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법 개정으로 선거 연령이 만 18세 이상으로 낮아졌다. OECD 가입 국가 중 가장 마지막으로 투표권을 쟁취한 이들은 4월 16일, 생애 첫 번째 투표를 앞두고 있다. 우리는 지난한 시간 속에서 치열한 논쟁 끝에 투표권을 갖게 된 14명의 만 18세 유권자를 만나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기로 했다. 직업도, 선택한 삶의 방향도, 취향도 각기 다른 이들은 자신과 친구들에 대해서, 사회에 대해서, 선거에 대해서 아주 솔직한
생각을 들려줬다. 여기에는 나이와 성별, 금전적 환경에 따른 편견이 없는 세상, 멈추지 않고 나아가는 사회를 바라는 열망이 담겨 있다. 이 글을 읽으며 잠시라도 이들의 바람대로 우리 사회가 꿈을 꾸길 바란다.

류지민(재수생)
정치외교학과에 진학하려고 준비했지만, 진로를 바꾸기로 하고 재수를 선택했다. 사람들이 나로 인해 행복해지는 궁극적인 꿈을 실현하기 위해 의대를 가서 정신과 의사가 되려고 한다.

지금 만 18세는 생각보다 사회에 관심이 많다. 어른들은 학교 다니고 공부하느라 잘 모를 거라고 생각하지만, 사회문제에 관심이 많고 이해도가 높은 애들도 많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촉구하는 수요 집회에 나가는 친구도 있고, 정책을 적극적으로 제안하는 친구도 있다.
가장 신경 쓰는 사회적 이슈는 한 트랜스젠더가 숙명여대 입학을 포기했다는 뉴스. 굉장히 마음이 아팠다. 선천적으로 주어진 성은 아니지만 자신이 선택한 거고, 그런 만큼 사회적으로 인정해주어야 하는데 우리 사회가 아직 그 정도로 성장하지 못한 것 같다. 성 소수자로 살아가는 게 어떤 의미인지는 잘 모르지만, 나라도 포기했을 것 같아 더 마음이 좋지 않다.
지금 우리 사회는 차갑고 외로운 시대. 물질적인 건 발달했는데 정신적인 부분에서는 오히려 역행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서점만 가면 베스트셀러 코너에 ‘자존감 회복하기’, ‘상처받은 나를 위로하는 법’ 같은 유형의 책이 많다. 그게 잘 팔린다는 건 위로가 필요한 사람들이 많다는 방증이다. 이 현상에는 여러 가지 원인이 있겠지만 그중 하나가 사람들 간의 교류, 소통, 연대가 줄어들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내가 바라는 좋은 세상은 차이를 존중하고 인정해주는 것. 타고난 것에 우위를 두지 않는 세상. 피부색이나 나이, 성별로 차별하지 않는 세상을 바란다.
만 18세부터 유권자에 포함하는 선거법 개정안에 대해 들끓었던 찬반 여론은 결국 찬성의 손을 들어줘 다행이라고 생각하지만, 한편으로는 너무 늦어 아쉽다. 선거권 연령 하향을 반대하는 사람들의 주된 논거가 만 18세는 자주적인 의사 결정이 불가능한 미성숙한 나이이고, 교실의 정치화가 일어날 우려가 있다는 거였다. 그런데 그건 근시안적인 판단이다. 결코 나이가 성숙과 미성숙의 기준이 될 수는 없다. 어른 중에도 미성숙한 사람이 많지 않나. 또 청소년은 미성숙하다고 하기에는 이미 그간 우리나라의 정치적 상황에서 참여율이 높았다. 그 사례 중 하나가 전 정권 탄핵 집회 참가자 중 청소년의 비율이 30%에 이른 것이다. 민법에서는 만 19세를 성년에 이르는 나이라고 규정하기 때문에 이와 충돌이 있을 수 있지만, 투표권은 민법의 기준과 다른 개념이라고 생각한다. 정치는 삶의 문제를 해결해줄 수 있는 열쇠고, 더 나은 삶을 살아가기 위한 장치다. 그런데 이런 정치적 행사에 투표권을 주지 않겠다는 건 청소년이 가진 삶의 문제를 해결해주지 않겠다는 태도로 보일 수 있다. 지금이라도 개정안이 통과되어 좋지만, 사실 당연한 일을 너무 오래 기다렸다고 생각한다.
바람직한 유권자가 되기 위해서는 좋은 친구가 어떤 사람인지 생각해볼 것. 연락을 자주 하지도 않고 데면데면하던 애가 뜬금없이 잘 지내냐며 연락한 상황을 떠올려보자. 그런 친구들이 연락을 한다는 건 나한테 뭔가 필요한 게 있어서다. 좋은 친구라면 그렇게 연락을 주고 받지 않는다. 정치인도 똑같다. 갑자기 나타나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어떤 정치인이 그간 우리 삶에 적극적으로 관심을 기울이고 있었는지를 생각하고 투표장에 가면 바람직한 투표를 할 수 있을 거다.

이종원(클래식 작곡과 학생)
클래식 음악에 관심이 많은 아빠의 영향을 받아서 음악을 일상적으로 접하며 자연스럽게 지휘자를 꿈꿨다. 지금은 작곡과에 가지만, 언젠가 정명훈 같은 지휘자가 되는 것이 목표다. 현대음악과 결합한 퓨전 음악보다는 고전적인 스타일을 선호한다.

내가 자라온 사회적 환경은 좋아하는 음악을 하기에 꽤 좋은 편이었다. 부모님이 예술에 마음이 열려 있었고, 유치원 때부터 초·중·고 모두 다른 교과목보다 예술을 중요시하는 학교에 다녔다. 만약 일반 학교를 다녔으면 음악은 고사하고 학교 분위기를 견디지 못했을 것이다.
가장 신경 쓰는 사회적 이슈는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 그런데 방송사마다 뉴스를 자기들 입맛에 맞는 식으로 보도하는 통에 좀 혼란스럽다. 뉴스 때문에 오히려 사람마다 정보가 달라 혼선을 빚기도 하고, 별것 아닌 일로 불안에 떨기도 한다. 좀 더 사실 관계를 명확히 파악한 후에 뉴스를 보도했으면 좋겠다.
내가 꿈을 이루는 데 필요한 것은 편견 없는 시선. 음악 한다고 하면 받게 되는 시선이 있다. 일단 공부를 못해서 음악을 하는 거라는 생각. 사실 나는 공부를 못하긴 하지만 다 그런 건 아니다. 또 부모님이 돈이 많은 금수저일 거라는 예상. 특히 클래식 전공은 더더욱. 이런 시선만 없어도 음악 하기 수월할 것 같다. 그리고 순수하게 음악만 할 수 있는 환경도 필요하다. 인맥을 쌓고, 누군가에게 잘 보이려고 애쓰지 않아도 되는 음악가가 되고 싶기 때문이다.
내가 생각하는 좋은 세상은 열심히 일하는 사람이 존중받는 세상. 모두가 평등하고 편리하게 복지를 누리는 세상.
선거에서 표를 잃을 만한 공약이나 행동은 가증스러운 태도. 선거철만 되면 뽑아달라고 시장 같은 데 가서 굽실거리지만 막상 당선되면 기득권 자리에 올라서서 내려다보는 정치인을 많이 봤다. 제발 진심으로 표를 구하는 사람이 나타나길 바란다.
바람직한 유권자란 반대를 위한 반대, 찬성을 위한 찬성에 몰두하는 게 아니라 정치인의 사람 됨됨이와 공약을 살피는 사람. 부모님이 아니라 내 생각을 따르는 것도 중요하다.
만약 내가 총선에 나간다면 보다 다양한 사람을 포용하는 입시 제도를 만들겠다는 공약을 내세울 거다. 음악 분야만 봐도 대학에 가기 위해 3년을 보내면서 자신의 재능을 입시의 틀에 맞추는 애들이 많다. 모두가 똑같은 곡을 3년 동안 준비해서 길어봤자 1분 20초 안에 보여주는 게 지금의 입시다. 이제는 좀 다른 방식이 필요하지 않을까.

손승재(사진과 학생)
사진 찍는 걸 좋아해 고등학교 때부터 사진가를 꿈꿨다. 아직은 어수룩하지만 좋아하는 것들을 기록하며 훗날 ‘작가’라고 불리는 날을 꿈꾸고 있다.

만 18세가 살기에 한국은 입시의 나라. 우리나라의 만 18세는 고등학생도 아니고 10대도 아닌 ‘입시생’으로 정의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대학 진학이 필수적인 사회 분위기 때문이다. 대학을 가지 않으려고 생각했던 나도 만 18세 때 마음을 바꿔 대학을 진학했다.
가장 신경 쓰는 사회적 이슈는 옥인콜렉티브의 맴버인 이정민, 진시우 부부의 자살 사건. 옥인콜렉티브는 3인조 작가 그룹으로 2018년 올해의 작가상 최종 4인에도 선정될 만큼 미술계에서 유명한 그룹이었지만 생활고를 견디다 못해 지난해 세상을 떠났다. 동시대에 같은 분야에서 일하는 꿈꾸는 사람으로서 이 사건을 보며 이 사회에 무언가 심각한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고, 동시에 여러 감정이 생기며 싱숭생숭했다.
또래 사이에서 가장 핫한 것은 유튜브. 주변에 SNS 안 하는 친구는 있어도 유튜브 안 보는 친구는 없을 정도다. TV보다 유튜브를 더 많이 보고, 콘텐츠를 소비하고 정보를 얻는 경로가 유튜브로 바뀌고 있다.
내가 꿈을 이루는 데 필요한 것은 돈! 지자체에서 청소년의 꿈을 위해 여러 가지 인프라를 제공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혜택을 받지 못하는 이들이 여전히 많다. 그리고 그 사람들은 무언가를 배우고 연습하는 데 필요한 돈이 부족하다. 나 역시 마찬가지다.
만 18세부터 유권자에 포함하는 선거법 개정안에 대해 들끓었던 찬반 여론은 당연한 상황이라고 생각한다. 주변 친구들만 봐도 아직 정치와 투표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경우가 많고 나 또한 잘 모르다 보니 투표권이 생긴 지금, 조금은 얼떨떨하다. 한편으로는 이미 만 18세부터 투표권이 있는 다른 나라들처럼 어릴 때부터 정치 혹은 투표에 관한 올바른 교육이 이루어졌다면 우리나라에서도 이번 사례가 이처럼 크게 논쟁이 되었을까 하는 생각도 한다.
선거에서 표를 잃을 만한 공약은 모르겠다. 그보다 선거운동과 관련해서 말하자면 번쩍번쩍거리는 차량에 노래를 시끄럽게 틀어놓고 마이크로 크게 소리를 지르며 하는 홍보하는 행위는 절대 안 했으면 한다. 제발 부탁이다. 시끄러운 선거 유세는 오히려 표를 떨어뜨린다.
투표권 외에 만 18세에게 주어졌으면 하는 것은 원하는 교육을 받을 권리. 만 18세 혹은 그보다 더 어린 학생들은 입시에 맞게 정해진 교육만 받고 있다. 앞으로는 입시에 불안과 초조감을 느끼지 않고 마음 편히 받고 싶은 교육,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는 권리가 보장되면 좋겠다.

박천영(개그맨 지망생)
개그맨을 꿈꾼다. 내년부터 방송국 공채 시험에 도전할 예정이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의 문제 해결을 위한 대학생 프로젝트 동아리 ‘평화나비’에서 활동 중이며, 얼마 전, 학생들을 위한 선거 교육의 연사로 참여했다.

내가 자라온 사회적 환경은 ‘차이’가 ‘차별’로 이어져 갈등이 많았다. 서로의 차이를 이해하지 못하고 숱한
싸움이 일어난다.
가장 신경 쓰는 사회적 이슈는 지소미아. 평화나비 활동을 하면서 관심을 갖게 됐다. 요즘은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 관련 소식이 뉴스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데, 이로 인해 또 다른 사회 갈등이 빚어지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내가 꿈을 이루는 데 필요한 것은 같은 꿈을 꾸는 친구들과 소통하며 꿈을 키워갈 수 있는 청소년 시설. 물론 지금도 존재하지만 모르는 경우가 많다. 시설의 활성화와 홍보가 필요하다.
내가 생각하는 좋은 세상은 빈부 격차가 없고 투명성을 보장받을 수 있는 사회, 차별 없이 서로 존중하는 시대를 꿈꾼다. 학생으로서는 효율적인 정치 교육제도가 마련된 사회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만 18세 청소년이 정치에 관심을 갖기에는 학교에서 알려주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나만 해도 정치에 관심이 많아 ‘법과 정치’ 과목을 선택했지만, 교과서 자체가 현재의 정치와 관계없는 이론적인 내용이라 흥미가 떨어졌다. 이런 교육 체제가 청소년들을 정치에서 멀어지게 한다.
만 18세부터 유권자에 포함하는 선거법 개정안에 대해 들끓었던 찬반 여론은 당연히 찬성. 학교에 대해 가장 잘 아는 사람은 학생이다. 청소년에게 적용하는 법이나 제도를 결정할 때, 왜 청소년이 의견을 낼 수 없는지 항상 의문이 있었다.
만약 내가 총선에 나간다면 청소년 정신 건강 검진을 의무화하고, 주치의제를 도입하겠다. 최근 정신 건강에 관한 뉴스가 눈에 띈다. 특히 오랜 시간 입시에 매달려야 하는 학생들은 늘 스트레스가 많은 편이다.
바람직한 유권자란 자신이 가진 투표권 한 장의 가치를 정확히 알고 행사하는 사람. 공약과 정책을 잘 따져보고 1번 정당이 아니면 2번 정당, 2번 정당이 아니면 다시 1번 정당으로 돌아가는 일을 멈춰야 한다. 거대 양당의 굴레에서 벗어나 새로운 도전을 해야 할 때다. 투표권 외에 만 18세에게 주어졌으면 하는 것은 피선거권. 현재 피선거권은 국회의원은 25세, 대통령은 40세 이상에 주어지는데, 연령을 좀 낮춰도 되지 않을까? 물론 이 또한 찬반 여론이 뜨겁겠지만.