이 은희가 맺어온 관계의 붕괴를 보여주기도 하고, 한국 사회에서 여러 붕괴가 일어날 때 이 아이가 어떤 식으로 삶을 헤쳐나가는지 보여주는 것이 중요했다. 어떤 이야기를 쓰겠다고 결심하고 시나리오를 완성했다기보다는, 오글거리는 표현이기는 한데, 이야기가 내게 찾아왔다. 떠오르는 것을 글로 적기 시작해서 그 시절을 써보고 싶었다.

‘벌새’라는 이름이 예쁘다. 한 인터뷰에서 ‘벌새’의 부지런한 날갯짓이 희망을 향한 움직임처럼 느껴진다고 말한 걸 읽었다. 그런데 영화를 보니 희망보다는 삶이란 결국 버텨나가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더라. 여러 반응이 있다. 은희는 앞으로 또 어떻게 사나, 엔딩이 너무 슬프다, 영화가 우울하다, 엔딩에서 묘한 희망을 느꼈다. 삶 자체가 그렇지 않은가. 하루만 보더라도 종일 기분이 좋을 수는 없다. 오전에 기분이 좋았다가 오후가 되면 가라앉기도 하고. 영지가 은희에게 남긴 편지처럼 삶은 행복하고 좋은 것, 슬프고 절망적인 것이 모두 있다. 관객이 이 영화를 보며 삶 자체를 느낄 수 있으면 좋겠다.

영화에 대한 평론가의 글도 많은데, 그중 기대하지 않았던 내용이 있었나? 앞서 얘기한 성장영화라고 한정 지을수 없다는 평도 좋았고, 부산국제영화제에서 프리미어가 끝나고 찾아본 어느 관객의 리뷰도 기억에 남는다. ‘감정이 폭풍같이 소용돌이쳤다’고 했는데, 영화가 굉장히 잔잔하지만 감정은 폭풍처럼 휘몰아친다는 것이었다. 굉장히 오랫동안. 일어나는 사건이 많지 않아 보이지만 은희의 감정은 폭풍처럼 요동친다는 거다.

맞다. 관계의 갈등이나 그로 인한 사건을 직접 드러내는 일이 많지 않지만 은희의 인생에서는 큰일들이 벌어진다. 그 평이 마음에 크게 와 닿았다. 그리고 어떤 평론가가 에드워드 양 감독의 작품에 비유해주셨다. 내가 좋아하는 감독님을 언급해서 기억에 남는다.

상영 시간이 2시간이 넘는다. 결코 포기할 수 없는 장면이 있다면 어떤 장면인가? 원래 러닝타임이 3시간이 넘었다.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상영하기 전에는 2시간 40분 버전도 있었다. 정말 괴롭게 괴롭게 2시간 18분으로 편집했다. 영지가 나오는 시퀀스는 거의 대부분 살렸다. 그리고 성수대교를 찾아가는 장면. 사실 영화에서 딱 한 장면을 꼽으라고 하면 떠오르지 않는다. 이 영화는 작은 순간이 촘촘히 모여 나중에 힘을 발휘하는 것 같다. 하나의 클라이맥스가 있다기보다는 이 작은 것들이 소중하다. 누군가는 별것 아닌 장면이라고 느낄지 모르지만, 그 조그만 것들이 모여 그림을 이루기 때문에 편집할 때 더 어려웠다. 편집감독님과 1년 가까이 함께 고민하며 작업했다.

첫 장편영화를 완성하기까지 잃고 싶지 않은 목표가 있었나? 사람에 대해 알고 싶다는 것. 인간의 마음이 가진 지형을 알고 싶었다. 자신의 마음을 깊이 들여다보면 자신을 알게 될 뿐만 아니라 타인도 이해하게 되는 것 같다. 이 영화 속 은희라는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마음 깊은 곳까지 들여다보면 아이의 엄마와 아빠, 오빠와 언니, 나아가주변 사람들도 이해되는 그림을 만들고 싶었다. 그리고 어느 캐릭터도 악마로 그리고 싶지 않았다. 영화에 등장하는 은희의 아빠와 오빠는 매우 가부장적인 인물이다. 그렇다고 나쁘기만 한 인물로 그리지 않았다. 가부장적인 면이 있지만 이들조차 여러 맥락과 그림자를 가지고 있다는 점을 더 많이 드러내고 싶었지만 러닝타임상 많이 보여주지 못해 아쉽다. 하다못해 서울대를 가자고 외치는 선생님도 영화에서 소외되지 않고 한 인간으로 비치기를 바랐다. 영화를 만들 때 가장 하기 쉬운 실수가 주인공을 더 힘들어 보이게 하기 위해 주변에 나쁜 사람을 만드는 거다. 그 함정에 빠지지 않으려고 했다. 은희를 괴롭히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들에게도 그들만의 서사를 보여주고 싶었다. 은희를 괴롭히는 오빠도 나중에 엉엉 우는 연약한 모습을 보여주는 것처럼.

아버지가 함께 병원에 간 장면에서는 감정을 잘 표현하지 못하는 아버지에게 연민이 생겼다. 하지만 동생에게 폭력을 휘두르는 오빠의 마음은 헤아리고 싶지 않더라. 나 역시 폭력을 합리화하거나 그 폭력의 편을 들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었다. 폭력은 절대 허용돼서는 안 되며 그것에 절대 동의하지 않는다. 다만 내면의 뒷이야기를 들어주고 싶었다. 그것 역시 작가로서 나의 몫이기도 하고. 그래서 영지의 입을 빌려 오빠의 폭력이 얼마나 잘못된 것인지에 대해 말했다. 영지의 목소리가 곧 작가로서 내 목소리인 셈이다.

극 중 은희를 연기하는 박지후 배우는 연기 경험이 많지 않은 어린 배우다. 경력이 많은 배우들과 호흡을 맞출 때와는 달랐을 것 같다. 내가 배우 복이 많았다. 이런 배우들을 만난 건 행운이 아닐까 싶다. (박)지후도 자신이 은희라 고 생각하며 작업했는데, 촬영에 들어가기 반년 전부터 알고 지냈다. 본격적인 촬영에 들어가기 앞서 1박 2일 동안 한강공원에 가서 같이 놀면서 타로점도 봐주고 삼겹살도 먹고 다음 날 브런치까지 같이 먹고 나서 어머니에게 보낸 적이 있다. 그날이 참 좋았다. 물론 촬영하다 보면 힘든 일도 있고 서운한 적도 있고, 어린 배우가 현장에서 혼자 많은 것을 감당하는 것 같아 짠한 마음이 들기도 했는데, 한강공원에서 함께 보낸 기억이 있어 작업을 더 잘 마칠 수 있었다. 그리고 지후가 시나리오를 아주 잘 이해했다. 놀라울 만큼. 자기의 언어로 시나리오의 글을 이해하고 행간을 읽어내더라. 놀라웠고 고마웠다. 현장에서도 그랬지만 편집본을 볼 때 더 그랬다. 현장에서는 배우들을 나이와 상관없이 함께하는 배우로 대했다. 지후뿐 아니라 다른 배우들과도 개인적인 이야기도 많이 나누며 가까워졌다. 배우들이 시나리오에 감정적으로 깊이 들어가 영화에 대한 얘기를 하다 가슴이 벅차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배우들이 시나리오를 사랑해줘서 감사했다.

한국 영화계에서 여성 감독으로서 장편영화를 만들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 첫 장편을 완성하기까지 가장 힘든 점은 무엇이었나? 무엇보다 장편으로 데뷔하거나 장편 영화를 활발히 만드는 여성 감독이 거의 없다는 사실. 그런 지점이 무의식적으로 영향을 미쳤다. 주변에 그런 여성 감독이 많으면 ‘나도 할 수 있지’ 하게 되는데 주변에 없으니 ‘과연 내가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내 안의 기저에 그렇게 깊이 박힌다. 여러 제도적인 부분을 비롯해 영화제 심사위원의 성별이 한쪽으로 편향돼 있는 점은 말할 것도 없고. 우리 사회에서 여성에게 내면화된 유리 천장 같은 것을 느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를 완성했다. 지나온 시간을 돌이켜봤을 때 스스로 가장 칭찬하고 싶은 부분이 있다면? 끝까지 해낸 것. 뭔가를 바라고 영화를 시작한 건 아니 다. <벌새>를 만들어야 한다는 마음만 있었고, 내 안의 것과 이야기를 잘 직조하고 싶었다. 말하자면 장인의 마음으로. 이야기를 굉장히 잘 구현하고 싶었고 그 이야기가 누군가의 마음에 닿기를 바랐다.

첫 장편을 내기까지 꽤 오래 걸렸다. 오랜 시간 포기하지 않고 만들어낼 수 있었던 원동력은 무엇인가? 멋지게 대답하고 싶은데.(웃음) 그냥 내가 계속 이 일을 하고 있더라. 언젠가 들은 명상 수업에서 선생님이 자기가 진심으로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는지 알기 위해서는 자신에게 ‘과연 내가 돈을 받지 않고도 이 일을 할 수 있을까’ 질문하는 거 라고 농담처럼 말씀하셨다. 그런데 나는 돈을 쓰면서 이 일을 하고 있더라. 사람은 살면서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고 싶어 하지 않나. 내 생각과 마음을 다른 사람들에게 들려줬을 때 상대가 반응하는 건 기적 같은 소통이다. 글로 내 세계를 말할 수 있는 것도 좋고. 영화를 만드는 일은 나의 많은 부분을 드러내고 표현할 수 있는 좋은 기회다. 그런 면에서 굉장히 감사하고. 그리고 사람의 마음에 닿을 수 있는 예술 작품은 결국 자신을 들여다보게 한다.

영화감독을 인터뷰하다 보면 가끔 영화가 도대체 뭐길래 이토록 지치지 않는지 궁금할 때가 있다. 최근 타이베이 영화제에 참석해 대만의 ‘모던 시네마’라는 회사에 갔다. 필름으로 후반 작업을 하는 거의 유일한 업체인데 최근 지아장커 감독의 <애쉬(Ash is Purest White)>를 이곳에서 작업했다. 장이머우 감독의 옛날 영화 필름 복원 작업도 하고. 현상 과정도 볼 수 있었다. 영화를 꽤 오래전에 시작했는 데 거의 모든 단편을 16mm 필름으로 만들었다. 그때는 모두 필름이었으니까. 그러다 30대 초반에 마지막 단편을 필름으로 만들었다. 주위에서 왜 아직도 필름을 쓰느냐고 했지만 난 필름을 무척 사랑했다. 빛을 쏴서 필름을 통해 이야기를 보는 것이 좋았다. 그 때문인지 모던 시네마를 둘러보는데 울컥하면서 ‘내가 영화를 이렇게 많이 사랑하는구나’ 하고 느꼈다. 영화가 왜 좋으냐고 묻는다면 구체적으로 대답하긴 어렵다. 그냥 좋다. 힘들 때면 영화를 보며 위안을 얻기도 하고.

<벌새>는 베를린 국제영화제 제너레이션 14플러스 부문 그랑프리 수상에 이어 여러 국제영화제에서 작품상을 수상했다. 첫 장편이 많은 주목을 받았으니 다음 작품에 대한 부담감으로 이어질 수도 있겠다. 그런 얘기를 많이 듣는데 사실 별생각이 없다.(웃음) 처음 개봉하는 거라서 할 일이 너무 많더라. 두더지 잡듯이 일하고 있다. 개봉하고 나면 열심히 쉬어야지. 생각하고 있는 작품은 있다. 다음에도 여성 인물의 이야기를 하게 될 것 같다. 지금까지 여성의 목소리가 잘 전달되지 않거나 발화되지 않았기 때문에 앞으로 할 수 있는 이야기가 많다. 여성만의 매력적이고 신선한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영화를 꿈꾸는 여성 영화인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자신을 작게 두지 말라는 것. 예전에 사람들이 두려워하는 건 실패가 아니라 성공이라는 글을 읽은 적이 있다. 자신이 크나크고 빛날 수 있는 존재라는 데 대한 두려움, 자신이 가진 무한한 가능성에 대한 두려움. 조지프 캠벨이 말한 지복과 천복처럼 살아가며 자신이 꼭 해야 하는 일이 있다고 생각한다. 삶에 기여하는 각자의 방식이 있는 것이다. 어떤 사람은 식당을 운영하며 맛있는 음식으로 기여하고, 어떤 사람은 아이를 낳아서 그 아이에게 빛을 전하고. 나 역시 자신을 작게 둔 시간들이 있었다. 그래서 더더욱 여성 영화인들이 자신을 작게 두지 말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