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3월 <타임> 표지를 장식한 밴드 U2의 프런트맨 보노 관련 기사 제목은 ‘보노가 세상을 구할 수 있을까?’였다. 이 기사가 나오기 전인 그 해 1월, 보노는 스위스에서 열린 다보스포럼에 참가해 빌 게이츠와 나란히 앉아 기아와 빈곤 퇴치 문제를 논의했다. 이후 그는 2004년 빈곤과 질병 종식을 위한 기구 원(ONE)을 공동으로 설립했고, 2005년에는 국제앰네스티 양심대사상을 수상하는 동시에 <타임>이 선정하는 올해의 인물에 오르며 또다시 주목받았다.

지난 12월 8일, U2가 결성 43년 만에 처음으로 한국 땅을 밟았다. 오래 기다려온 2만8천여 명의 3040세대 팬들은 일요일 저녁 시간의 여유를 기꺼이 반납하고 구로 고척스카이돔으로 모여들었다. U2의 전속 무대 디자이너 윌리 윌리엄스는 가로 60m, 세로 14m의 초대형 8K 스크린 위에 빨려들 듯 생생한 사진을 펼쳐 가슴 벅찬 눈호강을 선사했고, 보노는 ‘분단된 남북’을 향해 ‘평화의 메시지’를 설파했다. 가장 감동적인 퍼포먼스는 끝에서 세 번째 곡 ‘Ultraviolet (Light My Way)’. 여성 인권을 이야기하는 이 곡을 배경으로 시대가 기억해야 할 여성들의 얼굴이 차례로 스크린을 지나쳤다. 구한말 신여성 화가 나혜석부터 미투 운동의 주역 서지현 검사, BBC 선정 올해의 여성 100인에 든 유일한 한국인이자 범죄심리학자 이수정 교수 등이 화면에 등장했다. 그리고 미처 마음의 준비를 못한 상황에서 활짝 웃는 고 설리를 화면으로 마주했을 때가 내게는 단연 이 공연의 클라이맥스였다. 축제 같던 영상 말미에는 ‘우리 모두가 평등해질 때까지 우리 중 누구도 평등하지 않다’라고 꾹꾹 눌러쓴 문장이 오래 머물렀다. 공연을 본 한 팬은 “평화, 사랑, 정의, 인권, 그리고 통일을 아우르는 한 편의 장엄한 영화 혹은 부흥회 같았다”고 표현했다.

이러한 무대는 U2가 슈퍼스타일 뿐 아니라 열혈 인권운동가이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노래 전주를 배경음 삼아 UN세계인권선언을 챈팅 하듯 줄줄 외는 보노를 보노라면, ‘힘들게 음악 해서 콘서트까지 연 건 이렇게 하려는 큰 그림이었나’ 싶게 한결같고 진지하다. U2는 이번에도 아시아 태평양 투어를 준비하면서 기후 위기로 직격탄을 맞은 필리핀의 청년 활동가 마리넬 우발도를 위한 대대적인 지지 캠페인을 벌였고, 뉴질랜드부터 호주, 싱가포르, 일본, 한국, 필리핀, 인도에 이르는 각국의 국제앰네스티 지부와 협업해 공연 현장에서 탄원서에 서명을 받게 했다. U2의 CD 커버에도 종종 주소가 적혀 있던 국제앰네스티, 그린피스, 워차일드라는 기구 명칭이 익숙한 팬들은 콘서트를 기다리며 기후 위기를 규탄하는 서명을 하는 일이 낯설지 않다.

오아시스의 노엘 갤러거는 2009년 한 인터뷰에서 “나는 무대 위에서 노래를 하는데, 어떤 밴드는 무대를 내줬더니 정치 이야기만 늘어놓더라”라면서 U2와 콜드플레이를 꼭 집어 말해서 팬들이 갑론을박을 벌인 적이 있다. “내 정치적 양심은 내가 알아서 하겠다”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그런데 당신은 정말로 U2가 행동을 고치길 바라나? 그럼 그들은 영혼을 잃을 텐데도?” 하고 말하는 이들도 있었다. 내게 가장 와닿은 입장은 이런 거였다. “내가 느껴야 하는 모종의 죄책감이나 짜증과 나의 맥이 끊기지 않는 공연을 사수하기 위해 배제돼야 할, 지금 이 순간에도 죽어나가는 사람들 중에 무엇을 감수하겠느냐고 묻는다면, 그래도 전자의 찜찜함을 받아들여야 하지 않겠나.” 이 말인즉 ‘내 마음이 불편한 건 사실이지만, 그 사람들은 목숨을 잃고 있지 않은가’ 정도로 요약할 수 있지 않을까. U2는 ‘가치’를 노래한다. 그래서 40여 년이 지난 오늘도 여전히 팬들의 의식과 고민 속에 자리하며 끊임없이 진화한다. 사실 인권과 자유, 사랑과 정의야말로 동시대적이지 않을 수 없는, 누구에게나 중요한 화두가 아닌가. 변하지 않는 신념을 간직한 채, 서서히 변하는 시대정신을 감지하고 행동하는 일. ‘현재’와 보조를 맞춰 옛 노래에 새로운 영감을 불어넣는 일. ‘과거’에 머물지 않고 날마다 ‘전성기’를 경신하는 U2의 본질적이고도 공공연한 영업 비밀이 아닐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