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부터 ‘트래쉬 버스터즈’의 공동 창립자인 디자이너 최안나, 설치 작가 곽동열, 축제 기획자 곽재원, 브랜드 컨설턴트 김재관.

132.7kg. 한국은 1인당 연간 플라스틱 사용량 세계 1위라는 불명예를 안고 있다. 1회용 컵 사용량은 2백57억 개, 1회용 빨대는 1백억 개, 1회용 비닐봉지는 2백11억 개로, 미국의 수치 93.8kg을 훨씬 앞선다. 생산과 소비의 사이클 자체를 벗어날 수 있으면 좋겠지만, 가장 심각한 문제는 재활용되지 않고 폐기되는 일회용품의 수가 너무나 많다는 점이다. 일회용품이 가장 많이 사용되는 축제장, 행사장에서의 플라스틱 사용량은 아예 계산이 불가능한 상태다. 지방자치단체에서 지원하는 이벤트를 제외하면 그 규모조차 제대로 파악되지 않는다. 하지만 이에 대해 아직까지 정부는 아무런 정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트래쉬 버스터즈’가 세상 밖으로 얼굴을 내민 이유다.

정확히 어떤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업인가?
한마디로 ‘일회용품 대체 서비스’라고 할 수 있다. 일회용품 쓰레기를 줄일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아예 사용하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일회용품의 대체재를 개발했고, 작년부터 편하고 위생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다회 용기 대여 시스템’ 문화를 만들어가고 있다. 이것은 일회용품 대신 다회 용기를 행사나 축제 관객에게 빌려주고 다시 수거해서 세척한 다음, 또 다른 장소에서 빌려주는 ‘리사이클 렌탈 서비스’다. 기업 고객에게는 다회 용기의 구매와 관리, 그리고 세척에 대한 고민을 해결해주는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사업을 시작한 결정적인 계기가 있나? 근시안적 편리 때문에 매일매일 어마어마한 양의 일회용기가 소비되고 폐기된다. 서울시 산하 기관에서 행사를 기획하는 일을 했을 당시, 축제가 끝나고 나면 현장을 정리했는데,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 일회용품 쓰레기를 보며 늘 죄책감을 느꼈다. ‘일회용품이 없는 축제를 만들어보자’는 생각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수순이었다. 결국 같은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뜻을 모아 ‘트래쉬 버스터즈’를 설립했다.

축제 기획자, 브랜드 컨설턴트, 디자이너, 설치 작가 등이 모여 이룬 시너지는 무엇인가? 이전에 해왔던 일들을 어떻게 우리의 사업에 접목시킬 수 있을지 가장 먼저 고민했다. 그 결과 현재 트래쉬 버스터즈는 기획, 브랜드 마케팅, 제작, 연구 파트로 나누어져 있다. 각 분야의 ‘어벤져스’가 모인 셈이다.(웃음) 서로에 대한 믿음 덕에 어떤 아이디어가 생기면 빨리 진행되는 편이다.

‘트래쉬 버스터즈’라는 재미있는 이름에 눈길이 간다. 직역하면 ‘쓰레기를 잡는 사람들’이란 뜻이다.(웃음) 1980년대에 유행한 영화 <고스트 버스터즈>를 오마주했다. 그들이 유령을 잡는 방식이 우리가 쓰레기를 대하는 생각과 비슷하게 느껴졌다. 환경문제에 무겁게 접근하기보다는 유쾌하게 해결해나가고 싶은 마음도 담았다.

트래쉬 버스터즈를 이루는 디자인적 요소도 인상 깊다. 브랜드의 핵심 컬러는 오렌지다. 현장에서 가장 눈에 띌 컬러를 선택했다. 식기 또한 오렌지 컬러를 사용해 식감을 돋울 수 있도록 했다. 흔히 쓰레기를 줄이는 사업이라고 하면 ‘친환경, 에코, 착한 기업’이라는 키워드와 함께 그린 컬러가 등장하곤 하는데, 그런 진부한 이미지를 탈피하고자 했다. ‘우리 착해요!’보다 ‘뭔가 멋지다!’라는 인상이 우리의 서비스를 표현하기에 더 적합하다고 생각했다. 궁극적으로는 이것이 대중에게 더 호소력이 있을 거라 믿는다.

‘서울시 청년 임팩트 프로젝트’ 투자 사업에 당선되어 사업을 시작했다고 들었다. 서울시 청년 임팩트 프로젝트는 일반 투자 사업과는 다르게 소셜 임팩트(사회적 가치)에 투자하고 있다. 일회용품 문제 개선과 청년 일자리 창출이라는 두 가지 이슈가 큰 역할을 했다고 생각한다. 서울시 청년청과 트래비스 파트너스의 시드 투자 덕에 사업의 첫걸음을 내디딜 수 있었다. 투자금의 대부분은 다회 용기 개발과 제작, 세척 공간에 사용됐다. 세척기 덕분에 시간당 4천5백 개의 용기를 세척하고 살균, 건조할 수 게 됐다.

첫 베타 서비스에서 관객의 반응은 어땠나? 관객은 훨씬 늘었는데, 쓰레기는 그 전에 비해 98%가 줄었다. 나머지 2%는 푸드 입점 업체에서 발생한 쓰레기였다. 더 놀라운 건 관객의 반응이다. 사전에 충분히 홍보했더니 관객이 자발적으로 SNS에 바이럴 포스팅을 해줬다. 축제 자체의 내용보다 트래쉬 버스터즈의 언급이 더 많을 정도였다. 작년 9월 법인을 설립한 뒤 현재까지는 크고 작은 행사 여덟 번을 치르며 총 1만9천8백60개의 일회용품 쓰레기를 줄였다.

다회 용기를 개발한 과정이 궁금하다. 디자인도 중요하지만, 축제에 참여하는 관객들의 편의성과 음식 종류를 범용적으로 포괄하는 실용성에도 집중했다. 푸드 트럭에서 나올 수 있는 다양한 음식의 종류를 모두 조사해 완성했다. 다회 용기의 재질은 화상의 염려가 적고 대량 세척과 살균에 용이한 폴리프로필렌(PP)이다. 물론 이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아직 이를 대체할 만한 소재가 충분하지 않다. 생분해성 플라스틱도 실제 자연 조건에서는 분해되지 않기 때문이다. 플라스틱 쓰레기의 문제는 플라스틱 자체가 아니라 한 번 쓰고 재활용되지 못하는 것이니, 우리는 순환 시스템을 택하기로 했다. 그린피스 역시 플라스틱 제로는 현실적으로 불가하며 지속 가능한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지금 사용하는 다회 용기는 일정 기간 뒤 다시 분해해서 재생산할 예정이다.

다회 용기 시스템은 축제 내내 들고 있어야 한다는 불편함과 보증금을 주고받아야 해서 번거롭다는 지적도 있다. 버려지는 일회용품에 대한 문제의식은 있지만, 문제의식을 행동으로 연결하려면 일종의 명분이 필요하다. 번거로움의 이면에 더 큰 목적이 있다는 의식 때문인지 현재까지 다회 용기 반환율은 99%에 달한다.

비슷한 해외 사업 사례도 있나? 생각보다 많지 않다. 우리와 비슷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업은 영국과 뉴질랜드, 오스트리아, 일본 기업 정도다. 하지만 외국에서는 시민들의 환경 의식이 높아 정책으로 강제하지 않더라도 쓰레기를 버리지 않는 축제 문화가 정착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런 문화를 관객에게 자연스레 전파시키는 것도 우리의 목표 중 하나다.

트래쉬 버스터즈를 운영하면서 가장 보람을 느낄 때는 언제인가? 축제가 끝난 뒤 깨끗한 풍경을 바라보는 순간. 일회용품이 없는 축제가 가능하냐고? 가능하다. 앞으로 평균 한 해에 열리는 1만여 건의 축제(5천 명 기준)에서 연간 700억원의 일회용품 제작 비용을 절감할 수 있길 기대하고 있다.

힘든 점은 없나? 아직도 이 서비스를 왜 이용해야 하는지에 대해 의문을 품는 사람들을 설득해야 할 때 가장 힘들다. 아직도 소비 중심적인 생각을 하거나 환경문제에 대해 당사자성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이 꽤 많다.

플라스틱 외에 관심이 가는 환경문제가 있나? 대부분의 환경문제는 하나의 원인을 공유한다. 플라스틱 문제 역시, 조금 더 큰 대목에서는 ‘기후 위기’와 근접하게 닿아 있다. 지구온난화로 벌어지는 다양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탄소 배출량을 어떻게 조절하고 억제할 수 있을지 고민 중이다. 이를테면 다회 용기를 배송할 때 전기차를 사용하고, 식기 생산 시 배출량을 감소시키는 대책 등을 연구하고 있다.

올해 새로운 계획이 있다면? 다양한 협업이 이루어질 것이다. 축제 때 사용되는 다회 용기뿐 아니라 배달 음식 용기, 스포츠 경기장과 장례식장의 일회용 식기, 카페의 테이크아웃 컵, 극장의 일회 용기, 전시장의 일회용품 등 우리가 일상에서 가장 많이 쓰는 일회용품을 다회 용기로 대체하려 노력 중이다.

트래쉬 버스터즈가 궁극적으로 꿈꾸는 세상은? 우리는 다음 세대를 준비하는 지속 가능한 기업이고 싶다. 트래쉬 버스터즈가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하고 행동하며 이 시대의 문화를 정착시키는 시발점이 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