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장류진

니트 터틀넥 톱, 레더 스커트 모두 코스(COS).

2018년 창비신인소설상 당선작인 소설가 장류진의 ‘일의 기쁨과 슬픔’의 등장은 일종의 사건에 가까웠다. 섬세하고 적나라하게 다듬어낸 여성, 노동자의 계급 보고서가 펼쳐내는 희비극에 동시대 젊은 독자들은 격하게 공감했고 ‘판교 하이퍼리얼리즘 소설’, ‘극사실주의 판교테크노밸리 호러’ 등 생경한 장르라 호명했다. 그리고 지난가을, 표제작 ‘일의 기쁨과 슬픔’을 포함한 8편의 소설을 묶은 소설집 <일의 기쁨과 슬픔>이 출간됐다. 작가는 서툶과 미숙함은 서둘러 지우고 기민하고 노련하게, 눈치껏 살아가야 하는 20~30대 여성 직장인과 이들이 감내해야 하는 각자도생의 삶을 다양한 방식으로 조명한다. 대한민국에서 살아온 여성이라면, 등장 인물 누구 한 사람에게는 이입하게 될 이야기들이다. 당신이 누구이건 비슷한 사건을 경험했거나, 동일한 감정을 느꼈거나, 그 사건의 목격자일 것이므로.

2018년 창비신인소설상 당선작 ‘일의 기쁨과 슬픔’이 창비 웹사이트에 공개되고 조회 수 40만 회를 기록했습니다. 데뷔 1년 만에 출간한 소설집은 지금까지 13쇄를 찍었지요. 작가에게는 특별한 한 해였을 것 같습니다. 돌아볼 시간조차 없을 만큼 정신없이 지나온 것 같아요. 습작하던 때부터 등단한다고 해도 작가의 길이 보장되는 건 아니라는 말을 많이 들었어요. 그럼에도 데뷔라는 기회가 주어졌으니 매 순간 기회를 놓치지 말아야겠다 싶었고요. 소설집을 내는 시기는 작가가 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책으로 묶을 수 있을 만큼 작품이 쌓여야 하는데, 1년 사이 청탁이 많이 들어온 편이고 오는 청탁 막지 않고 다 하겠다고 한 거죠.(웃음) 그동안 하고 싶어도 기회가 없어 하지 못했으니까 이제는 다 잡아야겠다는 생각으로요.

10년 가까이 IT업계에서 기획자로 일하다 작가가 되었습니다. 돌고 돌아 결국 쓰게 만드는, 쓰는 사람이 된 힘은 어디에서 비롯됐다고 보나요? 세상에는 글을 쓰지 않으면 답답한 유형의 사람이 있는 것 같아요. 소설이나 픽션은 아니었지만 대학생 때 사회학을 전공하며 어떤 식으로든 글을 썼거든요. 졸업과 동시에 취직하다 보니 지난 4년간 해온 루틴이 뚝 끊긴 거죠. 그 상황이 어리둥절하더라고요. 일기를 쓰거나 블로그를 운영 하는 성향은 아니고, 그래도 뭔가를 쓰고 싶다는 마음에 글쓰기 강좌를 등록했어요. 그렇게 계속 쓰게 됐어요.

소설집 대부분의 작품에 차분하지만 기민한 인물들이 등장합니다. 이 인물들이 조금씩 작가 본인과 닮았을 거라 상상하게 됩니다. 소설 속 주인공이든, 주변 인물이든 저와 완전히 동일한 인물은 잘 안 만들게 돼요. 의식적으로 피하게 되죠. 대신 모든 인물에 제 모습이 아주 조금씩 들어 있다고 봐요. 그런 면에서 소설 속 특정 인물이 나를 닮았다기보다 소설 전체가 나를 닮은 느낌이 들어요. 딸기 우유에 딸기가 들어 있는 만큼.(웃음) 딸기가 들어 있지는 않지만 전체적으로는 딸기의 맛과 향이 느껴지는.

회사에서 조직 생활을 하는 20~30대 여성과 이들을 둘러싼 에피소드가 소설의 출발이자 몸통이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대한민국에서 살고 있는 20~30대 여성의 ‘일의 기쁨과 슬픔’에 대해 정리된 생각이 있다면요? 우리 사회와 회사, 조직이 여성에게 친절하지 않은 것 같아요. 제 소설 ‘잘 살겠습니다’에 나오듯이 입사하기까지도 힘들지만, 운 좋게 조직에 속하게 되더라도 그 안에 여성 리더는 극소수잖아요. 그 상황을 보며 10년 뒤에도 내가 이 조직 안에 있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많이 할 수밖에 없는 세대인 것 같아요. 우리 사회가 여성에게 친절한 공간이 아니라는 생각을 자연스럽게 하게 되는 거죠.

불친절한 공간에서 어떻게든 계속 살아야 하고요. 임신과 출산, 육아로 경력을 이어가기도 어렵지만, 회사에서 어떤 가십이나 루머에 휘말리면 여성 직원에게 더 가혹하게 행해지는 일들도 분명 있고요.

이런 환경이 작가의 소설에 등장하는 여성들처럼, 우리를 눈치 빠르고 기민하도록 진화시킨다는 생각이 들어요. 모나지 않게 조직 안에 흡수돼야 하는 거죠. ‘센스 없다’는 평가가 큰 치욕일 정도로, 센스는 중요한 덕목이 됐고요. 무엇이 우리를 이토록 노련하게 만들었는지 생각해본 적 있나요? 두 가지를 이유로 꼽을 수 있을 것 같아요. 첫째는 하강하는 경제 곡선 위에서 오늘보다 내일이 더 좋을 거라는 믿음이 없는 상황 때문이라고 봐요. 그렇기 때문에 당장 오늘 내가 잘 살아남으려면 기민해야 하는 거죠. 둘째로 여성은 이 사회가 나를 환영하지 않는다는 걸 알기 때문에 더 눈치를 보게 되고요. 누가 날 싫어하면 그 사람 눈치를 더 보게 되니까요. 바이링궐(bilingual)이라는 말이 있잖아요. 피식민지 사람들이 두 언어를 사용하듯 나의 언어도 사용해야 하지만, 나를 지배하는 이들의 언어도 사용해야 하는 거죠. 여성도 이와 비슷한 것 같아요. 조직 자체가 나의 공간이 아니라고 느끼기 때문에 나의 언어와 그쪽의 언어 모두 빠르게 습득해야 하죠.

동시대를 살아가는 여성과 이를 둘러싼 사회를 묘사하는 과정에서 매우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돈의 단위가 등장합니다. 연봉과 생활비, 경조사비, 가사도우미의 일당, 아메리카노와 택시 비용에 관한 정확한 수치가 등장하고, 이로써 덧붙은 현실감이 이야기를 더 생생하게 만듭니다. 돈에 대해 이토록 노골적으로 묘사한 소설이 또 있나 싶어요. 내가 이렇게 숫자를 많이 쓰고, 돈 이야기를 많이 썼다는 건 나중에 알았어요. 데뷔하기 전 습작할 때도 그랬고 작가가 된 이후에도 마찬가지인데 스스로 글 쓰는 사람이기 이전에 한 사람의 생활인이라는 감각이 더 크게 느껴지고, 또 그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생활은 다 돈으로 이뤄지니까요. 그리고 지금껏 소설을 읽을 때도 이런 식으로 돈에 관해 세세하게 표현하는 이야기를 좋아했어요. 권여선 작가의 ‘손톱’, 김애란 작가의 ‘노찬성과 에반’이라는 작품에도 돈이 1천원 단위까지 나오거든요.

명확한 이해관계의 세계에서 이성적으로 이해하기보다 마음으로 헤아릴 수밖에 없는 복잡한 인물과 상황도 등장합니다. 평소 작가가 주변 인물이나 상황을 바라보는 시선이 궁금해요. 신형철 평론가의 <정확한 사랑의 실험>에 “우리는 ‘타인은 단순하게 나쁜 사람이고 나는 복잡하게 좋은 사람’이라고 믿지만, 우리 모두가 대체로 복잡하게 나쁜 사람이다”라는 말이 있어요. 이 말에 깊이 동의하는데 저 역시 일상에서도 그렇고, 소설을 쓰고 인물을 그릴 때도 100% 악인 혹은 완전무결한 선인은 없다고 생각해요. 선악이 분명하지 않은 인물을 그리는 걸 좋아하고요. 그러지 않으면 저 스스로 재미를 느끼지 못하는 것 같아요.

레이어가 켜켜이 쌓인 인물과 사건을 글로 풀어내는 데는 작가의 섬세한 관찰력도 큰 역할을 하리라 짐작하게 됩니다. 좋든 싫든, 사람을 잘 관찰하는 것 같아요. ‘나의 후쿠오카 가이드’에도 사람이 싫다기보다 행동이 어쩐지 징그러운 사람들이 있잖아요. ‘아유, 징그러워’ 하면서도 이 사람이 어떤 행동을 하는지 계속 보게 되는 것 같아요. 그런 변태 같은 관찰이…(웃음) 그리고 흔히 자신이 만든 인물이지만 글 속에서 스스로 행동하는 순간이 있다고 하잖아요. 사실 다른 작가들이 이런 말을 하면 안 믿었거든요. 말도 안 되는 소라고, 자기가 써놓고 무슨 말이냐고 생각했었어요. 근데 저 역시 글을 쓰면서 이런 순간을 몇 차례 경험한 것 같아요. 처음부터 짜놓은 것이 아니라 쓰는 과정에서 ‘어? 인물이 이런 식으로 말을 하네?’ 하고 깨닫게 되는 순간들. 예를 들면 ‘잘 살겠습니다’에서 빛나 언니를 한정식집에 옮겨놨더니 이 언니가 의자를 밟고 일어나서 부감 숏으로 음식 사진을 찍는 거예요. 그런 순간들이 있었던 것 같아요.

소설가 장류진

반면에 작가의 소설을 두고 가볍고 단편적이라는 평도 있습니다. 동시대 청년의 삶을 생생하고 속도감 있게 풀어낸 점이 가벼운 인상을 주는 것 같아요. 그런데 동의할 수 없는 것이 저는 책을 읽으며 오랫동안 곱씹을 단서가 가득한, 전혀 가볍지 않은 이야기라고 느꼈거든요. 여성 독자들이 주로 그런 평을 해요. 최근 <서늘한 여름밤>이라는 팟캐스트에 출연했는데 한 진행자의 “어떻게 이 이야기를 가볍다고 할 수 있는지 모르겠다. 이런 삶을 안 살아봤나?”라는 말에 녹음하는 도중에 조금 울었어요. 저조차도 남들이 가볍다고 하니까 ‘내 건 가볍지 뭐’ 하고 당연하게 생각했던 것 같아요. 수상 심사평에도 가볍다는 표현이 있었거든요. 칭찬의 의미였지만.(웃음) 그러다 여성 독자들에게 가볍지 않다는 말을 들으면 ‘맞아, 이렇게 봐주는 분들도 있지’ 하는 생각이 들어서 좋아요.

무엇을 보고 느낄 때 쓰고 싶어지나요? 직접 본 것일 수도 있고, 상상한 것일 수도 있는데 계속 생각나는 특정 이미지나 말이 있을 때 쓰게 되는 것 같아요. 왜 자꾸 그 생각이 나는지는 모르지만 이유가 있겠지 하고 쓰는 편이에요.

좋은 이야기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작가가 사랑하는 이야기에는 어떤 공통점이 있나요? 마지막 페이지를 읽었을 때, 마지막 문장을 읽었을 때 쉽사리 다음 소설로 넘어가지 못하거나 책을 덮지 못하게 하는 작품이 좋은 이야기라고 생각해요. 마지막을 읽었을 때 당시 느꼈던 감정이 평생 갈 것 같은, 마음에 남는 것을 계속 느끼고 싶게 만드는 이야기들이요. 읽은 지 10년이 지나 이제는 내용이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더라도 그때 느꼈던 감정만은 생생한 이야기를 좋아해요.

첫 소설집을 완성하는 과정에서 덧씌워진 것, 빠져나간 것이 있다면요? 덧씌워진 건 나를 믿어야겠다는 거예요. 쓰는 도중에는 불안하거든요. 이런 걸 써도 될까, 완성할 수 있을까, 이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하는 생각 때문에요. 글을 시작하는 단계에서 특히 더 그렇고요. 이제 의심은 좀 덜고 스스로를 더 믿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나를 기계라고 봤을 때 이 기계가 돌아가는 메커니즘은 잘 모르지만, 어쨌든 뭘 넣었을 때 이렇게 책 한 권이 나왔으니까 원리는 몰라도 성능은 믿어야겠다고요. 빠져나간 것은 책을 내고 보니 이 소설 한 편 한 편이 내 것이라는 어떤 소유의 마음이 사라졌어요. 내 이름으로 책이 나오긴 했지만 온전히 내게 귀속되었다기보다 출판사의 책, 독자의 책이라는 생각이 크게 들어요. 작품 스스로 갈 길을 간다는 느낌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